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건축행위에 맞설 행정의 큰 그림 요구”
“무분별한 건축행위에 맞설 행정의 큰 그림 요구”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7.07.1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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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배우다] <1> 오스만의 영광을 뒤로 하고
부희철 BnK건축 소장 “가로 경관 가이드라인 필요”

건축은 음악과 같다. 단지 건축은 ‘동결된 음악’이라는 점이 선율로 흐르는 음악과 다를 뿐이다. 특히 건축은 인간을 담아내기에 건축행위는 삶과 뗄 수가 없다. 최근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와 함께 근대 건축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물을 볼 기회가 생겼다. 현장에서 마주한 그의 건축은 왜 그를 근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지를 가슴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기획은 르 꼬르뷔지에를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현장에서 마주한 유럽의 건축문화를 통해 제주도 건축이 나갈 방향을 살펴본다. 아울러 제주건축가회의 젊은 건축가들의 인터뷰도 곁들인다. [편집자주] 

 

 

프랑스는 생각만해도 가슴이 떨린다. 그렇다고 가슴을 떨면서 프랑스를 오갈 필요는 없다. “우리도 얼마든지 프랑스와 같은 문화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한다”는 조건을 달았을 경우이다. 물론 그런 기대는 쉽지 않겠지만.

프랑스에 내리면 맨 먼저 발을 디디는 곳은 파리이다. 파리를 보지 않고서 어찌 프랑스를 봤다고 하겠는가. 파리는 2000년의 역사를 지닌 땅이다. 신성로마제국의 샤를 5세는 파리를 향해 “파리는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세계이다”고 했다. 파리는 2차대전 때 파괴의 위협속에서도 살아남았다. 히틀러는 패망 며칠을 앞두고 파리 점령군 폰 콜티츠에게 파리를 파괴하라고 했으나 콜티츠는 그 명령을 거부했다. 파리는 그런 곳이다. 도시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이며, 파괴시킬 수 없는 끌림이 있는 곳이다.

논란의 건축물에서 파리의 상징이 된 에펠탑. ©김형훈

파리에 간 이들은 100% 에펠탑에 들른다. 세계 최대 논란의 건축물인 에펠탑에 가는 이유는 ‘파리는 곧 에펠탑’이기 때문이다. 에펠탑 설치 당시 “철 구조물이 어찌 세계문화의 중심을 자부하는 파리에 들어설 수 있나”라는 논란은 이젠 찾아볼 수 없다. 처음 공개됐을 때 1665개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는 이들이 있을 정도로, 건축 후 논란의 건축물은 파리의 상징물로 금세 변했다.

다만 에펠탑을 받아들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논란의 건축을 거부한 이로 대문호 모파상이 있다. 모파상은 에펠탑 1층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이유는 에펠탑을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모파상의 행동을 들여다보면 파리의 도시계획이 엿보인다. 굳이 에펠탑에서 식사를 하는 이유는 뭔가. 거꾸로 말하면 파리에서는 에펠탑만 보인다는 설명이 된다. 그만큼 파리는 19세기 도시계획이 유지되고 있다.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있는 건축물을 파괴하기에 안달이고, 굳이 복원하지 않아도 될 건물을 복원하면서 땅 위에 있는 것들을 없애는 우리가 아니던가.

파리 시내 풍경. 19세기 오스만의 도시 정비 이후 그 모습이 100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김형훈

지금의 파리를 이룬 근간은 오스만에게서 찾을 수 있다. 오스만은 19세기 파리 정비를 주도한 인물이다. 19세기 산업화의 물결은 파리에도 영향을 미쳤고, 좁디좁은 파리에 인구가 넘쳤다. 결국 범죄, 폭력이 잇따르고 콜레라와 전염병까지 번졌다. 이 때 오스만이 주도한 파리 정비는 도시 소통망을 확충하고, 대대적인 숲 정비도 함께 이뤄진다. 덩달아 일정한 건축물의 높이가 정해지는데 가지런해 보이는 도시 이미지는 ‘오스만화’의 결과이다. 때문에 오스만의 파리 정비 이후에 등장한 에펠탑은 어디서든 볼 수 있고, 지금도 파리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상징물이 됐다.

그러나 파리는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도시재생에 대한 강열한 요구이다. 20세기초 신자유주의 흐름은 왕성한 도시재생의 물결을 이루는데 그 중심은 미국과 영국이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프랑스의 도시재생은 다음 기획에서 진행하도록 하고, 이번 답사를 기획한 부희철 BnK건축사사무소 소장이 생각하는 건축 이야기를 들어보자.

“르 꼬르뷔지에의 유작인 피르미니 성당이 최근 완공됐다는 사실을 알게 돼 그의 작품을 총정리하자는 의미에서 답사를 기획하게 됐어요. 근대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는 많지만 그가 제시한 게 현재의 모습과 가장 닮아있죠.”

그러면서 그는 파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술술 설명해나갔다.

가로경관을 지키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부희철 BnK건축사사무소 소장. ©김형훈

“파리는 한 시대의 도시 계획이 잘 유지되고 있어요. 1900년대나 지금이나 비슷하거든요. 건축규제라든지, 새로운 건축에 대한 심의가 잘 조화가 돼 있죠. 파리를 보존하기 위해 라데팡스 등의 신도시를 만들기도 하잖아요. 과거 흔적을 지키면서요.”

제주도는 한창 공사중이다. 수많은 건축물이 지어지고 있고, 원도심은 도시재생이라는 파도를 맞고 있다. 그에 대한 느낌은 어떨까.

“기존 건물을 고려하지 않는 건축이 이뤄지고 있죠. 본인을 돋보이게 하는 건축이 오히려 주변 경관과는 어울리지 않게 되죠. 높낮이(스카이라인)와 재료 연속성도 있어야죠. 가로경관 보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해 보여요.”

그의 말은 무분별한 건축행위에 맞설 수 있는 행정의 논리개발로 들린다. “내 건물이니까 내가 한다”는 자본논리를 이길 수 있는 제주도 차원의 큰 그림이 요구된다. 100년 이상 오스만화를 지키고 있는 파리를 보면, 우리라고 못할 것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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