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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배출, “‘불편’은 시민 몫, ‘편익’은 행정과 관광객 몫”
요일배출, “‘불편’은 시민 몫, ‘편익’은 행정과 관광객 몫”
  • 조수진 기자
  • 승인 2017.01.06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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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쓰레기 요일별 배출 논란]<6>요일별 배출제는 왜 실패한 정책인가?③
요일별 배출제 시행 이후 차량에 쓰레기를 싣고 다니는 현상도 생겨났다. ⓒ미디어제주

시민의 불편이 따르는 규제정책에 시민 참여를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교육 및 홍보 기간을 거쳐 시민들의 정책 이해도를 높이고 주민 의견 수렴 등 의사결정 구조를 개방해야 한다.(관련기사 ☞ "요일별 배출제는 해외 사례 '껍데기'만 베낀 정책")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있다. 형평성의 문제다. 규제정책의 경우, 정책 시행으로 편익을 얻는 수혜 집단과 정책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집단이 존재한다. 수혜 집단과 비용부담 집단이 동일하면 형평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두 집단이 확연히 분리되거나, 다양한 집단 간 비용-편익 차가 크게 차이난다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아울러 비용부담 집단 선정과 비용 정도 산정에도 형평성 문제가 개입한다. 환경 문제의 경우, 주로 원인자부담원칙(PPP: polluter-pays principle)을 적용해 형평을 조정한다. 쓰레기 문제라면 원인자인 쓰레기를 많이 생산하는 집단이 비용을 가장 많이 부담해야 한다.

요일별 배출제는 과연 형평성을 충족시킬까?

쓰레기 정책을 실시함에 따라 비용을 부담하는 집단이 편익을 얻어야 한다. 제주시에 따르면, ‘요일별 배출제’라는 정책 시행으로 시민들이 ‘불편’이라는 비용을 부담하면, ‘쓰레기가 줄어든 환경’이라는 편익을 얻는다. 비용 부담 집단과 수혜 집단이 같기 때문에 이 정책은 형평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주시가 설명하는 논리다.

시민들은 ‘요일별 배출제’에 형평성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반발한다. 비용은 시민이 대부분 부담하는데, 편익은 관광객, 기업, 행정에게까지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쓰레기 대란’의 원인자인 관광객과 건설업체, 행정기관이 부담하는 비용은 시민에 비해 적다. 특히 행정은 시민의 예산으로 운용되므로 관광객이나 기업이 아닌 시민의 편익을 위해 예산을 활용해야 한다.

곽지과물 해변도로 부근 관광객이 버린 일회용컵이 쌓여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에 바란다 '게시사진

관광객 대책은 ‘달랑’ 종량제 봉투

제주시가 내놓은 관광객 대상 쓰레기 정책은 ‘종량제 봉투’ 하나다. 렌터카와 숙박업소에서 종량제 봉투를 비치하거나 배부할 방침이라고 한다. 렌터카 업체나 숙박업소가 관광객이 사용한 종량제 봉투 내 쓰레기를 분리해 배출하지 않는다면 이 쓰레기는 그대로 소각 후 매립된다.

‘쓰레기 정책에 분노하는 시민들’(이하 쓰분시) 고성환 대표는 “제주시가 관광객 대책으로 내놓은 게 렌터카에 종량제 봉투 비치하겠다는 것뿐”이라며 “이거 해서 재활용률을 높일 수 있겠냐, 쓰레기를 줄일 수 있겠냐”고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관광객은 매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클린하우스를 방문할 필요도 없고, 가격이 오른 종량제 봉투를 구매할 필요도 없다. 제주도내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관광객이 부담하는 비용은 전혀 없다.

소규모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신창범씨(비앤비판 게스트하우스 대표)는 “숙박객들이 버리는 쓰레기양이 일반 시민인 나에 비해 엄청나게 많다”며 “시민에게만 쓰레기 줄이기와 분리배출을 강요하는 행정 때문에 화가 난다”고 요일별 배출제의 불합리를 주장했다.

제주환경운동연합 김정도 팀장은 “관광객 쓰레기 배출량이 전체 쓰레기의 25%를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다”며 “도는 반발이 있더라도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등 조례를 마련해 관광객을 대상으로 강력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거 편하게 하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정책”

지금까지 제주도내 쓰레기 수거 방식은 인력과 설비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지난 2006년 거점식 배출 방식인 클린하우스 시스템이 도입됐다. 그전까지 모든 집 앞을 돌던 수거 차량은 클린하우스만 들르면 됐다. 하지만 행정에 골치 아픈 문제가 발생한다. 클린하우스 내 종류별 분리수거함을 설치했지만 일일이 수거할 차량과 인력이 부족했다.

제주시는 수거 차량과 인력을 늘리는 대신 분리수거함 구분을 없애는 ‘놀라운’ 방법을 택한다. 시민들은 가정에서 분리배출한 쓰레기를 클린하우스에서 섞어버릴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벌어졌다.

‘쓰분시’ 회원 이길주씨는 “당시 동네 부녀회에서 마을을 위해 재활용 쓰레기 분리 작업을 열심히 한 적이 있었는데 환경미화원 분이 ‘그렇게 해도 다 섞어서 수거해가니 고생하실 필요 없다’고 하더라”며 “그 이후로 분리배출을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고 기억했다.

혼합수거한 쓰레기들은 집결장소에서 다시 선별하는 작업을 거쳤다. 제주시는 이 과정을 해결하기 위해 요일별 배출제를 시행했다. 요일별로 배출되는 재활용품이 정해져 있으니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혼합배출의 문제를 해결했다. 제주시가 아꼈다고 생각한 비용은 고스란히 시민들이 떠안았다. 집 안에 쓰레기가 쌓이고, 매일 밤마다 클린하우스로 ‘출근’해야 한다.

'쓰분시' 고성환 대표는 “요일별 배출제가 진짜 쓰레기를 줄이는 정책이라면 우리가 분노할 이유 없다”며 “수거를 편하게 하는 행정편의를 위한 방식일 뿐”이라고 제주시정을 규탄했다.

제주시는 최근 쓰레기 수거 차량과 인력을 늘리겠다는 발표를 했다. 반발 여론이 거세지자 급히 마련한 모양새다. 시민에게만 불편과 비용을 전가하기 전에 쓰레기 처리 시설과 인력을 확충할 생각을 왜 진작 하지 못한 것일까.

기자의 한 지인은 어제 늦은 시각 요일을 놓쳐 집 안 가득 쌓인 비닐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비를 맞으며 클린하우스까지 갔다 왔다고 했다. 제주시는 쓰레기의 ‘불편’을 행정과 관광객과 기업이 합리적으로 나눌 수 있는 형평성 있는 정책을 강구해야 한다.

<조수진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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