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본 세대가 놀이의 재미 알려줘야죠”
“놀아본 세대가 놀이의 재미 알려줘야죠”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6.07.26 0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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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변화의 항해를 시작하다, 시즌2] <놀이는 교육이다>
놀이에 주목한 사람들 ①‘와글와글놀이터’-서울 도봉구 방학초등학교

2008년 참교육학부모회 주축돼 ‘와글와글 놀이터’ 시작

학부모가 ‘놀이 이모’돼 아이들과 노는 ‘마을공동돌봄체’

올봄 도봉구 방학초에서도…놀이 즐거움, 놀이방법 전수

 

지난 20일 점심시간이 막 지났을 무렵, 서울 도봉구 방학초등학교는 하교하는 학생들로 분주했다. 그 중 일부 학생들은 교문이 아닌 운동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들을 따라 학교 안으로 들어가자 저 멀리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아이들 한 무더기가 옹기종기 모여 노는 모습이 보였다.

▲ 매주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

서울 낮 기온은 30℃를 넘고 있었다. 그늘 아래 가방을 풀고 부채질로 땀을 식히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노래가 들린다. “장난~감 기차가 칙칙 돌아간다/과자와 사탕을 싣고서/엄마 방에 있는 우리 아기한테 갖다 주러 갑니다~”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갔다. ‘아, 요즘 아이들도 우리 때처럼 고무줄놀이를 좋아하는 구나’ 하며 한참을 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자꾸만 박자를 놓친다. 그런데 고무줄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엄마였다. 엄마들은 손을 발처럼 모양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고무줄 놀이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엄마 방에 있는’ 에서는 돌아야지. 갑니‘다’ 할 때는 줄을 밟는 거야!”

서울 도봉구 방학초등학교 '놀이 이모'들이 2학기 '와글와글 놀이터'를 기약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미디어제주.

이날은 수요일. 방학초등학교 엄마들의 ‘와글와글 놀이터’가 열리는 날이다. 낮 12시가 넘자 하나 둘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아이들은 놀이터가 시작하는 1시까지 각자 모래를 만지거나 고무줄놀이를 했다. 바닥에 앉아 벽돌에 색 분필을 칠하거나 칠해진 분필을 물로 지우는 아이도 보였다. 아이들은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처럼 여러 놀이무리를 자유롭게 오가며 학년이 다른 형, 누나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 엄마들이 준비한 ‘와글와글 놀이터’

“자, 여기로 모이세요!” 드디어 놀이터가 시작됐나 보다.

오늘의 놀이는 ‘하얀 우산에 그림그리기’란다. 우산과 매직펜을 손에 쥔 아이들은 저마다 무엇을 그릴까 생각에 빠졌다.

1학년 태민이는 용을 그리고 싶은데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그냥 자기만의 용을 그리겠다고 했다. 2학년 현규는 방학때 엄마아빠와 가기로 한 바닷가를 미리 그린다. 같은 학년 민준이도 시원한 파란색으로 바다를 그렸다. 꼭 가고 싶다고 했다.

방학초 '와글와글 놀이터'에 참가한 학생들이 하얀 우산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 미디어제주.

이날 아이들은 오후 3시가 넘을 때까지 학교 한쪽 귀퉁이에서 친구들과, 이모들과 안전하고 즐거운 놀이 시간을 보냈다.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2학년 여학생은 “집에 가면 혼자인데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니까 좋다”며 “땀이 나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기자에게 “아줌마도 와글 엄마에요?”라고 먼저 물어온 1학년 남자 어린이는 “우리 엄마가 여기 ‘놀이터 이모’”라며 멀리 손가락을 가리켰다. 이 어린이는 “학원에 안 가도 엄마랑 친구들이랑 같이 놀아서 좋다”며 “꼭 집에 있는 것 같다”고 연신 즐거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 출발은 2008년

원래 ‘와글와글 놀이터’는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동북부지회 학부모들이 스스로 ‘놀이 이모’가 되어 아이들에게 놀이를 가르치고 놀이 공간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활동을 지칭한다. 일종의 마을공동 아이돌봄 시스템인 셈이다.

2008년 서울 노원구 중계동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학부모 김수현씨가 아이들에게 제기차기를 가르쳐주면서 시작됐다. 김씨는 제기차기를 가르치다가 아이들이 지루해하면 젖은 모래를 가지고 놀고, 비 오는 날에는 놀이터에 텐트를 치면서 자연스레 ‘놀이 이모’가 됐다.

이때부터 참교육학부모회 회원들은 이러한 활동의 이름을 ‘와글와글 놀이터’라 붙이고, 학교나 동네별로 엄마들이 삼삼오오 개별적으로 아이들에게 놀이를 전수하는 활동을 장려해나갔다.

현재는 동북부지회 가운데 도봉구와 노원구에서 활동이 가장 왕성하고, 중랑구와 강북구로 점차 번지고 있다.

그리고 ‘놀이 이모’가 아이들 곁으로 다가간 지 8년 만에 이 움직임이 도봉구의 방학초등학교에도 올해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 엄마들이 놀이에 주목하는 이유

방학초에서는 지난 5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놀이터가 열리고 있다. 어린이 놀이와 아동 갈등조정에 대한 교육을 받은 대여섯 명의 학부모들이 ‘놀이 이모’가 됐다.

방학초의 대표 놀이 이모 신영희씨는 “특별한 알림 없이도 소문을 듣고 오는 학생들이 매번 20~30명이 된다”며 “우리는 단순히 놀이방법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가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씨는 “아이들의 긴 삶을 생각할 때 요즘은 공부보다 놀아주는 게 더 ‘투자’인 것 같다”는 말도 건넸다. 학원에 다니지 않거나 부모가 맞벌이라 집에 가도 혼자인 아이들은 비록 1주일에 한 번 이라도 이곳에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낸단다. 이날 놀이터에는 신씨의 1, 4학년 자녀도 함께 하고 있었다.

방학초는 다른 학교에서 운영되는 ‘와글와글 놀이터’들과 달리, 미리 참가자를 받지 않는다. 놀이는 자유롭게 이뤄져야 더 즐겁다고 믿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놀이 이모들에게 간단한 재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방학초 김동하 교장은 “와글와글 놀이터 활동이 유익할 것 같아 지난해 학부모들에게 제안을 했는데 잘 안 돼 아쉬웠다”며 “다행히 올해는 학부모님들의 동참이 있어 우리 학교에서도 시작하게 됐다. 아이들의 놀이에 주목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이날 놀이터는 방학을 앞두고 열린 상반기 마지막 자리였다.

▲ “놀이의 재미 꼭 알려주고 싶어요”

기자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한 놀이 이모는 앞서 놀이터 시작 전, 아이들의 고무줄놀이가 유난히 서툴렀던 이유를 알려주었다.

방학초 학생들은 지난 6월부터 난생 처음 고무줄놀이를 배우고 있다. ©미디어제주.

“와서 보니 아이들이 한 번도 고무줄놀이를 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3주전부터 고무줄을 가져와 배우고 있어요. 쟤네들에겐 처음인 거죠. 우리 땐 책가방에 고무줄이 필수였는데(웃음).”

이 학부모는 비석치기할 돌을 찾지 못해 문구사에서 비석치기용 나무 조각을 사야 했던 ‘웃픈’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우리 때는 놀잇감을 찾는 것도 좋은 놀이였는데 그건 이 도시에서는 불가능하네요.”

그래서 엄마들이 나선 것이란다. 무더운 여름, 이들이 화장기 없는 맨 얼굴로 굳이 땡 볕에 집밖을 나선 이유. 이들이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계속 닦아내면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 “놀아본 세대로서 어떤 놀이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하잖아요. 귀엽고 착한 우리 아이들인데요. 부모로서 어른 세대로서 뭔가 뿌듯한 일을 하는 기분이에요”

‘놀이’의 중요성에 주목한 엄마들의 이 같은 보람은 ‘와글와글 놀이터’를 중추적으로 가져가고 있는 참교육학부모회 동북부지회 봉현경 사무국장으로부터도 들을 수 있었다.

봉현경 사무국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행복한 표정을 본다. 이는 놀이가 곧 아이들의 본성이기 때문일 것”이라며 “와글와글 놀이터가 끝난 후 놀이 이모는 물론 학교 운동장에게도 고마움을 표하는 아이들의 마음, 우리는 그 힘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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