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1:36 (수)
"더불어 잘 사는 한 해 될 수 있겠죠?"
"더불어 잘 사는 한 해 될 수 있겠죠?"
  • 한애리 기자
  • 승인 2007.01.02 13:2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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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제주시 재래시장 상인들의 '희망 릴레이'

설이나 추석 명절때면 시장에 나온 사람들에 치여 장보기가 두려울 정도였던 적도 있었는데, 신정에 식구들끼리 먹을 떡국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법도 한데 1월 1일 제주시 동문시장은 관광객과 일부의 도민들만이 썰렁한 시장의 인적을 남길 뿐이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30여년을 '인생의 길'로 알고 살아온 이들의 절절한 심정 그리고 소박한 새해 소망을 들어봤다.

"나 혼자 잘 살면 되나? 이웃들이 장사가 잘 되고 서로 더불어 잘 살아야 그게 진정으로 잘 사는거지"

나와 더불어 이웃을 생각하는 김양옥씨(68)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인생 수양을 하러 들으러온 느낌이다.

30여년간 야채와 채소장사를 해 오고 있는 김씨는 20년전 차비 '20원'을 아끼려고 365일 비가오나 눈이오나 걸어서 1시간여 집까지 걸어오고 걸어가고 했었다고 한다.

또 지병으로 지금은 이 세상을 떠난 남편의 병수발 등으로 가계는 기울대로 기울었지만 절대 위를 보지 않고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도 살고 있을텐데...' 희망을 버리지 않고 꿋꿋하게 살다보니 이젠 자신의 명의로 가게도 하나 마련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김씨는 "지난해 우리 시장 경제가 정말 어려웠던 건 사실"이라면서 "새해에는 경기가 좀 풀리고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고 상인들 스스로가 화를 부를 수 있는 과욕을 삼가고 적당한 목표를 정해서 살면 매일 '죽겠다'는 소리대신 '살만하다'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장사가 안돼도 너무 안돼. 이를 아마 최악이라고 하는가봐"

30년간 제주시 동문시장 입구에서 포목집을 경영해 온 김영자씨(63)는 "장사를 한 30년 하면 뭘하나, 그 어려울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다보니 남는게 하나 없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내년엔 대통령 선거도 있다던데 대통령이 바뀌면 경기가 조금이라도 풀렸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레 새해 희망을 말해본다.

'동문통 떡볶이 인생' 12년이라는 양미란씨(45)는 "모든게 옛날 같지가 않다"며 "우리 어릴 적에는 별도의 간식이 없고 산열매, 농작물이 맛잇는 간식의 전부였지만 요즘은 떢복이외에도 도넛, 피자에 치킨 너무 그 종류가 다양하다보니 서민의 간식거리인 떡볶이가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양씨는 또 "저출산이다 뭐다 사람들은 줄어들고 기존 상가에 대형할인매장에 하루가 멀다하고 늘고 있으니 살아가는게 너무 팍팍하다"고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올해는 서민들이 사는 곳, 재래시장에 대한 관심과 발걸음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얘기했다.

형광색종이에 검은 매직으로 씌여진 수레 위 '요술버선' 글자 또한 재래시장이 아니면 보기 힘든 재미있으면서도 인간미 느껴지는 풍경.

왜 요술 버선이냐는 질문에 김옥경씨(47)가 "마음대로 늘어나는 버선이라 요술버선"이라며 온 얼굴로 웃어보인다.

김씨는 "올해처럼 장사가 안 돼 본 적도 없는 것 같다"면서 "2007년 새해에는 서민들의 소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경기도 좀 풀리고 사람들이 재래시장을 찾아와서 지갑을 열어주면 그걸로 족하다"며 소박한 새해 소망을 풀어놓는다. 

해도 바뀌어 새해가 밝았건만, 동문시장 김향자씨(63) 빵집은 아직도 2006년 12월 25일이다.

올망졸망 맛있게 튀겨진 도넛들과 더불어 입구 천정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씌여진 글자가 아직도 떠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김향자씨는 "우리 손자가 태어날 때 이걸 시작했으니 이 빵집도 손자와 나이가 똑같은 23살"이라며 "손자가 지난 크리스마스 때 직접 써주고 간 것"이라며 때 지난 '크리스마스' 글자를 떼어낼 줄 모른다.

듬성듬성, 대충대충 쓴 글자 같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팔고 있는 도넛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날개 돋힌 듯 팔리길 기원하는 혹은 그리하는 것 만으로도 기뻐하는 할머니늘 떠올리며 한 글 한 글 써놨을 손자를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진다.

김씨는 "난 아무쪼록 새해에는 내가 더 건강해야 해야 한다"면서 "부모없이 자란 우리 손자한테 짐이라도 되지 말아야지"하면서 눈시울을 젖신다.

아들과 며느리가 집을 나간 이후 손자의 뒷바라지를 도맡아 왔다는 김씨는 "손자가 대학에 입학하고 이제 군대갔지만 이 돈없고 힘없는 무능한 할머니 때문에 학교를 중단한 것"이라며 "그저 새해에는 건강하고 우리 경제가 좀 풀리면 좋겠다고" 작은 소망을 이야기 해본다.

제주시 하귀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홍성원씨(61)도 만났다.

지난해 7000평 이상의 땅에 무, 배추, 양배추를 심었지만 모두 산지폐기하는 아픔을 겪었다는 홍씨는 "농민이 죽으면 나라가 곧 죽는 거"라며 "당연하지만 너무 어려운 소망이 내 땅에 땀과 정성으로 심은 농작물들을 적든 많든 수확하는 기쁨"이라고 말했다. 

홍씨는 "내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냐"며 "평생 땅을 일궈 살아 온 일, 이제 와서 내가 기술을 배워서 새로운 인생을 살 것도 아니고 부디 정직하게 그리고 열심히 노력한 만큼 뿌린대로, 일군대로 거둬들일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작은 소망을 되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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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2007-01-02 17:28:15
모두 잘 살 날이 올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