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수필
무협수필
  • 홍기확
  • 승인 201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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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133>

 중국문학의 많은 장르 중 우리나라에 가장 대중화된 분야는 단연코 무협소설(武俠小說)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초중고시절 김용, 와룡생 등 불세출 작가의 무협소설을 섭렵하며 한 문파의 장문인(掌門人)을 꿈꾸었고, 동네어귀나 구석진 골목에서 무공비급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나는 소설과 달리 평범하게 탄생했다. 다른 사람처럼 아버지 아들이다. 장문인의 아들이나, 원수의 손에 키워진 ‘출생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살수(殺手)가 아니었다.
 자라는 과정에서도 기인(奇人)을 만나 내공을 전수받거나, 무공비급을 필연처럼 얻어 절학(絶學)을 익히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 강호(江湖)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길을 지나다가 너무나도 우연히 사대천왕(四大天王) 만나 초식을 겨루거나, 강남칠괴(江南七怪)와 같은 괴짜를 만나 요상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

 사실 무협소설을 무수히 읽어도, 수많은 혈도가 어디 박혀있는지 모른다. 초식을 수없이 읽어도 펼치진 못한다. 뭐, 관계없다. 종합격투기를 만 시간 봐도 내가 싸움의 고수가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무협소설은 뻥이 아주 세다. 그럼에도 아직 강호(江湖)에 대한 동경이 있는 걸 보면, 더욱 말이 안 되는 공상과학소설과 같은 어떠한 매력이 있는 게 아닐까?
 
 최근 무공을 겨루다가 내상(內傷)을 입어 주화입마(走火入魔, 부상이나 무공수련의 부작용으로 내공이 뒤틀리는 것)에 빠졌다. 한참동안이나 운기조식(運氣調息, 호흡을 통해 내공을 다듬는 것)을 했다.
 음악 경연대회에서 내가 드럼 박자를 놓쳐 우리 밴드가 경연에서 떨어진 것에 수많은 자책을 했다. 나는 밴드의 장문인이다. 지금 말로 밴드의 회장이다. 장문인 스스로 한 문파를 멸문지화(滅門之禍)로 이끈 것이다. 항상 그렇듯 많은 책을 읽으며 문제점을 찾고 해결하고자 했다.
 
 직접경험은 느리다. 아기에게 물이 뜨겁다는 것을 아무리 얘기해도 모른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뜨거운 물에 데어 봐야 안다. 그다음부터는 만지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
 간접경험은 빠르다. 책 한 권으로 저자의 평생내공을 몇 시간 만에 전수 받을 수 있고, 일생의 절학을 훔칠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성인이 된 이후로 간접경험에만 함몰해 있었던 건 아닌 가 싶다. 무공비급을 얻었으나 읽기만 할 뿐, 실제로 초식을 펼치며 연습하지 않았던 것이다. 몸에 체득(體得)하고 가슴으로 터득(攄得)해야 하는데, 무공비급을 습득(拾得)하고 읽기만 해 습득(習得) 한 것이다. 잘하고 빠르고 편한 방법만 선택하고 실행한 것이다.
 
 심리학의 일대종사(一代宗師)인 칼 구스타프 융은 삶의 규칙과 습관화된 일상을 강조했다. 인간생활의 2분의 1은 ‘무의식적 상태’에서 영위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일상을 벗어나는 충격(이혼, 이별, 죽음)은 ‘의식적 상태’이며, 일상화된 삶이 있고 살았다면 훨씬 빠르게 충격에서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결국 규칙적인 삶을 보유한 개인이라면 단절적이고 단편적, 충격적인 비정상은 금세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 논리라면 여자친구랑 헤어졌다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비정상을 가속화한다. 오히려 그간 평소에 했던 것처럼 세 끼 밥 잘 먹고, 아침에 운동하는 습관이 있으면 운동하고, 밤에 잘 자면 정상으로 빨리 회복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융은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 하나를 더 제시한다. 인생을 재미있게 살면서도, 일상의 충격에 빠르게 정상으로 회복하기 위한 방법. 사람의 인격(persona)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다. 놀 땐 화끈하게 놀고,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 즐기며, 일 할 때는 열정적으로 일하고, 잠은 푹 자는 것이다. 놀 때 일 생각하고, 일 할 때 놀 생각을 하면 이도 저도 안 된다는 단순한 얘기다.

 무협지를 많이 읽었지만 솔직히 내공(內攻)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십 갑자의 내공, 고수(高手)끼리 내공을 겨루는 전투장면. 짜릿하지만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는다. 다만 내공이 급상승하는 방법은 소설에 자주 등장해서 알고 있다. 우연히 영약(靈藥)을 먹거나, 고수에게 내공을 전수받거나, 비급(祕笈)을 얻어서 내공을 늘리는 것 등이다.
 나는 영약을 먹고 내공을 얻었다. 인생의 쓴 맛을 느끼고, 겸손을 배웠다. 반대급부로 불타는 반성과 열정으로 내년 계획을 이른 시기에 세웠다. 역시나 습관화된 삶은 융의 말처럼 비일상적인 충격에서 빨리 회복하게 해 주나 보다.
 최근 새벽에 일어나는 날이 많아졌다. 일상으로 돌아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우유를 먹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키가 큰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키는 더 이상 크지 않고 성장이 멈춘다. 다만 다행인 것은 어른이 된 후부터 죽을 때까지 생각은, 내공은 자란다는 것이다.

 전제조건은 있다. 하루하루의 삶이 감격적이어야 한다. 문득 느끼는 것이지만 일상의 감격은 비정상적인 충격이 주는 역설적인 선물이 아닐까?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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