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제주시민의 쓰레기 일기
한 제주시민의 쓰레기 일기
  • 미디어제주
  • 승인 2017.01.1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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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형석 제주새밭교회 목사
이도동에 위치한 한 음식물 쓰레기 배출시설. 음식물 쓰레기를 담고 온 비닐봉투들이 버려져 있다. ⓒ미디어제주

12월 1일
오늘부터 쓰레기 요일제 배출을 한다고 한다. 며칠 전 제주시에서 홍보물이 담긴 우편물이 왔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복잡하냐? 나 같이 머리 나쁜 사람은 쓰레기도 못 버리겠다. 불법배출 과태료가 100만 원 이하라는데 무서워서 더 못 버리겠다. 제주시에 사는 게 무서워졌다. 쓰레기 분리하지 않고 버리는 이스라엘로 이사를 갈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니면 시골로 이사 가서 쓰레기를 태워버릴까? 우리 집 안방마님은 그것도 모르냐고 야단만 친다. 눈물 난다.

12월 3일
집안일을 끝내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갔는데 기계가 안 받아 준다. 당황해서 잠시 머뭇거렸다. 음식물 수거 기계를 봤더니, ‘FULL’(가득 참)이란 붉은 글자가 보인다. ‘이건 또 뭐냐?’ 옆에 있는 기계를 봤지만, 마찬가지다. ‘아, 옆에 클린하우스가 또 있지!’ 걸어서 갔더니 한쪽이 비어 있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음식물 쓰레기를 버렸다. 기분 좋게 돌아서는데 갑자기 자정이 넘은 시각에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고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내가 처량하게 느껴진다.

12월 9일
요일제 배출이 시작되고 한 번도 쓰레기를 버리지 못했다. 날짜를 맞출 수 없었다. 집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오늘은 기필코 쓰레기를 버려야겠다고 단단히 작심하고 안내서를 읽으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오늘은 플라스틱류를 버리는 날이다. 그동안 쌓인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리고 왔다. 기분이 후련하다가도 다른 쓰레기를 보니 근심이 다시 쌓인다. 종이는 언제 버려야 되나? 병은 언제 버리지? 다른 것들은? 안내서를 다시 공부해야겠다.

12월 28일
한 언론에서 제주 시장이 요일별 배출제 관련해서 인터뷰한 것을 봤다. 정말 놀랐다. ‘시민들 불편하라고 요일제 쓰레기 배출을 했다’고 말한다. 또 ‘시민들이 엄살을 부린다’고도 말한다. 이건 시장이 할 말이 아니다. 진짜 화가 난다. 멀쩡하게 잘 버리는 쓰레기를 불편하라고 요일제를 만들다니! 내가 개돼지 취급당하는 것 같다.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웬 잔소리가 많냐’고 질책하는 느낌을 받았다. "시청 앞에 가서 1인 시위라도 해야 할까? 우리 집 쓰레기 몽땅 들고 가서 시장실에 집어 던질까" 라고 말했더니, 안방마님께서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잠이나 자라"고 한다. 누워서, '새가슴인 내가 뭘 하겠냐'고 자책만 하다가 잠들었다.

1월 2일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리려고 정리하다보니 벌써 새벽 1시가 됐다. 고민이다. 새벽 1시엔 월요일에 버리는 플라스틱류를 버려야 할까, 아니면 화요일에 버리는 종이류를 버려야 할까? 시간이 좀 애매하긴 하다. 클린하우스를 지키는 사람에게 물어봐야겠다. 나갔더니 오늘은 지키는 사람이 없다. 가지고 나간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렸다. 쓰레기를 버리면서 몰래 불법행위를 하는 듯 죄책감이 든다.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죄책감을 느껴야 하나? 에휴... 내가 이러려고 제주도에 사는가 싶다.

에필로그
생활쓰레기 요일별 배출을 시작하면서 도무지 어떻게 버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요일별 쓰레기 배출하고 쓰레기양이 줄었다고 제주 시장은 만족해한다고 한다. 하지만 요일별 쓰레기 배출을 한다고 해서, 집에 남아있는 쓰레기가 마법처럼(?)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대로 남아 있다. 클린하우스에 버리는 쓰레기의 양만 적을 뿐, 나머지는 집에 그대로 남아 있다.

쓰레기 분리배출은 대부분의 도민이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제주시가 실적위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마트에서 종이박스를 제공하지 못하게 하면서 시민들에게 장바구니 하나라도 제공했는가? 요일별 배출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이 되려면 시험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걸로 아는데, 쓰레기 정책은 정말 공부 안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쓰레기 배출을 줄이면 쓰레기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엉터리 정책이다.

제주 시장은 마트에 가서 장을 본적이 없는 사람 같다. 집에 와서 사온 물건을 풀어 놓으면 포장지 때문에 쓰레기를 줄이고 싶어도 줄일 수가 없다. 쓰레기를 줄이려면 육지든 제주도이든 생산지에서부터 포장지를 쓰지 않도록 행정지도나 협조요청이라도 제대로 하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더구나 쓰레기 처리를 재순환할 수 있도록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요일별 배출제로 쓰레기 분리가 제대로 되면 처리 시설을 갖추겠다는 생각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정책이다. 일의 순서가 한참 잘못되었다.

제주도의 쓰레기는 포화 상태라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10년 이상 걸리는 정책을 눈앞에 불끄듯 해결 하려는 제주시 행정은 모두가 망하는 정책이다. 이런 식의 정책을 하게 되면 가까운 시일 안에 제주도 가는 곳마다 쓰레기가 굴러다닐지도 모르겠다.

현재 제주도의 요일별 쓰레기 배출은 일본 지역 배출제를 벤치마킹 했다고 한다. 일본 정책이 좋은 이유는 쓰레기 처리하는 인프라 구축이 잘돼 있고 행정이 시민의 호응을 적극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 배경은 감안하지 않고 시민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해외 사례를 흉내 낸 것에 불과하다. 흉내 내기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오히려 인력과 세금만 낭비할 뿐이다.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내 놓고 시민에게 이해를 구해야 한다.

성공하는 정책은 시민과의 대화로부터 시작된다. 시간과 예산이 많이 들어가더라도 다음 세대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청정 제주를 유지할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해야 한다. 요일별 쓰레기 배출은 모든 쓰레기 처리 시스템을 준비하고 가장 마지막에 시민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요청해야 하는 정책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기 바란다. 제발 좀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 새가슴인 제주시민은 오늘도 쓰레기 고민을 하며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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