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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 송강호 "송강호式 연기? 배우는 단거리 주자 아냐"
'택시운전사' 송강호 "송강호式 연기? 배우는 단거리 주자 아냐"
  • 미디어제주
  • 승인 2017.07.18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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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만섭 역을 연기한 배우 송강호[사진=(주)쇼박스 제공]

“내 눈으로 진실을 보고 전하고 싶은 생각뿐이었습니다. 용감한 한국인 택시기사 김사복 씨와 헌신적으로 도와준 광주 젊은이들이 없었다면 다큐멘터리는 세상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독일기자 위르겐 히츠페터)

1980년 5월의 광주 그리고 푸른 눈의 목격자. 영화 ‘택시 운전사’(감독 장훈)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온몸을 바쳐 광주의 실상을 취재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히츠페터와 택시 운전사 김사복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 분)은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가게 된다. 이후 만섭은 광주에서 벌어지는 일을 목격하게 되고 혼란을 겪게 된다.

“우리 영화는 고발 형식의 영화가 아니에요. 그 시절의 아픔을 이야기하지만 또 다른 희망에 관해서 얘기하고자 해요. 우리가 어떻게 아픔을 극복했느냐가 중요하죠.”

영화의 시작점은 2003년 제2회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한 위르겐 히츠페터의 수상소감부터다. 광주의 실상을 취재하는 것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남자, 김사복에 관한 궁금증이기도 했다. 하지만 배우 송강호(50)의 말처럼 영화는 어떤 것을 고발하려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택시 운전사’가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영화를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차별화됐다는 점이죠. 실화를 배경으로 했지만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닌 제 3자의 시선 같았어요. 김만섭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광주 사람도 군인도 아닌 제3의 인물로 바라보는 시선이 새롭더라고요.”

신선하고 새로운 시선 그리고 담백한 어조는 송강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선뜻 작품에 출연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일종의 부담감 때문이었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됐었어요. 일종의 부담감이었는데, 종류를 나눈다면 건강한 부담감이었죠. 제가 작품의 출연 여부를 빨리 답해주는 편인데 처음에는 못하겠다고 했어요. 워낙 큰 사건을 다루다 보니 대안을 쉽게 찾을 수 없었어요. ‘변호인’ 때도 느꼈던 감정이었죠. 이 이야기가 싫은 게 아니라 이 거대한 이야기를 부끄럽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그런데 이야기 자체가 점점 마음속에서 커지는 거예요. 자꾸 생각나고, 열망이 생겨서 하게 됐죠.”

송강호와 장훈 감독의 호흡은 벌써 두 번째. 2010년 ‘의형제’ 이후 약 7년 만에 ‘택시 운전사’로 만나게 됐다. 송강호는 장 감독에 관해 “담백한 이야기꾼”이라 평가했다. 덜고 덜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는 투였다.

“담백하다는 게 말이 쉽지. 사실 누구나 살을 붙이고 강조하고 싶어 하잖아요? 그게 연출의 기본적 욕망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장 감독은 절제하고 덜어내는 편이에요. 같이 두 작품을 했는데 나이에 맞지 않게 담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성격은 굉장히 내성적인 편이고. 하하하. 술도 잘 못 해서 우리는 대화가 거의 없어요. 현장에서 뭐 소통하거나 하지도 않죠. 물론 다른 배우들이랑은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 송강호와 장 감독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다. 장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가장 인간적인 송강호의 얼굴을 끌어냈고, 송강호 역시 장 감독의 작품 속 인물들을 한결 더 입체적이고 깊이 있게 표현해냈다.

“우리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있을 수 있잖아요? 너무 구슬프다거나 뭉클할 거라는 생각이죠. 그것이 오히려 영화에 대한 편견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데 그것을 더 인간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무조건 밝게 표현한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택시 운전사가 광주에 가고 그 과정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었죠. 맞아요. 자연스럽게! 그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극 중 송강호가 연기한 만섭은 가장 인간적이고 또 평범한 남자다. 가진 거라곤 택시 한 대뿐인 홀아비로 밀린 월세, 딸아이의 해진 운동화에 전전긍긍한다.

“극 중 만섭이 서울로 가느냐, 광주로 돌아가느냐를 두고 고민하는 장면이 나와요. U턴을 하기 직전까지 고민하는 모습은 사실 어떤 정의감이나 신념 때문은 아니었어요. 직업윤리를 가진 운전기사고 시민들이 살상되는 끔찍한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 아주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생각이었죠. 피터가 떠날 때도 그랬어요. ‘한국의 실상을 꼭 전 세계에 알려줘!’ 하는 마음보다는 내가 태웠던 손님이 떠날 때를 지켜보는 모습 또는 이별의 아쉬움이라고 여겼죠. 그렇게 접근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 이면에 광주가 투영되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관객들의 마음을 관통하는 송강호식 연기법은 이번 ‘택시 운전사’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작품마다 자신만의 연기 스타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송강호식 연기라는 것이 도리어 부담 혹은 불편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번 작품이 송강호식 연기가 가장 두드러지죠.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이 스포츠 선수나 단거리 선수가 아니잖아요? 영화배우로 살아가면서 긴 여정을 해야 하는데 ‘송강호식 연기’에 갇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변호인’ 이후 ‘택시 운전사’로 관객을 만나게 되면서 어떤 이미지적으로 연장 선상에 서게 됐고 그건 자연적으로 발생한 거라 어쩔 수 없어요. 곧 개봉하는 ‘마약왕’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니까. 오래 본다면 그 안에서도 다양한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돌아보기도 벅차다. ‘초록물고기’를 시작으로 ‘조용한 가족’,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괴물’, ‘변호인’, ‘밀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연기 경력만큼이나 다양한 작품들은 흥행·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꼭 쥐어왔다. 특히 영화 ‘변호인’ 이후 천만 배우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된 상황.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는지 궁금했다.

“그건 영화의 운명이라고 봐요. 부담감이라면 그만한 부담감도 있겠죠. 송강호라는 배우에 대한 신뢰감인 거잖아요? 관객에게 제작사, 스태프들에게 상처 주지 않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 노력은 해야겠죠.”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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