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기획특집 | 제주, 옛길을 걷다
기획특집
길 서쪽 최근 100년 흔적 ‘제주목관아’ 복원으로 사라져
[제주, 옛길을 걷다]<9> 북신로(北新路) (2)
상권 번창했던 길 동쪽, 지금도 명맥은 이어가…많은 옛 자취 없어진 곳
데스크승인 2016.08.24  07:13:56 하주홍 기자 | ilpoha@hanmail.net  

제주시 ‘원도심’은 ‘제주성’을 바탕으로 한 제주지역 지리·역사적 근원지이자 중심이다. 이곳은 제주 과거와 현실이 함께 포개진 역사문화공간이다. 삶의 궤적을 담고 있는 도시공간이며 생활공간이다. 원도심의 동맥은 ‘옛길’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 <미디어제주>는 제주시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옛길’을 취재, 역사·지리·건물·상권·문화·인물 등 삶과 기억의 궤적을 살펴보려한다. 이를 통해 제주 원도심 위상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재생과 미래설계를 찾아보려 한다. <편집자주>

   
1990년 10월 북신로 서쪽
   
북신로 서쪽(2016년 8월)

# 제주목관아 북쪽 길엔 관공서, 금융·언론·교육기관과 상가

중앙로가 탑동까지 이어지면서 허리가 잘린 북신로 서쪽은 과거 관공서·금융기관·언론기관과 문방구·식당· 학원 등 업종이 다양했지만 특화된 상권은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인근 칠성로 상권과 중앙로터리에서 탑동 사이에 뚫린 공간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1990년대까지 표구사·간판집·목재사 등이 꽤 오랫동안 터를 잡았고, 그 뒤 식당·술집 등 먹거리에 이어 아웃도어 전문점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복원된 제주목 관아가 들어서면서 관아북쪽 부분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동안 흘러왔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래서 제주목 관아 복원에 관해 ‘한 게 옳았다’는 긍정적인 시각과 ‘굳이 했어야 했냐’란 부정적인 시각이 교차해 아직까지도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는 곳이다.

현재 제주목 관아가 들어선 제북초교 길 남쪽엔 1990년대 관덕떡방아, 바른손 팬시제주대리점, 이조고가구, 오대양항공화물, 제주환경개발㈜, 빅토리 공사, 문방구, 중앙음악학원 등이 있었다.

관덕떡방아 자리엔 호남주조장(湖南酒造場)이란 술도가가 있어서 탁주를 생산했다.

오대양항공화물 자리는 조선시대 망경루(望京樓·현재 복원)가 있다가 일제 때부터 제주세무서(濟州稅務署, 고산동산을 거쳐 지방정부종합청사로 옮김)와 조달청(調達廳, 연동을 거쳐 지방정부종합청사로 옮김) 등이 자리한 곳이다.

문방구와 중앙음악학원 등이 있던 곳은 현재 문화유적지 관리사무소와 제주목관아관리사무소들어섰다.

이곳은 과거 이발관과 이른바 ‘싸구리 점방’이라고 불리던 만물가게가 오랫동안 영업했다. 당시 제북초교를 다녔던 학생이라면 잊지 못할 추억이 서려 있다.

현재 제주북초교 동쪽 길 건너 옛 한국담배인삼공사제주지사가 있던 빈터는 당초 학교 큰 건물인 동강당(東講堂)자리였다.

1973년 학교 북쪽에 있던 제주전매지청(濟州專賣支廳)과 터를 서로 바꿨고, 울타리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새 길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로 동쪽 제일페인트와 J-탑 골프아카데미가 있는 건물은 일제 때 제주금융조합(濟州金融組合)이 있었다가 북제주군농협을 거쳐 제주시농협이 오랫동안 들어섰던 곳이다.

제주시농협이 청사를 2002년 지금 자리한 삼성로 신산지점자리로 옮겨가기 전까지 제북초교와 함께 북신로를 대표하는 건물이기도 했다.

이 건물 남쪽 맞은편엔 한성필방이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거멍축산과 실버피아가 있던 곳엔 효성다방과 효성스즈끼 오토바이 제주대리점 등이 있었다.

바로 동쪽 길 건너 건물은 일제 때 제주산업조합(濟州産業組合), 4.3당시 감찰청,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제주신문사(濟州新聞社, 뒤에 연동으로 옮김)와 감정원, 자동차보험회사 등이 영업했다.

이어 1990년대엔 국제외국어학원, 우전초밥, 신동아화재해상보험, 유료주차장 등이 자리했다.

   
옛 제주신문사 남쪽 이삭.불새 보양탕앞(1990년10월),현재 준반점과 아리헌이 있다.

옛 제주신문사 남쪽 길 건너 현재 ‘탑모텔’이 있는 곳엔 ‘탑동탕’으로 출발했다.

현재 목관아 옆 제주노인복지회관 자리는 일제 때 제주도사(島司)관사였다가 해방 뒤 제주도지사 관사(나중에 연동으로 옮김)였다.

동쪽 맞은편에 현재 한양상사.한신종합상사가 있는 일대는 과거 영주여관이 있었고, 현재 세븐에비뉴헤어미용재료상사가 있는 자리는 과거 제주치과의원이 개업했던 곳이다.

   
1990년10월 북신로 동쪽
   
북신로 동쪽(2016년8월)

# 중앙로 기준 동쪽엔 옛 상권 번창→유명 메이커 판매점 이어져

북신로 동쪽부분은 중앙로가 탑동까지 이어지는 중간쯤인 현재 ‘밀레’와 ‘게스’ ‘한스델리’건물에서 산지천과 맞닿는 곳까지이다.

이 구간은 일제 때부터 관공서·주택가가 밀집돼 왔고, 규모가 큰 목재상·주류공장 등이 들어섰던 곳이다.

특히 일제 때 제주로 옮겨온 일본인들이 이곳에 집단적으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1990년대까지도 적산가옥이 제주시내에서 가장 많이 남아 있던 곳이기도 하다.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서쪽에서 일도1동주민센터 부근까지는 칠성로 쇼핑거리 상권과 연계해 고급 메이커 신발·의류 제품 등이 들어서 있다.

바로 길 건너 일도1동 복지회관에서 동쪽 구간은 음식점·주점·식육점·식료품점 등 먹거리와 여인숙·전자오락실 등이 많이 들어서 있다.

이처럼 다양한 업종이 상가를 이룬 건 북신로 자체에 주택가가 밀집돼 있다는 점, 제주항을 드나드는 선박을 상대로 한 업종이 오랫동안 이어왔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탐앤탐스제주칠성로점 건물 일대(1990년대 마리아칼라스제주지점, 모던카페 있던 곳)엔 일제강점기부터 제주시내에서 규모가 큰 목재상들이 있었다.

이곳엔 일본인 角健輔가 건축자재판매와 해운업 등을 경영했던 角健輔상점을 열었다. 뒤이어 제주인 양용대(梁龍大)씨가 이곳을 인수해 대영목재점으로 1980년대까지 운영했다.

또 양 씨의 목재점 바로 북쪽 LS패션제주헤지스점 일대엔 김기조(金己祚)재목점이 일제때 있었다.

현재 ‘매긴’ 건물 부근엔 8.15해방이후 등유를 팔았던 조개표 석유회사가 있었다.

   
페페. 제주낚시점 앞 길, 제일극장 뒷모습도 보인다.(1990년10월),지금 LG유플러스 건물 부근이다.

그 동쪽 현재 일도1동주민센터가 있는 자리는 옛 경찰국장 관사로 오랫동안 썼다.

일도1동주민센터 옆엔 일제때 ‘지요시가푸에(카페)’로 불렸던 ‘천방루’(千芳樓)가 있었다.

주민센터 길 동쪽엔 최근 “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는 중요한 옛 건물을 철거하지 말라”는 거센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철거해버린 옛 국립수산물검사소제주지소가 있던 자리다.

이곳은 옛 건물을 완전히 부순 뒤 새롭게 만들어 현재 일도1동복지회관이 들어서 있다.

이 자리엔 일제 때 다리·항만 등을 건설하고 관리했던 토목관구(土木管區)란 관청이 있었고, 미군정(美軍政) 당시엔 미CIC가 들어서기도 했던 역사적인 자취를 담고 있었다.

편의를 위해 옛 건물을 보전하기보다는 철거해 새로 만들겠다는 전혀 역사의식이 없는 행정과 일부 지역주민들이 빗어낸 참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현재 일도1동복지회관 북쪽 옛 제주뉴골프연습장 입구 길가(도니꼬 부근)엔 제주도산소주(濟州島産燒酒)판매주식회사가 들어서 소주를 팔았다.

복지회관 김 맞은편 남쪽엔 현재 밥도둑 부근(옛 한성철강 자리)엔 일제때 남선합동(南鮮合同)전기㈜목포지점제주출장소(한전제주지사의 전신)가 자리해 전력업무를 봤다.

길 서쪽 주택가를 지나 조일정(朝日亭)이란 요정이 있었고, 현재 탐앤탐스제주칠성로점 길 건너 남쪽 로즈버드제주탑동점(옛 페페·돌고래 자리)엔 막걸리공장이 있었다.

현재 랜드로바가 있는 명전빌딩은 과거 가전제품 등을 팔던 유명한 명전사(明電社, 뒤에 금성제주코너)가 자리했다.

명전빌딩 길 건너 남쪽 현 민들레영토 건물 일대엔 일제 때 삼림을 경영·관리하던 영림서(營林署)가 있었다. 이곳은 8.15광복 뒤 한라기업사, 안성기업㈜등이 들어섰다.

북신로 북쪽 현재 영화문화예술센터는 과거 제주시내 4대 영화관 가운데 하나인 코리아극장(옛 대한극장)이었던 곳이다.

영화문화예술센터 남쪽 현재 코오롱스포츠 부근(옛 서울수족관자리)엔 제주지역 종합건설회사 ‘빅5’ 가운데 하나인 ㈜우주종합건설(옛 서해토건)의 모체가 됐던 대영토건이 있었던 곳이다.

긍·부정적인 제주지역 역사적 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다가 이젠 그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아쉬움이 많은 길이기도 하다.

<하주홍 기자/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하주홍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 기사가 강해야 2016-08-24 14:11:10

    100여년간의 역사가 사라졌다니 ㅠㅠ 아이구
    엉터라 복원을 질타하는 게 맞는대 아쉽네요~~   삭제

    • 사라진역사 2016-08-24 13:38:44

      목관아지 복원으로 100여년간의 역사, 문화가사라진 것은 잘못됐다는 게 맞죠.
      복원은 옛 것을 바탕으로 고증을 거치는게 당연한것이므로 잘못된거죠.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가 문제네요 ㅠㅠ.   삭제

      SPONSO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