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어 PC방 주변만 맴돌아요"
"갈 곳 없어 PC방 주변만 맴돌아요"
  • 조수진 기자
  • 승인 2016.09.1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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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선원 실태]
<1>컨테이너 박스에서 10여 명이 지내기도··· "외국인선원 쉴 곳 마련 시급"

두 평 채 안 되는 방. 여름 티셔츠부터 겨울 점퍼까지 사계절 옷이 걸려있다. 부엌 한편 가스레인지 위엔 까만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프라이팬이 놓여 있다. 뒤쪽 화장실엔 변기 하나와 수도 하나가 있다. 수도 근처에 세면도구가 있는 걸로 봐선 욕실이기도 했다.

1.5평 정도 크기의 방에 외국인선원 7~8명이 지내고 있다. ⓒ미디어제주

이곳은 한림읍에 위치한 베트남 선원 7~8명이 지내는 숙소다. 선원들이 뱃일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머무르는 곳이다. 선주들은 자신의 배에 고용된 외국인선원들에게 여관이나 모텔 등 숙박업소를 잡아주거나 이곳처럼 집을 대여해 선원들이 묵게 한다.

조리한 지 오래돼 보이는 프라이팬(좌), 욕실 겸용 화장실(우). ⓒ미디어제주

베트남선원 T씨(34·연근해어선 근무 5년차)의 말에 따르면 화장실과 세면공간, 부엌이 내부에 갖춰져 있으면 그래도 나은 편에 속한다. 동네엔 컨테이너 박스 형태의 숙소도 있다. 컨테이너 박스 세 곳서 지내는 수십여 명이 간이화장실 하나를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부분 선원들은 잘 때 빼곤 숙소에 잘 머무르지 않는다고 했다.

컨테이너 박스 숙소. 몇 명이 지내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미디어제주

국내에는 2016년 7월 현재 20톤미만 연근해어선 7200명, 20톤이상 연근해어선 8441명, 원양어선 3374명의 외국인선원이 들어와 있다. 보통 원양어선을 타는 선원은 국내에 체류하지 않고 바로 승선하거나 승선하기 전 하루나 이틀 정도 단기간 체류한다. 따라서 항구 근처 숙소를 주로 이용하는 선원은 연근해어선을 타는 선원 1만5000여 명이다. 이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노동강도가 높고 근무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어업을 기피하는 내국인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선원 수가 늘어나자 그들의 열악한 숙소환경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T씨는 “(선주가) 방 안 구해줘서 배에서 자는 친구도 있다”며 “한국 선원한테는 우리보다 좋은 방 잡아준다”고 말했다. 배 밖에서도 외국인 차별대우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컨테이너 세 곳서 지내는 수십여 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 ⓒ미디어제주

“배 위에서 (외국인선원을) 때리거나 잠 안 재우고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할땐 (못하도록) 지금 당장 배 밖에 있는 우리가 도와줄 수 없어요. 그래서 최소한 뭍으로 돌아왔을 때만이라도 그들이 편하게 쉴 수 있게 해줘야겠다 싶어서 쉼터를 세울 방안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주민 상담 및 법쟁문제 해결을 돕고 있는 이주사목센터의 김상호 사무국장은 외국인선원 복지 개선을 위해 쉼터 건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힘든 어업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사무국장은 지난해 도내 외국인선원 쉼터 건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도의 지원까지 받기로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인해 무산됐다. 당시 지역주민들이 외국인선원 쉼터를 ‘혐오시설’로 여긴 것이다.

“‘시커먼 외국인들이 떼로 무리지어 다니는 것도 무서운데 쉼터까지 생기면 어떤 사고 칠지 모른다’면서 반대했어요. 그런데 애들(외국인선원) 말 들어보면 상황이 기가 막혀요. 자기네들은 낯선 곳에서 말도 안 통하는데 혼자 다니면 막막하잖아요. 그래서 한국말 좀 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 중심으로 같이 다니는 거래요.”

김 사무국장은 "쉼터처럼 그 친구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생기면 지역주민과의 갈등은 쉽게 해결될 수 있다"며 "갈 데가 없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선원들이 줄어들 게 되니 주민이 느끼던 불안감도 해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선원 T씨와 D씨가 한 외국인선원 숙소로 들어가고 있다. ⓒ미디어제주

외국인선원이 범죄 사고를 일으킬 것이라는 예상도 사실과 달랐다. 한림읍 파출소 관계자는 “가끔 주민들이 외국인들 뭉쳐 다니는 게 무섭다고 신고가 들어오긴 하는데 정작 사건 신고는 없다”며 “여기서 근무한지 3년이 돼 가는데 외국인 관련 사고가 딱 한 건인가 있었고 그것도 주민에게 직접적 피해를 준 건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조업을 끝내고 항구로 돌아오면 선원들은 그물 재정비 작업을 한다. ⓒ미디어제주

한림읍 주민의 반응도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한림읍사무소 관계자는 “처음엔 외국인들이 몰려다니니까 주민들이 많이 무서워했던 건 맞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람들도 우리 동네에서 같이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또 “(선원들이) 갈 데가 없어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라면 그 사람들도 편히 쉴 곳이 생기면 좋겠다”라며 쉼터 건립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주민센터에서 베트남 이주민 통역을 도와주는 이경미(28)씨는 외국인선원에게 가장 필요한 곳으로 인터넷이 가능한 PC를 사용할 수 있고 친구들끼리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꼽았다.

“여기 한국 와서 외국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점은 외롭다는 거예요. 특히 제주는 육지에 비해 더 심해요. 자기네들끼리 놀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으니까요. 말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소주 한 잔하고, 고국에 있는 가족과 연락할 수 있게 인터넷 사용할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해요.”

제주특별자치도 수산정책과 관계자는 “지난 2013년과 2014년에 외국인선원 쉼터 건립하려고 예산도 다 마련했다가 주민 반대로 무산됐었다”며 “도에선 주민 여론만 잘 형성된다면 지원할 생각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한 숙소 냉장고엔 오래된 냉동생선, 김치통, 쌈장통이 전부였다. 이곳에 묵고 있는 선원은 반찬이 없어 매 끼니를 밥만 먹는다고 한다. ⓒ미디어제주

내일이면 추석이다. 이번 주말엔 제주가 태풍 간접 영향권에 든다고 하니 대부분의 배는 바다에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일을 못 나가는 외국인선원들은 PC방 주변을 돌아다니거나 2평짜리 방에서, 컨테이너 안에서, 반찬 없이 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외로움을 달래야 한다. 가족과 친지들이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즐기니, '늘 한가위만 같으면 더할 나위 없다'는 추석. 올 추석은 외국인선원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외로운 명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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