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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기록상 유일한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다리놓기’ 전설
문헌 기록상 유일한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다리놓기’ 전설
  • 미디어제주
  • 승인 2017.07.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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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거짓투성이 설문대할망 신화 <11> 본론(本論) ⑩

구전으로 전해져온 ‘설문대할망’을 제주 창조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제주지역 학계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이처럼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신화로 만들어가는 데 대해 관련 전공자인 장성철씨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취지의 반론적 성격의 글이다. 실제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현승환 교수도 지난 2012년 ‘설문대할망 설화 재고’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연재 기고를 통해 설문대할망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12. ‘설문대할망’ 자의(字義) 풀이

 

12.1. 사만두고(沙曼頭姑)와 설만두고(雪曼頭姑)

 

12.1.1. 다음은 ‘사만두고’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문헌설화(文獻說話)이다.

 

[문헌Ⅰ] : “上古有一神女 號曰沙曼頭姑 身長幾與天齊 手倚漢拏山頂 足躡滄海而弄波 常自言曰 此土人製我一衣 則我必連橋於大陸 使徒步往來云 以一島之力終不能製其衣 橋果不成 州東新村有巨人跡印在巖石上 至今稱曼姑足跡云[아주 오랜 옛날 한 신녀가 있었다. 이름은 사만두고라 불렸다. 키는 커서 거의 하늘과 가지런했다. 손으로는 한라산 정상을 짚었다. 발로는 창해를 밟고서 파도를 희롱했다. 평소에 스스로 말하기를 이곳 주민이 나에게 옷 한 벌을 만들어 주면 내가 필히 대륙까지 다리를 연결하여 걸어서 왕래할 수 있게 하겠다. 그러나 온 섬의 능력이 끝내 그 옷을 만들 수 없었다. 다리도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주 동쪽 신촌의 암석 위에 찍힌 거인 발자국이 있다. 지금도 ‘만고의 발자국’이라 한다.][이원조(李源祚), 󰡔탐라지 초본(耽羅誌草本)󰡕 권2 기문(奇聞)조, 1843년경].

 

12.1.2. 다음은 ‘설만두고’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문헌설화이다.

 

[문헌Ⅱ] : “上古에 有一神女하니 號曰 雪曼頭姑라. 身長이 與天齊하여 手倚漢拏山頂하고 足躡滄海而弄波하여 常 言曰此土人이 製我一裀則我必連橋於大陸하여 使徒步往來云以一島之力으로도 終不能製其裀하여 橋梁不成이러라. 州東新村에 有巨人跡印이 在巖石上하니 至今稱曼姑足跡云이라.(담수계 편, 󰡔증보탐라지󰡕, 1954년, 273쪽).

 

12.1.3. 위 [문헌Ⅰ] · [문헌Ⅱ]는 동일한 것이다. 다만, [문헌Ⅱ]가 ‘[문헌Ⅰ]의 한문(漢文)에다 토를 붙여 놓았다는 점’과 ‘[문헌Ⅰ]의 사만두고를 설만두고로 고쳐 놓았다는 점’이 다르다.

 

12.1.4. 오늘날 ‘연륙교(連陸橋) 만들기’ 또는 ‘다리 놓기’라는 제하(題下)에 전해지고 있는 이 설화는 현존 설문대할망 전설들 중 ‘문헌에 기록된 유일한 것’(단, 1950년대 중반까지)이다.

 

12.1.5. 沙曼頭姑(사만두고) : ‘사만두고’에서의 ‘사(沙)---’는 ‘꺼칠꺼칠하다, 목소리가 쉬다, 억척스럽다’라는 뜻이고, ‘-만(曼)--’은 ‘이끌다 · 앞장서다’라는 뜻이고, ‘--두(頭)-’는 ‘장두’(狀頭)라는 뜻이고, 그리고 ‘---고(姑)’는 ‘여자(혼인 여부나 노소 불문)’라는 뜻이다.

 

고로, ‘사만두고’ 자의(字義)는 ‘억척스럽게 이끄는 장두 여자’이다.

 

참, 신화론자들은 ‘---고(姑)’를 ‘할머니’(할망)로 본다. 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소리다. 자전과 중국어 사전에 의하면, ‘姑’의 뜻은 ‘미혼 여자(아가씨, 처녀 등)의 통칭, 고모 · 백모 · 숙모, 시누이, 시어머니 등’이니까. 즉, ‘姑’에 ‘할머니’ 곧 ‘노파’(老婆)라는 뜻이 없으니까. 물론 ‘시어머니’도 노파라고 단정할 수 없다. 지난날 여자는 나이 40쯤에는 대부분 시어머니가 되었으니까. 게다가, 시어머니는 ‘연령에 관한 용어’가 아니라 ‘가족 관계에 관한 용어’이니까.

 

12.1.6. 雪曼頭姑(설만두고) : ‘설만두고’에서의 ‘설(雪)---’은 ‘섧다’의 관형사형 ‘설운’[예: “설운 아기, 부모에게 효심하는구나.”(󰡔제주도 신화󰡕, 현용준, 222쪽)]의 ‘설­’에 대한 차자(借字)이다.

 

고로, ‘설만두고’ 자의는 ‘서럽게 이끄는 장두 여자’이다.

 

12.1.7. 사실, ‘억척스러운’(사만두고의 ‘사’)과 ‘서러운’(설만두고의 ‘설’)은 일맥상통한 말이다.

 

12.2. 세명뒤할망 · 설문대할망 등

 

12.2.1. 이 호칭들은 두 부류[沙(曼頭姑) 계열: 세명뒤·세멩디·세명주·쒜명뒤할망 등 / 雪(曼頭姑) 계열: 설문대(‘선문대’의 ‘선--’은 ‘설--’의 자음동화)·설명두·설명지할망 등]로 나눌 수 있다.

 

12.2.2. 이 호칭들의 첫째 음절에 대해서 : ‘세----, 쒜----’는 차자(借字) ‘沙’(꺼칠꺼칠한, 목소리가 쉰, 억척스러운)에, ‘설----’은 차자 ‘雪’(‘섧다’의 관형사형 ‘설운’의 ‘설-’)에 해당된다.

 

그 둘째 음절에 대해서 : ‘­명(멩)­--’은 ‘命’(명령하다)으로 沙曼頭姑 · 雪曼頭姑의 ‘만’(曼: 이끌다, 앞장서다)의 유사어(類似語)이다. 그리고 ‘-문---’은 ‘운’[‘섧다’의 관형사형 ‘설운(⟨설븐)’의 ‘-운’(⟨븐)]이다. 따라서, ‘설문대’의 ‘설문-’은 ‘설븐(>설운)’의 자음동화 결과이다.

 

그 셋째 음절에 대해서: ‘­­두--, ­­듸--, ­­뒤--, --디--, --대--’는 沙曼頭姑 · 雪曼頭姑의 ‘두’[頭: 장두(狀頭)라는 뜻]이다. 단, ‘설문대’의 ‘--대’에는 ‘大’(크다, 위대하다)‘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지--, ­­주--’는 전술한 ‘--디--, --두-- 등’의 구개음화 결과이다.

 

그 나머지 음절에 대해서 : ‘­-­할망’은 沙曼頭姑 · 雪曼頭姑에서의 ‘---고’[姑: 혼인 여부나 노소(老少) 불문]이다. 즉, ‘노파’(老婆)가 아니라 ‘여자’에 대한 제유법적(提喩法的) 표현이다.

 

고로, ‘세명뒤할망, 쒜멩듸할망, 세명주할망, 세멩디할망’ 자의는 ‘억척스럽게 명령하는(즉, 이끄는) 장두 여자’이고, ‘설명두할망, 설명지할망’ 자의는 ‘서럽게 명령하는(즉, 이끄는) 장두 여자’이고, ‘설명대할망’ 자의는 ‘서럽게 명령하는(즉, 이끄는) 큰(즉, 위대한) 여자’이고, 그리고 ‘설문대할망, 선문대할망’ 자의는 ‘서러운 큰(즉, 위대한) 여자’이다.

 

12.2.3. 요는 ‘설문대할망’은 1105년(탐라국호 폐지) 이래 외세(이른바 ‘육짓놈들’) 핍박에 항거하며 서러운 삶을 억척스럽게 산 탐라(아니, 제주) 여인들(곧 민중)의 상징이라는 말이다.

 

12.3. 위 문헌설화([문헌Ⅰ]·[문헌Ⅱ])는 ‘曼姑足(만고족) 설명’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만고족(만고 발자국)은 전설 속성인 ‘특정의 개별적인 증거물’이다. 한편, 다리 놓기 중단은 좌절이고, 좌절은 미적 범주 중 전설 속성인 ‘비장미’에 해당된다. 이는 이 설화가 의심의 여지가 추호도 없는 전설이라는 말이다. 참, 이 설화는 오늘날 ‘보다 구체화되고 심화된 형태’(예: 다리 놓기의 간접 증거물 ‘만고족’ → 그 직접 증거물 ‘신촌‧조천 바닷가의 빌레·코지·여 등’)를 띠고 있다.

 

12.4. 문헌설화(기록된 설화)는 일종의 소설인 양 기록문학으로 취급된다. 설화는 흡사 생목(生木)처럼 자라나야 하는데, 문헌설화는 흡사 화석(化石)처럼 더는 자라나지 않으니까. 내친 김에 말하면, 설화가 자라난다는 말은 마치 귤나무가 배나무로 둔갑하듯이 변모한다는 뜻이 아니라 귤나무라는 본질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로 변모한다(보다 구체화되고 심화된다)는 말이다.

 

 

<프로필>
- 국어국문학, 신학 전공
- 저서 『耽羅說話理解』, 『모라(毛羅)와 을나(乙那)』(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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