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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해록에 나오는 선마고(詵麻姑)와 설문대할망이 동일인물?”
“표해록에 나오는 선마고(詵麻姑)와 설문대할망이 동일인물?”
  • 미디어제주
  • 승인 2017.05.2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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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거짓투성이 설문대할망 신화 <3> 본론(本論) ②

구전으로 전해져온 ‘설문대할망’을 제주 창조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이 제주지역 학계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이처럼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신화로 만들어가는 데 대해 관련 전공자인 장성철씨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 취지의 반론적 성격의 글이다. 실제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현승환 교수도 지난 2012년 ‘설문대할망 설화 재고’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연재 기고를 통해 설문대할망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다시 시작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설문대할망 관련 문헌 기록 중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장한철의 『표해록』(漂海錄). ⓒ 국립제주박물관

 

3. 탐라 민중의 상징에서 여신으로 둔갑한 설문대할망 ②

 

3.1. 신화론자들은 단언한다. “설문대할망이 여신이라는 증거가 『표해록』에 있다”라고.

 

『표해록』(漂海錄)은 제주 한림 출신 장한철이 과거에 응시하려고 산저포(山底浦, 현 제주항)에서 상인들과 함께 배를 탔는데 그 배가 풍파에 떠밀리는 바람에 유구국(琉球國, 현 오키나와)까지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귀향하여 쓴 회고록(回顧錄)이다. 일단 그 내용을 보자.

 

3.2. 或起拜向漢拏而祝曰 白鹿屳子活我活我 詵麻屳婆活我活我 盖耽羅之人諺傳仙翁騎白鹿遊于漢拏之上 又傳邃古之初有詵麻姑步涉西海而來遊漢拏云[혹은 (상인들 중 일부가) 일어나 한라산을 향해 절하며 이르기를 “백록선자께서는 (저희들을) 살려줍서, 살려줍서! 선마선파께서는 (저희들을) 살려줍서, 살려줍서!”라 축원한다. 대저 탐라인의 옛말에 선옹이 백록을 타고 한라산 위에서 놀았다 하고, 또 아득한 옛날 처음으로 선마고가 걸어서 서해를 건너와 한라산에서 놀았다 한다.] -1771년 정월 초닷새

 

3.3. 위 인용문 중 ‘詵麻屳婆’(선마선파)에서의 ‘屳’은 ‘산(山)에 살면서 산 위를 날아다니다’라는 뜻의 글자로 ‘도교(道敎) 신선(神仙)’을 뜻한다. 도교 신선이란 대개는 한창나이에 ‘불로장생술’을 터득하여 ‘(늙어 죽지 않고) 산 채로’ 신(神)의 반열에 오른 자들이다.

 

도교는 중국 토착 신앙이 한말(漢末)에 도가(道家)와 불교의 자극을 받아 톈타이산맥(天台山脈) 일원에서 거듭난 종교이다. 불교는 도교 성립 훨씬 이전에 인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으로 전래되었다. 그러고 보면, 도교가 탐라로 전파된 것은 한말 이후의 일인 셈이다.

 

3.4. 신화론자들은 위 인용문 중 두 부분을 설문대할망과 관련짓는다. 하나는 ‘詵麻屳婆(선마선파) 곧 詵麻姑(선마고)’이다. 그러니까, ‘선마(고)’와 ‘선문(대할망)’은 외형상 비슷한 글자이니 양자는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다. ‘선문대’는 ‘설문대’의 이형(異形)이다. 다른 하나는 ‘처음으로 선마고가 걸어서 서해를 건너와 한라산에서 놀았다’이다, 그러니까, 선마고가 키가 한라산만한 설문대할망이 아니라면 서해를 첨벙첨벙 걸어 건너올 수는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3.5. 위 두 주장에 대한 논박(論駁) : 첫째, 외형상(外形上)의 유사점을 가지고 동일 인물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논리학에서의 ‘부당관찰(不當觀察)의 오류’(fallacy of malobservation)를 범하는 것이다. 환각이나 착각 또는 개인적 편견 등으로 인하여 사실의 진상을 잘못 관찰하고서도 그것이 정당하다고 확신하는 데에서 오는 오류 말이다. 그러니, 신화론자들은 먼저 ‘선마고’와 ‘설문대할망’의 자의(字意)에 대한 풀이부터 해야 한다.

 

둘째, 설문대할망과 선마고가 동일 인물이라면 설문대할망은 선녀(屳女)라는 말이다. 선마고가 선녀이니. 그럼, 설문대할망도 산에 살면서 산 위를 날아다녔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셋째, 선녀는 중력을 받지 않는 존재라 해면(海面) 위를 가벼이 걸어, 아니, 스키를 타듯이 미끄러져 다닐 수 있다. 그런 선녀가 왜 서해를 ‘첨벙첨벙 걸어’ 건너온단 말인가?

 

넷째, 『표해록』은 “처음으로 선마고가 서해를 건너와 한라산에서 놀았다”라 하고, 신화론자들은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만들었다”라 한다. 그런데 선마고와 설문대할망이 동일 인물이라면 그 두 주장 중 하나는 거짓이다. 전자가 옳다면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만들었다는 것은 거짓이고, 후자가 옳다면 선마고는 한라산을 만들어 놓은 연후에 거기서 놀았어야 한다.

 

다섯째, 『표해록』에 의하면, 선마고는 도교의 소산이다. 도교는 한나라(202 B.C.~A.D. 220) 말기에 성립되었다. 한편, 신화론자들은 말한다. 설문대할망은 모계중심사회(10,000~5,000년 전) 소산이라고. 그런데 선마고와 설문대할망이 동일 인물이라니,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여섯째, ‘詵麻姑’(선마고)에서의 ‘詵’은 ‘설다’(뜻: 설익다, 어리다, 젊다)의 관형사형 ‘선’의 차자(借字)이고, ‘麻’는 이름[또는 성씨(姓氏)]이고, 그리고 ‘姑’는 ‘미혼 여자(처녀 · 아가씨 등)의 호칭’이다. 이는 선마고의 뜻은 ‘어린 마(또는 마씨) 아가씨’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선마고는 ‘천태산(天台山: 중국 도교 발원지) 선녀 마고’인 셈이다. 다음은 선녀 마고에 대한 것이다.

 

“(전략) 잠시 후 마고가 왔는데 18세쯤의 절세미녀로 (중략) 마고는 (중략) 쌀을 집어들어 땅에 뿌렸다. 그러자 쌀은 불로장수약인 단사(丹砂)가 되었다. 마고의 손톱은 흡사 새의 발톱처럼 변해 있었다.”(『도교의 신과 신선 이야기』, 구보 노리타다(窪德忠), 2004, 뿌리와이파리, 188쪽)

 

3.6. 주인공이 신선(곧 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설화가 신화로 판명되는 것은 아니다. 신이 주인공인 설화가 신화인지의 여부는 본문 내용 여하에 달린 문제이다. 물론 신은 ‘구비문학으로서의 신화의 대상’ 여부와 상관없이 ‘종교(도교) 행위로서의 신앙의 대상’일 수 있다.

 

4. 맹신(盲信)으로 이성(理性)을 왕따하는 설화 연구가들.

 

4.1. 1970년대에 제주대학(설화 담당교수 현용준)에서 설화를 공부한 학생들은 ‘설문대할망 설화와 오백장군 설화가 별개의 전설이라는 것’, 그리고 ‘모씨(某氏)가 오백장군 전설 도입부 “옛날 어떤 어머니가 아들 오백 명을 낳았다”에서의 ‘어떤 어머니’를 ‘설문대할망’으로 고쳐 놓았다는 것‘ 곧 ’설문대할망을 오백장군의 어머니로 조작해 놓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다.

 

4.2. 1970년대 말엽에 제주대학에서 공부한 현승환(제주대학교 국어교육학과 교수)은 위 조작에 대한 전모를 논문 「설문대할망 설화 재고」(2012년)에서 소상히 밝혀 놓았다.

 

4.3. 그러자 신화론자들이 위 논문에 대한 공격을 퍼부었다. 요지는 ‘설령 조작되었다 하더라도 오늘날 스토리텔링에서 설문대할망을 오백장군 어머니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설화에서도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막힐 노릇이다. 사실, 설화는 민중 공동체 삶의 소산이다. 이는 설화는 역사에서의 ‘1차 사료’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아니, 1차 사료의 조작을 용인하라고? 도대체 이런 논문들이 어떻게 심사를 통과했는지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

 

4.4. 설화는 학문이다. 그리고 학문은 맹신(예: 여항간의 스토리텔링)에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간 연후에 직관(直觀)에 의탁하는 것이다.

 

4.5. 스토리텔링은 유의미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거짓말하기’가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하기’여야 한다. 인생이 그렇듯이 말이다.

 

 

<프로필>
- 국어국문학, 신학 전공
- 저서 『耽羅說話理解』, 『모라(毛羅)와 을나(乙那)』(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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