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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 류승완 감독이 빚어낸 아수라
'군함도' 류승완 감독이 빚어낸 아수라
  • 미디어제주
  • 승인 2017.07.2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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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개봉하는 류승완 감독의 신작 '군함도'의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한 명이라도 살믄 우리가 이기는 거여. 단 한 명이라도.”

1945년 일제강점기. 경성 반도호텔 악단장 강옥(황정민 분)과 하나뿐인 딸 소희(김수안 분)를 비롯해 종로 제일의 주먹 칠성(소지섭 분), 일제 치하에 온갖 고초를 겪었던 말년(이정현 분) 등 각자의 사연을 품은 이들이 ‘살기 위해’ 배에 오른다. “일본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은 조선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해저 1,000m 깊이의 막장에서 가스 폭발의 위험을 감수하며 노역한다.

이들이 맞닥뜨린 군함도는 아수라, 그 자체였다. 비인간적 착취와 폭력 그 안에서 권력을 쥐기 위해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과 배신은 사람들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처세술의 일인자 강옥과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칠성, 악다구니만 남은 말년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견딘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광복군 소속 OSS 요원 무영(송중기 분)은 독립운동의 주요 인사를 구출하기 위해 군함도에 잠입, 그곳의 실체를 파악한다.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는 상황 속, 일본은 자신들의 만행을 숨기기 위해 조선인을 모두 죽이려 한다. 이를 눈치챈 무영과 강옥, 칠성, 말년은 조선인을 모두 이끌고 지옥섬을 빠져나가려고 한다.

영화 ‘군함도’(제작 외유내강·공동 제작 필름 케이·배급 CJ엔터테인먼트)는 2015년 천만 관객을 이끈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의 신작이다. 황정민을 비롯해 송중기, 소지섭, 이정현, 김수안 등 충무로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해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화제였던 것은 군함도 그 자체. 앞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군함도의 실체와 일본의 만행을 폭로했고 대중은 이에 공분했다. 개봉 전부터 들끓었던 반응이나 떠들썩한 분위기 역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관심과 작품의 무게감은 류승완 감독을 비롯해 주연 배우들 역시 절감하고 있었다.

이는 제작비 220억 원, 제작 기간 3년, 최고의 제작진과 배우들의 호연 그리고 장대한 스펙터클이라는 결과물로 나타났다. 소재 자체가 주는 웅장함은 영화의 가장 단단한 핵심이자 줄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류 감독 역시 군함도 그 자체에 집중하고자 했다. 제작진은 강원도 춘천에 6만 6천 제곱미터 규모의 초대형 세트를 지었다. 실제 군함도의 2/3를 재현한 것으로 영화의 리얼리티와 볼거리, 완성도의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군함도를 관객에게 얼마만큼 생생히 전달하느냐에 초점을 두었고 지옥계단을 비롯해 탄광 내외부, 조선인과 일본인의 거주지역 및 유곽 등 공간을 완벽히 재현하고 보여주는 것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또한, 영화는 “극단적 민족주의에 의존하거나 소위 감성팔이, 국뽕”에 의지하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극 중 캐릭터들로 증명되는데 무조건적인 선인과 악인 또는 조선인은 선인(善人)이며 일본인은 악인(惡人)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를 펼치지 않는다. 조선인들 사이에서도 갈등요소는 불거지고 그 안에서 동족을 팔아넘기고 배신하는 등 전쟁과 인물들의 민낯을 표현하며 단순한 사고(思考)를 피하고자 했다.

그러나 ‘군함도’가 주는 무게감이나 공간 재현에 비해 인물 묘사는 다소 평이한 편. 강옥과 소희의 서서나 활약보다 칠성이나 무영, 말년의 이야기는 성기다. 맥빠지는 무영의 등장신이나 칠성과 말년의 강한 등장에 비해 드라마는 뭉뚱그려 표현됐다. 400여 명의 조선인이 군함도를 탈출한다는 이야기를 충실히 이행하고 많은 등장인물을 돌아보느라 정작 조명받아야 할 캐릭터들은 에둘러 넘어가버린 듯해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가 주는 시각적 효과나 압박은 상당하다. 러닝타임 132분 동안 스크린 속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관객들을 짓누르고 그 고통을 함께 체험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러나 시각적 효과만큼 인물들의 이야기는 효과적으로 관객에게 다가오지는 못한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영화 후반부 지옥섬 군함도를 빠져나가는 대규모 탈출 시퀀스다. “20여 년 영화 인생을 통틀어 역대급 경험이었다”는 류 감독의 말처럼 탈출 시퀀스는 모든 땀과 노력이 집약된 영화의 엑기스다. 약 한 달 반 동안 총 30회차에 걸쳐 촬영됐으며 80여 명의 배우들과 제작진이 공을 들여 완성한 강력한 ‘한 방’이다.

대작 영화로서의 요소가 충분하고 영화가 주는 장대한 스펙터클 역시 인상 깊지만 류승완 감독의 지난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아쉬운 작품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 류 감독 특유의 개성 넘치는 연출은 ‘군함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작품을 대하는 류 감독의 태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지난 영화들과는 달리 개성을 누르고 많은 대중을 아우르며 ‘군함도’의 실체와 의미에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류 감독이 포기하고 또 집중한 만큼 ‘군함도’는 의미적으로나 가치적으로 관객들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오는 26일 개봉, 러닝타임은 132분 관람등급은 15세 이상이다.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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