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없는 도로는 핑계다” “6대 지켜온 가문의 역사·문화 더 중요”
지난 8일 제주시 삼도2동 주민센터 회의실에서 열린 주민설명회. 그 자리는 ‘파행’이라는 단어 하나로 압축된다. 파행이 된 이유는 있었다. 주민들은 ‘차 없는 거리’에 대한 주민설명회를 한다고 하길래 참석했다고 한다. 하지만 ‘관덕정 광장 복원사업’이라는 타이틀에 주민들은 이성을 잃고 말았다.
주민설명회가 끝난 다음날이다. 기자에게 전화를 건 한 주민은 “서문이 복원되느냐”고 물었다. “서문이 복원되면 집을 내놓아야 한다. 정말 복원되느냐”고 계속 되물었다. 그러면서 주민들의 얘기를 듣고 취재를 해달라는 주문을 해왔다.
기자가 해당 지역 주민들을 만난 건 지난 13일 오후다. 이곳에서 60년간 철물점을 해왔다는 이병호씨 가게에 주민들이 모였다. 주민들이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이병호씨는 철물점을 찾아온 이들을 응대하느라 바빴다. 이병호씨는 ‘차 없는 거리’가 되면 쫓겨나야 한다면서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했다.
“관악제 전야제를 관덕정 일대에서 하겠다고 해요. 탑동에 시설이 다 돼 있는데 왜 여기서 할까요. 우선은 ‘차 없는 도로’를 만들어 판을 키워서 행정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차 없는 도로는 핑계죠. 4차선에 차 없는 도로를 만드는 곳이 어디 있나요.”
주민들은 행정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다. 산지천 주변으로 탐라문화광장이 조성됐으나 그걸 보는 이들은 갑갑하기만 하다. 관덕정 일대를 ‘차 없는 도로’로 만들고, 여기에 광장을 만들면 탐라문화광장과 똑같이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런 우려와 함께 주민들은 심각한 재산상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8일 주민설명회를 ‘차 없는 거리’ 설명회로 알고 간 주민들은 ‘관덕정 광장 복원사업 주민설명회’라는 3쪽 분량의 자료를 보고서는 분에 쌓였다고 한다.
더욱이 주민설명회 때 관덕정과 아울러 서문 복원 밑그림을 그려놓고 발표하는 걸 주민들은 눈으로 보고, 들어야 했다.
주민들은 지난해 한 언론을 통해 보도된 관덕정 광장 복원 사업에 대한 기사를 꺼내들었다. 거기엔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서문 복원 사업으로 인해 수용되는 내용이 담겨 있다. 6대째 원도심에 살고 있는 유복자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어느날 한밤중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복원을 한다며 우리 땅이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차 없는 거리’ 주민설명회를 한다고 해서 갔더니 관덕정 광장 복원인 거예요. 거짓말을 한 겁니다. 이쪽 동네사람들을 무시하고, 바보로 알고 있어요. 주민들을 기만하는 거죠. 차 없는 도로를 만들면서 상권을 활성화시킨다고 하는데, 관덕정 광장에 (관광객들이) 붐비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목관아에도 사람이 가질 않아요. 우린 복원보다는 6대를 지켜온 가문의 역사와 문화가 더 중요해요.”
기자가 만난 이들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원도심 터를 지켰던 이들이다. 조상 대대로 원도심에 터를 둔, 당시로서는 ‘성안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이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조건 과거로의 복원은 반대였다. 문일선씨 부부는 집을 리모델링해야 하는데 서문 복원 계획에 따르면 그들이 사는 집과 땅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불안하기만 하다.
“주변상권을 밀어내서 민속촌을 만들려는 겁니까. 그동안 원도심을 발전시키고 했다는데 주민들에 돌아온 건 없어요. 무슨 페스티벌을 한다며 다 그쪽 사람들만 좋아라고 한 겁니다. 앞으로 차 없는 도로를 만들면 그 사람들만 좋아지는 거예요.”
기자와 만난 이들은 지역주민은 안중에도 없이 사업을 추진하는 행정을 그야말로 비토했다. 자신의 땅이 수용된다면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말도 했다. 더욱이 ‘차 없는 거리’를 제시하면서 서문 복원을 꺼내는 믿지 못할 행정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찼다. 왜 자신들의 기억에도 없는 과거에 대한 복원을 하려는가에 대한 의문도 함께였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