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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바로 그날, 구럼비 바위 발파의 기억을 소환하다
5년 전 바로 그날, 구럼비 바위 발파의 기억을 소환하다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7.03.0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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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낮 12시 강정 해군기지 정문 앞 기자회견 후 멧부리로 소풍 간 이들
“다시 찾은 ‘구럼비 광장’·‘할망물로’ … 우리 삶으로 구럼비를 기억하겠다”
5년 전 구럼비 바위 발파 작업이 시작된 날을 기억하기 위한 ‘구럼비의 하루’ 행사가 7일 강정마을 일대에서 진행됐다. 사진은 멧부리에서 본 범섬과 제주해군기지 모습. ⓒ 미디어제주

5년 전 3월 7일, 강정마을에는 새벽 동이 트기 전부터 싸이렌이 울렸다. 제주해군기지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중 구럼비 바위를 깨뜨리기 위한 발파 작업이 처음 시작된 날이었다.

7일 강정마을에서는 바로 그 날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낮 12시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강정 주민들과 평화 활동가들은 인간 띠 잇기 퍼포먼스와 공연에 이어 점심 나들이에 나섰다.

강정천 옆 작은 공터로 자리를 옮긴 이들은 각자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마치 가족들과 함께 소풍을 온 듯한 분위기였다.

이어진 3부 순서는 ‘구럼비와 포옹’. 멧부리를 찾은 이날 행사 참가자들이 각자 준비한 시와 노래, 율동과 함께 구럼비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는 시간이었다.

홍기룡 제주평화인권센터 소장은 “그날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지만, 이렇게 유쾌한 방식으로 구럼비에 대한 추억을 나누는 시간이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부터 주소를 강정으로 옮겨 살면서 강정 주민이 된 문정현 신부도 “싸움도 즐겁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미 해군기지는 완공됐지만 미군이 주둔하지 않을 거라던 그들의 거짓말이 이제 와서 모두 들통나고 있다. 공군의 남부탐색구조부대 배치 계획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제주 섬 전체가 군사기지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우려했다.

7일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5년 전 구럼비 발파를 기억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미디어제주
7일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5년 전 구럼비 발파를 기억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미디어제주

해군기지 정문 앞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5년 전 오늘 3월 7일 구럼비 발파를 기억하며’라는 제목의 회견문을 통해 “5년 전 어느 봄날, 구럼비는 한낱 바위덩어리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의해 산산조각났다. 전쟁 포로가 처형되듯 군사작전 속에서 구럼비는 파괴됐다”고 그날의 기억을 소환해냈다.

구럼비에 과거를 남기고 쫓겨난 강정 주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구럼비를 지키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던 일, 폭약이 운반되는 길을 막겠다며 자동차와 오토바이까지 동원됐던 일, 스스로 ‘인간 사슬’이 되기를 자처하면서 경찰이 끊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 단단히 서로의 손을 붙잡고 폭약이 운반되는 것을 막으려 했던 일, 폭파 직전의 구럼비에 몸을 던지려는 각오로 바다로 향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되살려 냈다.

이어 이들은 “오늘은 구럼비를 저마다 가슴 속에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면서 “우리에게 구럼비는 햇살과 바람이 되어 우리 곁에 머물고 있고, 끊어지지 않는 사랑과 연대의 정신으로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는 구럼비를 삶으로 기억한다. 구럼비가 오랜 세월 품고 있던 생명과 평화에 대한 흔적이 점점 지워지는 현실에 맞서 우리는 삶으로 구럼비를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기억을 잠시 잃어버렸던 이름으로 강정마을 곳곳에 다시 새겨보고자 한다”는 각오를 다졌다.

바로 이런 취지에서 이들은 천막 미사와 인간 띠잇기가 끝나고 삼거리 식당으로 식사하러 가는 길을 ‘할망물로’로, 매일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과 함께 음악과 춤, 기도와 연설이 끊이지 않았던 드넓고 푸근한 구럼비 바위를 기억하면서 매일 인간 띠 잇기를 하는 해군기지 정문 앞의 넓은 길에 ‘구럼비 광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다시 되찾은 ‘구럼비 광장’과 ‘할망물로’는 여전히 우리를 감싸고 있는 구럼비의 생명과 평화의 숨결을 삶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우리의 결단이자 행동”이라며 “이 곳을 통해 우리는 때로는 우리 자신이 구럼비 바위의 일부가 되기도 하면서 계속 꿈을 꿔나갈 것이며 원래 있던 그 자리에서 구럼비를 되찾는 일, 바로 그 곳에서 구럼비를 다시 만나는 그 날을 기다릴 것”이라는 소망을 전했다.

한편 이날 저녁 7시부터 강정마을평화센터에서는 한겨레 허호준 기자의 ‘4.3을 통해 본 강정의 미래’ 강연이 이어진다.

문규현 신부가 ‘해군제주기지’라고 씌어진 표지판의 한 글자를 가려 ‘미군제주기지’로 둔갑시켜 최근 줌월트 구축함 배치를 시사한 미국과 국방부 관계자의 발언을 비판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해군기지 정문 앞 기자회견 직후 강정천 옆 공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 미디어제주
3부 순서로 진행된 ‘구럼비와 포옹’ 프로그램 중 참가자들이 노래에 맞춰 율동을 즐기고 있다. ⓒ 미디어제주
3부 순서로 진행된 ‘구럼비와 포옹’ 프로그램 중 참가자들이 노래에 맞춰 율동을 즐기고 있다. ⓒ 미디어제주
3부 순서로 진행된 ‘구럼비와 포옹’ 프로그램 중 참가자들이 노래에 맞춰 율동을 즐기고 있다. ⓒ 미디어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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