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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잔소리
아이의 잔소리
  • 홍기확
  • 승인 2017.06.26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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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39>

자식(子息)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어느 부모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첫째로는 사랑의 존재. 둘째로는 ‘새끼’

‘자식’을 사전에서 찾으면 첫 번이 뜻에 부모가 낳은 아이로 나오며, 두 번째로는 ‘다른 사람(특히 남자)을 욕하는 말’로 쓰인다. 놀랍게도 일본어, 중국어 사전도 마찬가지다. 섣부른 유추를 하자면, 한중일 삼국에서 자식은 보통 남자아이가 말썽이다.

육아에 있어서도 보통은 여자아이가 편하다고 한다. 남자아이는 ‘여자’인 엄마가 이해 못하는 행동을 다수 한다. 쓸데없는 경쟁을 하거나, 싸우고, 엉뚱한 짓을 뻔뻔스럽게 저지른다. 당황한 엄마는 한참 고민하다 반문한다.

 

“쟤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러지?”

 

아빠를 닮아서 그렇다.

좋은 것은 보편적으로 엄마를 닮고, 말썽부리는 것은 필수적으로 아빠를 닮았다. 쓸데없는 변명을 하자면 남자에 왕성한 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인 남자아이와 남자아빠가 둘이 싸우는 경우가 문제다. 엄마는 이 때 정신이 나간다. 이해 못하는 ‘자식’이 두 명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 나쁠 때보다는 좋을 때가 많다는 것. 나쁠 때를 극복하면서 함께 자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가족이 아닐까?

 

아내가 약속이 있어 놀러 간 어느 날. 책을 읽던 아이가 쪼르르 오더니 당당하게 외친다. 아이의 뜬금없는 얘기는 나를 생각 속에 빠뜨린다.

 

“아빠는 왜 이렇게 안 웃어? 나는 엄마처럼 예쁜 여자랑 살면 하루에 10분은 웃을 텐데?”

 

내가 그렇게 안 웃나하며 뒤돌아보게 된다. 어느새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는 부쩍 성숙해졌다. 꼬마 철학자처럼 자기의 생각을 말할 때마다 기특하기도 하고, 은근히 자극도 된다.

 

1967년 토머스 홈스(Thomas Holmes)와 리처드 라헤(Richard Rahe) 두 정신과 의사는 5천명이 넘는 환자들의 진료기록을 연구해 보았다. 그리고는 각각의 생활사건에 1점에서 100점까지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스트레스 등급』을 만들어 발표했다.

 

1위는 단연코 배우자의 죽음으로 100점이다. 2위는 이혼으로 73점. 6위는 심한 부상이나 질환으로 50점. 7위는 결혼으로 47점. 14위는 출생 등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것으로 38점이다. 생노병사가 1~14위에 분포되어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18위다. 열여덟 번째 스트레스는 ‘직장에서의 배치전환이나 전근’으로 36점의 스트레스를 보인다. 이는 가까운 친구의 죽음과 점수가 같으며, 부부싸움, 자녀의 결혼, 배우자의 퇴직, 이사보다 높은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요즘 웃음을 많이 잃었던 이유는 결국 최근 오랫동안 익숙했던 쓰레기 처리 업무에서, 뜬금없는 박물관 운영업무로의 배치전환이 큰 이유라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화두(話頭)를 제시해준 아들이자 꼬마 철학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아이가 나에게 잘 웃지 않는다며 했던 얘기를 아내에게 하자, 아내도 역시 덧붙인다. 요즘 내가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혼자서 힘들었노라고.

사실 업무가 극단적으로 바뀌며 안정기까지 몇 달 동안 야근과 주말의 출근 등으로 집안일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었다. 아들과 아내의 연타 공격은 한 순간에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 주었다.

 

자식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농사를 직접 지어보지는 못했지만 감귤박물관에서 근무하며 흐름쯤은 안다. 농사는 계획을 세우고, 씨를 뿌리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시작이 반이 아니다. 수년에서 수십 년의 노력을 들여야 결실을 맺게 된다. 하지만 노력이 투입 되도 결실은 쭉정이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노력도 없다면 농사는 반드시 망친다.

자식 키우는 것도 농사와 같다. 흔히 자식농사라 한다. 자식을 낳기보다, 부모 되기가 더 어렵다 한다.

이렇게 보면 자식을 키우는 일은 결국 ‘부모 되기’라는 훈련이 아닐까? 그리고 자식은 우리에게 누군가의 아들딸에서 ‘부모’로 새로운 탄생을 가능케 하는 매개물이 아닐까?

 

부모님은 나에게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다 큰 성인이니까.

아내는 나에게 잔소리를 가끔씩 한다. 그것도 상처받을까봐 수 십 번 생각하고, 에둘러 말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아내의 잔소리가 잔소리였는지 잘 알지 못한다.

실질적으로 내게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이뿐이다. 직설적이고, 날카롭게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촌철살인의 조용한 사자후(獅子吼).

 

아이의 잔소리가 정겹다. 그리고 아이의 잔소리를 통해 나는 점점 부모가 되어간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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