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6 15:27 (화)
비료의 오류
비료의 오류
  • 홍기확
  • 승인 2017.07.13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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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43>

 비료를 조금 주었더니 작물이 빨리 자랐다. 비료를 더 많이 쓰면 더 빨리 자랄까? 아닐 것이다. 과도한 비료는 오히려 작물을 죽게 만든다.

이를 비료의 오류(fertilizer fallacy)라 한다. 공부로 치면 며칠, 몇 주간 몰아서 하는 ‘집중학습’보다는, 틈틈이 간격을 두고 하는 ‘분산학습’이 효과적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인간의 급성장 시기는 아기, 아이, 청소년에만 가능하다. 이때는 식욕도 왕성하여 키우는 입장에서는 비료 값, 즉 밥값이 많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비료를 무한정 줘서는 안 된다. 탈난다.

 

아이가 방학을 앞두고 있다. 아내는 긴긴 방학에 아이에게 무엇을 시킬까 고민이다. 이런저런 학원과 방과 후 교실 등의 대안을 놓고 고민이다.

내 입장에서는 초등학교까지는 아이가 마음껏 놀게 하고 싶은 생각이다. 내 초등학교 시절은 평범 그 자체였다. 공부한 기억은 전혀 없고, 그 흔한 반장 한번 못해봤다. 반면 아내는 전교 1, 2등을 다투었고 반장 등을 하며 어릴 적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만큼 각자의 경험에 따른 초등학생을 바라보는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입장 차이는 아이를 관찰함으로써 쉽게 해결되었다.

 

우리 가족은 거실에 책상 3개를 붙여 놓고 항상 책을 읽는다. 거실에 책상을 놓는 가족은 흔치 않다는 것을 안다. 보통 가정에는 거대한 TV가 중심에 놓여 있다. 우리집도 물론 TV가 있긴 하다. 하지만 켜본 것은 한 달에 1~2번쯤 될까 말까다. 손님 접대용이다.

아이가 오늘도 책을(엄밀히 말하면 만화책) 맹렬히 읽고 있다.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책에 빠지면 다른 사람의 얘기를 전혀 듣지 못한다. 아내와 나는 아이의 그런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다. 나는 아내에게 한 마디 붙인다.

 

“저렇게 책을 읽는 집중력이면 정말 공부를 해야 할 때에는 열심히 하지 않을까? 적어도 가능성을 풍부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도 웃으면서 인정한다. 그윽한 관찰에 급한 생각들이 달아났나 보다. 학원, 영어공부 등 모든 대안들을 머릿속에서 지운 모양이다.

 

사람과 침팬지의 DNA 차이는 1.7% 가량이라고 한다. 이는 말과 얼룩말의 차이보다 작다. 하지만 1.7%의 사람과 침팬지의 다름은 그야말로 천지차이다.

교토대학 영장류 연구소에서 한 실험이 있다. ‘아이’라는 엄마 침팬지와 ‘아유무’라는 자식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숫자, 언어, 이해, 학습능력 자체는 놀랍게도 사람과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는 엄마 침팬지 ‘아이’는 지식의 일부를 자식 침팬지 ‘아유무’에게 전해주었다.

그러나 큰 차이가 있었다.

엄마 침팬지는 적극적으로 자식 침팬지를 가르치려 하지 않았으며, 자식 침팬지도 특별히 배우고자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배운 행동들은 잊혀 갔다. 자식은 엄마의 행동을 보고 흉내 낸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실험을 통한 내 나름의 결론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부모는 적극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자녀가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면, 그 가르침의 시기와 속도, 방향을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둘째는 자녀는 적극적으로 배울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녀가 영혼 없는 흉내 내기를 할 뿐이라면, 그 가르침이 제대로 된 것인지 뒤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가르치려, 아이는 배우려 한다.

나는 가르치며 배운다. 아이는 배우며 성장한다. 내가 흔들릴 때는 아이가 바로잡아준다. 아이가 흔들릴 때는 내 조언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바로잡는다.

이렇게 서로 가르치고 배우며 성장한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다.

사실은 마음이 조급하다.

저녁을 먹다가 수행평가를 본 이야기를 아이가 먼저 꺼낸다. 요즘 부쩍 공부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신경을 쓰긴 쓰는 모양인지 기특하다. 하지만 ‘언제 수행평가를 봤지?’라고 생각하며, 부모로써(엄밀히 말하면 아빠로써) 너무 무심한 건 아닌지 뜨끔하다.

 

“수행평가 봤는데 선생님한테 칭찬받았어. 국어, 수학, 과학은 다 통과야. 이제 세 개는 자신 있어. 근데 영어는 10개 중에 5개 틀렸어.”

 

딱히 해줄 말이 없어 원론적인 답변을 해준다.

 

“완전 천재네. 영어는 반이나 맞았으니 대단한 건데? 우리나라 말도 아니잖아.”

 

대화주제를 살짝 돌리며, 격렬하게 ‘영어 학원을 보내? 말아?’를 교대로 생각하며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옛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관자(管子)에 ‘일수백확(一樹百穫)’이라는 말이 있다. 곡물을 심으면 한 번의 수확이 있고,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백 번의 수확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나무가 자라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만큼의 시간만큼 수확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흔히 장기적인 인재양성의 중요성과 기다림을 역설하는 사자성어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인간이면서 부모니까 흔들린다는 얘기다.

다만 비료의 오류와 일수백확을 떠올리며 이번 방학에는 아이가 마음껏 놀 수 있게 꾹 참는다는 얘기다.

나중에 아이가 아이를 낳아 같은 문제로 고민할 때 참고서와 같이 참고 쓸 수 있는 하나의 사례를 제시한다는 얘기다.

 

아이는 각자 다르지만, 부모는 모두 같으니까.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홍기확 칼럼니스트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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