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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법기관은 '자백'에 절어있는 시스템”
“대한민국 사법기관은 '자백'에 절어있는 시스템”
  • 조수진 기자
  • 승인 2016.09.11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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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제주에서 <자백> 시사회 개최...최승호 PD와의 대화 시간 이어져

초상권 침해라며 서류 봉투로 얼굴을 가리고, 시끄럽다며 검은 우산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렇게 40년을 변함없이 가리려는 자가 있고, 그들을 집요하게 쫓는 이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엔 조작된 ‘자백’과 무고한 피해자가 있다.

이날 시사회엔 400여 명이 참여했다. ⓒ미디어제주

지난 11일 제주도인터넷신문기자협회와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가 함께 마련한 다큐멘터리 <자백> 시사회가 메가박스 제주점에서 열렸다. <자백>은 지난해 떠들썩했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당사자인 유우성씨를 비롯해 국정원으로부터 간첩 혐의를 받았던 혹은 받고 있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영화가 시작되자 카메라가 여과 없이 드러내는 진실에 관람객들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국정원이 제출한 유우성씨의 출입국기록 증거가 조작으로 밝혀지고, 최승호 PD가 담당 검사에게 “우리(뉴스타파)가 증거가 잘못된 것 같다고 했을 때 왜 확인을 안했냐”,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냐”고 재차 묻지만, 검사는 “재판에 들어와서 잘 들어보라”는 말만 계속해서 반복한다. 관람객들은 앵무새 같은 검사의 대답에 혀를 차기도 하고,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최 PD가 간첩 혐의로 신문을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준식씨의 죽음을 딸에게 전하는 부분에선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

최승호 감독이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미디어제주

“국정원은 (증거) '조작 면허'를 갖고 있는 기관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 조작 면허를) 확실하게 없애버리려면 국민의 권력으로 국민의 통제를 받는 국정원으로 바꿔야 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이어지자, 최승호 PD의 거침없는 발언이 쏟아졌다.

우선, 제목을 ‘자백’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선, “영화에 나오는 모든 사건이 자백에서 시작한다”며 “국정원은 이 일련의 사건에서 증거를 내세워 ‘이 사람은 간첩이다’라고 발표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자백했다’로 간첩임을 발표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우리 사회는 아직도 누가 자백했다고 하면 증거보다 더 확실하게 믿어버린다”며 “자백이란 단어에 사회 전체의 경각심이 굉장히 필요하다”고 제목이 정해진 배경을 설명했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이어졌다. ⓒ미디어제주

간첩 조작 사건을 영화로 만들게 된 계기를 묻자, “나 역시 처음엔 수천만 명이 동시에 볼 수 있는 TV가 더 낫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지금 공영방송은 이미 권력에 장악돼 국정원 실체를 드러내기엔 한계가 있다”며 “영화는 1시간이 넘도록 사람들이 집중해서 볼 수 있는 매체라서, 사회 변화로 이어질 수 있는 영향력이 더 크지 않을까”라며 기대했다.

마지막으로 최승호 PD는 제주에서 시사회를 가진 소감에 대해, "'제주'하면 4.3이란 부분을 생각지 않을 수가 없다"며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보다 어쩌면 훨씬 더 끔찍했을 기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땅이다 보니 다른 지역과는 다른 마음가짐을 갖고 찾게 됐다"고 말했다.

스토리펀딩 후원회원 이유미(왼쪽)씨가 최승호 감독(가운데)과 사진을 찍고 있다. ⓒ미디어제주

시사회의 모든 순서가 끝났지만, 관객들은 여운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상영관 밖에서도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화가 난다", "슬프다", "충격이었다"라는 평도 있었지만, 대부분 "(다큐답지 않게) 재미있다"는 평이었다.

서귀포시에서 들뜬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왔다는 이유미(다음스토리펀딩 후원회원)씨는 “생각지도 못했던 시사회 얘기를 듣고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다큐 영화라는 특성상) ‘자리가 다 안차면 어쩌나’하고 걱정했다”며 “오늘 여기 와서 보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됐겠다”고 웃음 지었다.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 폭력이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부당한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자백처럼 진지한 소재를 가지고도 재밌게 만든 영화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고권일씨(왼쪽)가 최승호 감독과 사진을 찍고 있다. ⓒ미디어제주

영화보는 내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는 고권일(강정마을회 부회장)씨는 “지금까지 봤던 다큐멘터리와 다르게 너무 재미있었다”며 “우리가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 생각하는 국정원을 끝까지 추적하는 모습을 보니 통쾌함도 느껴졌다”고 소감을 말했다. 또 “아직까지 무혐의 판결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꼭 좋은 결과를 받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상영관 밖에서도 감독과의 대화는 계속 됐다. 최승호 감독이 한 관객의 질문을 받고 있다. ⓒ미디어제주

영화는 러닝타임동안 중국과 법원을 오가며 쉴새없이 진실을 쫓는 추격전이 이어진다. 106분이라는 시간이 길지 않게 느껴질만큼 액션과 스릴이 스크린을 채운다. 덧붙이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깜짝 출연한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존재감은 확실한 신스틸러다. 이들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다.

한편, 이번 시사회는 총 400여 명이 참석했으며, 본 영화는 10월 13일에 개봉할 예정이다. 현재 상영이 확정된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메가박스뿐이고, CGV와 롯데시네마는 상영 여부가 확실치 않다.

<조수진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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