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억척스러움
억척스러움
  • 홍기확
  • 승인 2016.08.10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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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29>

 억척스럽다는 형용사를 인터넷에서 검색한다. 예문이 감동이다.

 [억척스럽다] :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몹시 모질고 끈덕지게 일을 해 나가는 태도가 있다.

 <예문> 어머니가 강인한 여자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정말 그처럼 억척스러운 기질의 여자라는 건 처음 알았어.

 보통의 어머니들은 억척스러운가 보다. 예문조차도 어머니의 강인함에 더한 억척스러움을 대표사례로 들고 있다.

 최근 이런저런 일들에 집안일을 많이 거들지 못하는 이유로, 아내가 그야말로 억척스럽게 집안일을 해내고 있다. 아이는 아빠가 바쁘다고, 매일 술 먹고 들어온다며 구박이다. 이런 시기, 저런 시기가 있지만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다.
 집에 오면 빨래며 설거지가 되어 있다. 집 정리도 말끔하다. 나는 저녁에 살짝 들어와 샤워를 해 내 몸 관리만 잘하고, 살포시 침대에 누워 자면 그 뿐이다.
 
 얼마 전 15년 전에 아내가 나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보았다. 지금은 이메일, 트위터, 문자와 같이 짧고 가벼운 글들이 대세지만, 15년 전에는 열장 내외의 편지를 주고받았던 터다. 내가 쓴 시와 글들, 아내의 시와 글들이 기억이 아닌 추억으로 남아 있다.
 아내의 시 중 한 편이다. 장인어른을 동생처럼 아껴주는 누님의 얘기를 시로 쓴 것이다.
 아내의 시는 제목이 없다.

 어머니는 붕어빵 장수셨단다
 아들이 교수님을 모시고 온 것이
 못내 부끄러우셨단다

 어머니는 세 시간 동안
 붕어빵 한 개를 못 파셨단다.
 문을 닫으려다가
 꼬마 손님의 붕어빵 이천원 어치에
 다시 용기를 얻으셨단다

 어머니는 이천원 어치로 끝난 장사를
 아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서둘러 포장마차를 치우고
 서둘러 정리를 하셨단다

 장인어른과 소주를 들이키던 아주머니가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한 이야기. 아내는 아주머니의 억척스러움을 존경한다 했다.
 
 중학교 이후로 거지나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이에게도 딱히 오늘 한 것이 없고, 나태했으면 밥을 주지 않겠다하고 굶긴다. 또한 거지가 불쌍해 보여도, 일하지 않고 돈 버는 사람이니 절대 돈을 주지 말라 한다. 노동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으려는 사람은 거창한 의미로 도둑이다.

 풍수해 복구 봉사활동을 갔을 때다. 9월말의 소슬한 바람에도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억척스럽게 일했다. 주위에서는 어차피 오전만 하면 끝나니, 시간 때우다 가라고 성화다. 그래봤자 알아주는 사람 없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내 땀은 내가 안다. 내가 알아준다. 거국적인 게으름과 태업, 대강대충 단체행동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 본인들만 게으르면 된다. 굳이 나에게까지 강요할 필요 없다.
 
 억척스러움.
 한 단어를 정의하는 데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다. 뭐,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일필휘지로 서론과 본론을 쓰지만, 결론을 맺는 데는 며칠이 걸린다. 틈날 때마다 곰곰이 심사숙고한 결론.

 억척스러움은 ‘책임감이라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 어떤 치열한 정신’이다.

 우리 부모 세대는 강요된 억척스러움으로 세상을 살았다. 그렇지 않으면 식구들에게 밥을 먹이지 못했다. 치열한 달리기에서 한번 뒤처지면 회복할 수 없었다. 식구를 버리던가, 자신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과잉 풍요의 시대다. 비록 전 세계는 7초에 어린이 한 명씩 굶주림으로 죽지만, 한국에서 굶주림으로 죽으면 대서특필이 난다. 우리는 부모 세대가 만들어준 풍요와 안락에 젖어 점점 억척스러움을 잃고 있다.

 갑자기 억척스러움이란 단어가 떠올라 두서없이 글을 쓰게 되었다. 가끔 답은 미래가 아닌 과거에서 나온다. 기억을 더듬거나, 추억을 상기시키는 데서 나온다. 이 글은 그간 무더위와 공사다망에 따른, 집안일 소홀에 대한 나의 반성문이다. 열대야로 최근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는 게으름에 따른 자성문이다.

 오늘의 밀린 집안일 숙제. 아이의 저녁밥 챙겨주기. 망가진 TV 리모컨 구입. 아이와 내 머리 이발.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고 억척스럽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외쳐본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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