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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다 “놀이는 최선의 교육방법”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다 “놀이는 최선의 교육방법”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6.09.13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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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역사 속 놀이에 주목한 사람들
놀이를 주창한 역사속 인물들. 맨 위쪽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프뢰벨, 몬테소리, 듀이, 코메니우스.

▲ 다시 가까워진 ‘놀이

변화를 쉽게 수용하지 않는 공교육계를 비롯해 새삼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놀이’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그동안 1등을 외치느라 멀찍이 밀쳐두었던 행복과 건강, 추억, 인간성 회복이 어느 날 갑자기 개인의 삶에 더 필요한 요건이 되었기만은 아니다.

더 솔직한 이유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미래형 인재가 책상 위 암기력만으로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음을 너도나도 어렴풋이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놀이는, 아이들이 즐거우면서도 그 과정에서 창의력과 개성을 기를 수 있고, 혁신적이며, 풍성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사람을 키워낼 수 있는 활동으로 다시 우리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성장에서, 특히 유아기 시절, 놀이의 중요성을 일찍이 강조해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유아교육에서 다른 무엇보다 ‘경험’ ‘자발성’ ‘흥미’ ‘놀이’ 등을 강조하며 결국은 ‘진정한 의미’의 놀이가 갖는 특질들을 설명하고 있다. 놀이가 어린이들의 성장과 교육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직·간접적으로 뒷받침하는 셈이다.

그들의 이론 가운데 일부는 오늘날 유아교육의 뼈대가 됐다. 심지어 우리는 240여년 전 태어난 독일의 프뢰벨(정확히는 그의 이름을 빌린 도서 브랜드)을 지금도 거실 책장에서 매일 같이 보고 있다. 사실은 유치원이라는 말도 그가 가장 먼저 사용했다. 독일어 ‘킨더가르텐(Kindergarten)’으로 말이다.

▲ 아주 오래전

놀이의 중요성은 현대의 학자들뿐만이 아니라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강조했다.

기원전을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는 국가의 힘을 곧 시민 개인의 힘으로 봤다. 탁월한 국가는 탁월한 시민 양성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5세 이전의 유아에게 놀이는 최선의 교육방법’이라고 설파했다.

스승이었던 플라톤도 유아기의 교육으로 놀이, 신체활동, 음악을 강조했다.

이들은 현대와 달리 아동의 가치가 성인이나 노인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시대에, 유아기 교육의 필요성과 정서적인 발달의 중요성을 주창했다.

▲ 아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현대 교육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코메니우스(1592~1670, 체코)는 6세 이전의 교육을 매우 강조했다.

그는 유아교육이 실생활과 놀이 속에서 이뤄져야 하고 이때 교육은 유아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고 충족하는 형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육을 통해 사회개혁을 열망했지만 기본적으로 교육은 만인에게 행복의 수단이라고 여겼다.

코메니우스는 어린이를 ‘어른의 축소판’이나 ‘작은 어른’으로 보지 않고 계속 성장하고 발달하는 생명체로 봤는데 이는 당시에는 매우 진보적인 생각이었다. ‘자연성’을 어린이를 이해하는 주요 개념으로 파악했다. 이러한 생각은 이후 로크, 루소, 프뢰벨, 페스탈로치 등에게로 이어지는 자연주의적 교육사상의 뿌리가 된다.

그는 ‘유아학교’ ‘대교수학’ 등 저서에서 어린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귀한 존재임을 강조했다. 때문에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이 보장되어야 하고 그들의 지적 능력, 언어, 도덕성 등이 잘 교육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육방법에 있어 프뢰벨처럼 놀이에 대해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어린이들의 모방현상과 놀이 활동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 친근한 프뢰벨

독일의 프뢰벨(1782~1852)은 어린이들의 성장에 놀이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주창하며 새로운 근대 유아교육의 틀을 만들었다.

사후 170여년이 지난 지금, 서양을 넘어 동양의 우리들에게도 ‘프뢰벨’이라는 이름과 그가 가장 먼저 사용한 ‘킨더가르텐(유치원)’이라는 용어가 우리에게 얼마나 친숙한가를 생각하면 프뢰벨이 근대 유아교육에 미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18세기 독일에서 태어난 그는 유아의 본성을 신성한 것으로 파악했다. 기본적으로 인간을 선을 추구하는 존재로 생각하고 인간과 신과 자연의 통합을 강조했다.

이런 틀 위에서 그가 바라본 교육이란 어린이들이 타고난 본성을 자연스럽게 전개해주는 것이었다. 이 때 ‘아이들이 본성을 회복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놀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 독일에서 전통적으로 유아의 놀이를 단순한 시간 소비로 생각해왔던 것과 아주 다른 시각이었다.

▲ 현대에 들어

20세기의 교육사상은 진보주의 교육사상이 중심축을 이뤘다. 여기에 실용주의 철학을 뿌리에 둔 듀이(1859~1952)의 사상이 큰 영향을 미쳤다.

듀이는 프뢰벨의 상징주의를 비판하면서 인간과 환경간의 상호작업의 개념을 제시했다. 따라서 듀이는 삶이 곧 경험이며, 경험이 바로 교육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사상에서 교사보다는 유아의 ‘직접 경험’이 강조됐고, 교과서보다 주변의 다양한 경험들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더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듀이는 실제 아동교육에 있어서 △아동의 본성에 따를 것 △아동의 흥미를 존중할 것 △자발적인 자기표현을 중시할 것 △교사와 유아가 능동적으로 상호 작용할 것을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에는 몬테소리(1870~1952)라는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의사가 아동교육과 놀이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몬테소리는 특수아 교육에서 정상아 교육으로 관심을 옮겨갔는데, 1907년 3세 이상 유아들을 위한 ‘어린이의 집’을 열어 이른바 ‘몬테소리 교육법’에 의한 교육을 실시했다.

몬테소리는 교사들의 권위주의적 교육을 반대하고 어린이의 권리존중을 주장했다.

몬테소리는 영유아는 연약하지만 출생 순간부터 이미 정신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발전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봤다. 따라서 아이들의 활동에서 ‘자발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몬테소리는 어린이의 신체·정신의 발달을 북돋우는 자유스러운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자율성과 자발성을 배우고 자기개발에 적합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고 믿었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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