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4 14:18 (수)
어린이가 가진 모든 꿈을 앗아가는 전쟁
어린이가 가진 모든 꿈을 앗아가는 전쟁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6.07.12 1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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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동화속 아이들 <21> 원유순의 「모하메드의 운동화」
 

전쟁. 말만 들어도 ‘참혹’이라는 두 글자가 생각나네요. 전쟁이라는 단어는 삶보다는 죽음을 먼저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겠죠. 전쟁이 없다면 좋겠지만 사람의 삶이라는 게 그렇지 않으니 어쩔 수 없네요. 다투다가 남을 때리고 급기야는 생명을 앗아가는 뉴스 속의 일도 어찌 보면 전쟁입니다. 작은 일이지만 세상엔 크고 작은 전쟁이 매일 같이 일어납니다.

 

그러다가 이념, 종족, 민족, 국가간의 다툼이 커지면 대규모 전쟁이 되고, 수많은 사람이 희생됩니다. 최근까지 아프리카, 중동 지역엔 수많은 전쟁으로 인해 정말 ‘참혹’이라는 단어를 달고 다니곤 합니다.

 

우리도 그런 기억들이 있습니다. 70대 이상 어르신들에겐 전쟁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죠. 한국전쟁이 있었고, 그에 앞서 제주도민들의 마음을 지금까지 짓누르고 있는 4·3이라는 비극이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어머니 세대들이 겪은 비극입니다. 외상 후 장애라고 요즘엔 ‘트라우마’라는 말을 많이 쓰죠. 제주4·3을 직접 겪은 어르신들은 어느정도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을까요. 몇 년 전 조사이긴 하지만 4·3을 직접 겪은 피해자의 80% 가까이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보였어요. 그건 어쩌면 당연한 것 같아요. 우리는 모르지만 일흔, 여든을 넘긴 어르신들에겐 4·3 당시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테니까요.

 

제 아버지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13살이었죠. 4·3 때문에 아버지의 아버지인 할아버지는 총살을 당해 이슬로 사라졌고, 큰 아버지는 실종, 샛아버지도 땅에 묻히셨습니다. 집안이 풍비박산이 되었죠. 13살 된 아버지는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시신을 찾으러 다녔고, 어린 아들이 아버지 시신을 찾아냈습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4·3의 음습한 기운이 찾아듭니다. 그런데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어요. 그렇게 어린 나이에 죽음의 위기에서 탈출하고, 가족들의 죽음을 봐야했으니…. 트라우마가 있는 건 당연한 것이지요.

 

원유순의 동화 <모하메드의 운동화>는 중동 지역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생긴 전쟁은,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을 희생시킨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화입니다.

축구화가 아니라며 자신의 운동화를 헌신짝 버리듯하는 대한민국의 석이.

 

<모하메드의 운동화>는 전쟁의 아픔을 그리고 있으나 책은 자신의 것을 아낄 줄 모르는 어린이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을 해요. 이 책엔 두 명의 어린이가 등장합니다. 대한민국의 석이와 중동의 한 지역에 사는 모하메드이죠. 둘은 한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어요. 둘 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석이는 자신이 축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를 운동화에 쏘아붙여요. 석이는 축구를 하다가 운동화를 ‘헌신짝처럼’ 버린답니다. 그렇게 버려진 운동화는 깨끗하게 씻겨 중동지역으로 날아가고, 맨발이던 모하메드의 발이 된 거예요.

 

석이와 모하메드. 버림을 받은 운동화와 새 주인을 만난 운동화. 이렇게 이야기가 끝나면 좋으련만 이야기는 전쟁의 상처를 건드립니다. 모하메드는 신이 나서 축구를 즐깁니다. 그러다 삼촌이 일을 하러 가자고 하네요. 고철 덩어리를 찾으러 다니는 일이죠. 그렇게 해야 돈을 벌고, 밥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거든요. 결국 일이 벌어집니다. 일을 나간 모하메드는 자루가 가득찰만큼 쇳덩이를 모았습니다. 자루에 담긴 쇳덩이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졌고, 쇳덩이를 더 모으려고 이리저리 고철 덩어리 속을 헤집는데 “콰광”하고 날벼락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석이가 버린 운동화를 신고 고철을 줍고 있는 모하메드.

 

병원에 있는 모하메드를 바라보는 건 ‘나’입니다. 여기서 나는 운동화로 표현이 되어 있어요. 왼쪽 운동화(나)의 시선으로 병원이 비춥니다. 병원에서 바라본 모하메드는 “내 다리……”라고 외칩니다. 나는 울먹이며 오른쪽 운동화(여기서는 ‘오른쪽이’로 표현)를 찾아보지만 찾을 수 없어요. 폭탄이 터지면서 모하메드는 오른쪽 다리를 잃었고, 오른쪽이 역시 사고 현장에 버려진 것이죠. 모하메드는 꿈을 잃어버립니다. 석이보다 축구를 잘 하는 모하메드는 축구선수라는 꿈이 있었거든요. 전쟁만 없었더라면 모하메드는 자신의 꿈을 펼칠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한쪽 다리를 잃은 모하메드와 왼쪽 신발. 전쟁의 참상에서 희생될 수밖에 없는 어린이를 담고 있다.

 

4·3 생각만 하면 괜히 슬퍼져요. 초등학생 당시 아버지 생각만 나거든요. 우리 작은 애(찬이)보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4·3을 겪고, 주검이 된 아버지를 찾았거든요. 그러니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어요. 어린 나이에 가족이 죽고, 죽은 아버지의 시신을 찾아다닌다고 하면 우리 애들이 이해나 할 수 있을까요. 다시는 전쟁이라는 이름을 단 괴물이 우리 곁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동화 속 모하메드와 같은 이야기도 사라지고, 4·3을 겪은 제 아버지와 같은 어린이도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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