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02:12 (토)
“제주포럼은 왜 12년 동안이나 4.3을 외면해 왔을까”
“제주포럼은 왜 12년 동안이나 4.3을 외면해 왔을까”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7.06.0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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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일 주교 기조강연 “가장 불의한 집단적 폭력에 가담‧방조할 것인가?”
사상 첫 제주포럼 4.3 세션, 4.3 유족 및 관련 단체 등 참석 ‘높은 관심’
‘제주4.3, 동아시아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 그리고 평화’를 주제로 한 4.3 세션이 제주포럼 마지막날인 2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됐다. ⓒ 미디어제주

 

“그동안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이 11차례나 개최됐지만 제주에서 평화를 논하면서도 제주도민들이 현대사에 겪어온 고난과 압박과 희생의 역사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성찰도 생략된 채 세상의 평화를 논하고 토론하는 일이 많은 제주도민들에게는 참으로 현실과는 무척 동떨어진 형언할 수 없는 공허로 다가왔습니다”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가 제12회 제주포럼 마지막날인 2일 오후, 4.3 세션 기조강연에서 내놓은 첫 마디가 세션장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의 가슴에 꽂혔다.

 

그랬다. 제주포럼에서 4.3 세션이 마련되기까지 무려 1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제주포럼에서 처음 4.3이 다뤄졌기 때문일까. 이날 4.3 세션은 시작되기 전부터 방청객들이 세션장을 가득 채워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4.3 세션이 진행된 203번 방에는 “정부는 4.3 당시 불법 감금된 행방불명인의 진상 조사를 실시하라”는 현수막이 내걸리기도 했다.

 

강우일 주교가 2일 제12회 제주포럼 제주4.3 세션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강우일 주교는 ‘4.3에 대한 근원적 성찰’ 기조강연에서 열흘 전 4.3 생존자인 오태경씨와 함께 미국까지 가서 4.3 관련 증언을 들은 내용을 전하면서 “어떤 이유로도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범죄가 제주 전역에서 자행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당시의 사회적 불안정과 혼란을 감안한다 해도 제주도민 전체를 향해 행사된 무차별적인 폭력의 원인과 배경을 밝혀 책임 소재를 규명하고 4.3 전반에 대한 역사적 정립이 올바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국민 전체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불의한 집단적 폭력에 가담했거나 방조한 피의자의 혐의를 벗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또 그는 “4.3의 비극에 대한 책임 규명이 온전히 이뤄지지 않은 채 반세기 넘는 세월을 은폐, 묵살, 침묵으로 보내온 대한민국은 이대로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로서의 정당한 권위와 법통을 보여줄 수 없을 것”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미 군정하에서 4.3이 발발하고 오라리 방화 사건으로 평화협상이 깨지는 과정에 경찰측의 음모가 있었음에도 미 군정이 진상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채 제주도를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Red Island’로 규정, 공산 세력을 완전히 소탕하라는 지시만 내렸다면서 미국이 4.3에 대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와 함께 그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큰 참극이 땅속 깊숙이 파묻혔다가 50년이 지나서야 봉인이 풀리기 시작했지만 아직 제주 4.3은 국민 대부분이 인지하지 못하고 과거 무덤의 봉분 속에 파묻힌 잊혀진 사건”이라면서 “4.3의 진실한 배경과 정황, 책임이 올바로 밝혀지고 국민들의 올바른 역사 이해가 바로 서고 더 나아가 관계되는 나라들의 역사 인식이 바로잡혀지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참된 진리와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다운 민주주의 사회로 발돋움해 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제대로 된 진실 규명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강창일 국회의원도 축사에서 “이 평화포럼이 4.3 때문에 만들어졌고 장쩌민, 고르바초프가 제주를 다녀가면서 세계적인 행사로 자리매김됐고 노무현 정부 때도 제주도가 주체가 돼 자연스럽게 논의가 이뤄졌지만 이후 4.3이 제주포럼에서 한 번도 거론된 적이 없다”고 제주포럼이 완전히 변질돼 버렸음을 호되게 질타했다.

 

그는 “이번 4.3 세션이 일회성으로 끝나선 안되고 앞으로 더욱 내실을 기하는 제주포럼이 돼야 할 것”이라면서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고 알맹이는 없는 외화내빈식 행사는 지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어 진행된 ‘제주4.3, 동아시아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 그리고 평화’ 세션에서는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이 좌장을 맡아 린란팡 국립기남국제대 교수의 ‘전후 정치사건 속에서의 대만 여성들’, 미야키 키미코 오키나와대 교수의 ‘오키나와와 제주를 둘러싼 폭력의 구조’ 주제발표와 토론이 진행됐다.

 

허영선 제주4.3연구소 소장의 진행으로 ‘제주4.3, 동아시아 여성과 소수자의 인권 그리고 평화’ 세션에서 주제발표와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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