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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하라”보다는 “노는 게 의무”라는 나라
“공부를 잘하라”보다는 “노는 게 의무”라는 나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6.12.27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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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변화의 항해를 시작하다, 시즌2] <23>
독일 교육에서 배운다 ③ 로베르트 슈만 초등학교에서 배울 점
독일의 가을은 해가 짧다. 해가 뜨기 전에 학교로 나서고 있는 학생들. ©김형훈

독일의 해는 짧다. 가을과 겨울엔 더 그렇다. 11월 독일의 가을은 오후 4시면 어둠을 느끼게 한다. 해도 늦게 뜬다. 아침 8시도 그리 밝지 않다. 그런데 독일의 초등학교 수업 시작은 이때부터이다. 아침 8시 수업에 맞추려면 빨리 움직여야 한다. 학생들은 어스름이 낀 거리를 걸어 학교엘 간다.

기자도 독일의 거리를 걸었다. 닿은 곳은 로베르트 슈만 초등학교다.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프랑켄탈시에 있다. 슈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맞아 유명한 작곡가 슈만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런 상상은 깨졌다. 다른 사람이었다.

독일의 초등학교는 6학년제가 아니라, 4년제다. 독일은 워낙 학제가 복합하기에 외우기도 힘들 정도이다. 4년제 독일의 초등학교는 ‘그룬트슐레’라고 부른다. ‘그룬트’는 기초라는 독일어이며, ‘슐레’는 학교를 의미하는 ‘스쿨’이다. 따라서 그룬트슐레는 기초를 다지는 학교인 셈이다.

로베르트 슈만 초등학교. 아침 8시부터 첫 수업이 시작된다. 일찍 온 학생들이 학교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김형훈

기자가 찾은 그날 초등학교 1학년 수학 수업을 맡은 이는 교장이다. 우리나라의 교장과 달리 독일은 교장의 전담 과목이 있다. 이 학교 교장인 ‘이름가라트 네머스-가비’(60)는 수학과 국어를 전담하고 있다. 자신의 성과 남편의 성을 써서 성이 네머스-가비이다.

독일 학생들이 본격적인 배움의 길로 접어드는 시기는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우리처럼 선행학습은 없다. 유아기 때부터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배워야 산다’는 닦달을 당하는 일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갓 입학하는 아이들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기자가 1학년 교실을 찾은 그날. 네머스 교장은 1부터 20까지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조용하게 학생들의 집중을 유도한다. 북을 살살 치며 한 학생에게 다가간다. “3 더하기 2는.” 또다른 학생에게 옮긴다. “1 더하기 2는.”

우리의 1학년 교실 풍경은 어떨까. 1학년, 그것도 2학기를 맞는 애들에게 ‘1 더하기 2’를 가르치는 곳이 있을까. 상상이 되질 않는다.

아주 어려운 문제를 풀면 네머스 교장은 “잘했다”며 치켜세운다. 사실 기자가 보기엔 어렵게 보이지 않지만. 그는 연신 “잘했다”는 칭찬을 쏟아낸다.

교장은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다 둘러본 뒤 숫자와 등호(=) 기호를 바닥에 뿌려놓는다. 두 학생이 나와서 13이라는 숫자와 등호 카드를 집어 올린다. 이젠 13을 만들 차례이다. 두 학생이 더 나와서 10이라는 숫자와 3을 들어올린다. ‘13=10+3’이라는 결론을 얻고, 학생들은 위치를 바꿔 ‘3+10=13’을 만들어낸다. 그러자 어떤 학생이 손을 들어 자신은 다르게 13을 만들 수 있단다. 7 더하기 6이란다.

슈만 초등학교는 교장도 교과를 맡아 수업에 참여한다. 수학시간에 보충지도를 하고 있는 네머스-가비 교장. ©김형훈

이렇게 16분이 흘렀을까. 아니 실제 수업이 끝났다. 이어지는 건 자율학습이다. 자율학습은 먼저 끝나는 학생이 있으면, 다른 학생을 도와주기도 하고, 모르는 학생은 선생님에게서 궁금증을 해소한다. 빨리 마무리하는 학생들은 다른 책을 읽어도 상관없다.

구구단은 2학년 때부터 한다. 하지만 구구단을 익히는데 무려 1년이 소요된다. 외우기보다는 구구단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구성을 배운다고 보면 된다. 구구단을 외우지 않고, 자연스레 익히는 나라이다.

알파벳 역시 1학년에 들어와서 배운다. 앞서 얘기했듯이 선행학습이라는 건 찾아볼 수 없다. 1학년 때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한다.

그럼 대체 독일의 아이들은 뭘할까. 집에 숙제를 가져가기도 한다. 오후엔 음악학원을 가거나 취미활동을 하는 게 이들의 일상이다. 저학년 때부터 학원에 치이고, 공부더미에 쌓여 살아야 하는 우리의 애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산다. 여기 아이들은 공부가 아닌, 노는 게 일상이다. 네머스 교장의 말을 빌리면 ‘노는 것은 의무’란다.

“학교에서 행복하게 보내야 하죠. 모두 공부를 잘하는 걸 강조하지 않고, 능력에 따라 자부심을 갖도록 만드는 겁니다. 공부를 못한다고 불행하거나 하진 않아요. 초등 교육의 목적은 집을 짓는 콘크리트를 까는 것과 같아요. 기본이죠.”

로베르트 슈만 초등학교 네머스-가비 교장은 학생들이 노는 건 의무라고 강조했다. ©김형훈

여기엔 노는 시간이 있다. 일명 ‘파우제’라고 한다. 첫 수업을 70분간 진행하고, 30분의 파우제가 주어진다. 로베르트 슈만 초등학교의 파우제는 하루에 모두 2번이다. 네머스 교장은 놂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논다는 건 다시 공부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는 겁니다. 공부를 하려면 마음이 행복해야 해요. 놀면서 사회성을 배우고, 몸을 움직이면 마음도 행복해지죠. 노는 것도 공부의 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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