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19 17:38 (금)
우리 눈에 보이는 놀이터는 ‘나쁜 놀이터’
우리 눈에 보이는 놀이터는 ‘나쁜 놀이터’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6.06.21 08: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교육 변화의 항해를 시작하다, 시즌2] <놀이는 교육이다>
5. 공론화의 흐름 ④좋은 놀이터에 대한 이야기

놀이터는 아이의 다양한 욕구 채워줄 기능성에 무게

동선·놀이방법·놀이강도·소음크기에 따라 배치·조합

입구주변 동선 길게 하기 등 기본적인 안전장치도

 

좋은 놀이터란 놀고 싶고 기분이 좋아지고 머물고 싶은 곳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놀이에 적합한 놀이터란 찾는 사람에게 완전히 개방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으면서, 인식할 수 있고 제어할 수 있고 조정할 수 있는 위험을 허용하는 곳이라야 한다고 정의한다. 더불어 바람, 시선, 소음을 막아주고 지나친 ‘금지’가 없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들은 다소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 우리에게 익숙한 놀이터들

그렇다면 나쁜 놀이터를 먼저 알아보자. 최근 ‘어린이 놀이터 국제 심포지엄’(순천시)에서 만났던 국제 놀이터전문가 귄터 벨치히(75·독일)는 심포지엄 강연과 저서 <놀이터 생각>(소나무 출판사, 2015)에서 나쁜 놀이터를 이렇게 정리했다. 훈련장 같은 놀이터, 조경 장식이 많은 놀이터, 휴식 공간으로만 이용되는 놀이터, 단 하나의 사용집단을 위한 중앙 집중적인 형태의 놀이터. 여기에 비좁은 공간, 너무 적은 선택가능성, 단조로움, 삭막하며 지나치게 안전하고 지나치게 막혀있고 지나치게 규제가 많은 놀이터도 나쁜 놀이터로 분류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놀이터의 전형이다. 심포지엄에서 만난 놀이(터) 전문가들은 이러한 놀이터는 ‘놀이 터’가 아니라 아파트 준공검사를 받기 위한 ‘공문형 놀이터’라고 비판한다. 이러한 놀이터를 ‘지시적 놀이터’라고도 부른다. 놀이 공간에 시소와 그네, 미끄럼틀을 기계적으로 구비하고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앉아서 이렇게 타다가 안전하게 집으로 가라는 지침만 준다는 의미다.

▲ 머물고 싶은 놀이터가 되기 위한 조건

귄터 벨치히는 좋은 놀이터는 놀고 싶고 기분이 좋아지고 머물고 싶은 곳이라고 정의하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기구와 놀이터에 대한 몇 가지 조언을 건넸다.

독일 발트키르헨에 있는 놀이터. 경사면을 활용했다. 이름은 '큰 언덕 미끄럼틀'이다. 설계팀은 공원의 울퉁불퉁하고 고랑이 파인 경사면을 변모시켰다. 언덕마루와 비탈에는 숏크리트를 사용했다. 아이들은 이 곳을 내려갈 때 줄을 잡고 내려갈 지 미끄러져 내려갈 지를 결정해야 한다. <세계적 놀이터 디자인>(한스미디어, 2014)에서 발췌.

그에 따르면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주위 환경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싶어 한다. 모험놀이터에서라면 마분지나 각종 건축 폐자재로 오두막을 지을 수 있겠지만 일반적인 놀이터에서라면 이러한 욕구를 쉽게 채워줄 수 있는 재료는 단연 모래다. 형태를 만드는 창조적 놀이 활동으로 모래성 쌓기가 가장 좋은 대안이다.

모래는 깊이가 중요하다. 파도 파도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에서 아이들은 무한한 창조와 상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보통의 놀이터의 모래 깊이는 고작 30㎝ 정도에 불과하다. 그냥 흙만 덮어둔 곳도 있다. 아이들의 상상력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면 모래의 깊이는 적어도 1m가 넘어야 한다. 단 모래는 오염 관리가 중요하고, 젖은 상태에서는 아스팔트 바닥처럼 딱딱해지기 때문에 충격 완화재로는 적합하지 않다.

모래 구덩이 안에 놀이용 탁자를 설치하면 편리하게 놀 수 있다. 아이들이 모래를 테두리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않기 때문에 주변 관리도 쉽다.

놀이터 바닥재로는 콩 자갈이나 나무껍질이 적합하다. 둥글고 고운, 지름 0.3~0.8㎝의 깨지지 않은 세척 콩 자갈은 투수성이 좋아 자정 효과가 좋고 밟아서 움푹 들어가도 금세 복구된다. 충격완화성이 가장 높은 재료는 탄력성이 좋은 나무껍질조각이다. 나무껍질은 ‘격렬한’ 놀이 기구 둘레에 채워 넣으면 좋다. 하지만 배수 층을 만들어 빨리 썩지 않게 해야 한다.

놀이공간에 있는 나무들은 올라 탈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아이들이 가지에 매달리거나 기어오를 때 부러지지 않고 잘 견딜 수 있도록 유연해야 한다.

놀이터에 심는 식물들은 아이들이 잎을 뜯어내거나 꺾어도 견뎌낼 만큼 생장속도가 빨라야 한다. 아이들이 주로 노는 놀이 공간에는 씨를 뿌리지 말고 들풀(잡초)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게 좋다. 이런 식물들은 사람 손으로 가꾼 잔디보다 튼튼하고 특히 다양한 풀꽃들이 번갈아 피어 미관상 훨씬 아름답다.

굴곡진 지형은 그 자체로서 훌륭한 놀이터가 된다.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 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인라인 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 묘기 자전거(BMX) 등 탈 것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 선택의 문제

어떤 놀이 기구를 설치할 것인가.

귄터 벨치히는 놀이기구는 색과 디자인으로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다양한 놀이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예를 들면 아이들은 집 놀이를 좋아한다. 몸을 숨길 수 있는 집 모양의 구조물이 필요하다. 이런 작은 집들에 기어오르기, 미끄럼, 그네 등 다른 놀이기구를 조합할 수 있다. 아이들은 큰 집보다 작은 집을, 문과 같은 잠금장치가 있는 구조물을 더 선호한다.

독일 발트키르헨에 있는 놀이터. 주민들은 베어낸 전나무의 줄기를 보관했다가 지역 어린이들의 놀이 구조물로 만들었다. 목재 사이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층마다 타원형의 강철 틀에 밧줄을 엮어 기어오를 수 있게 만든 그물이 설치돼 있다. <세계적 놀이터 디자인>(한스미디어, 2014)에서 발췌.

매달릴 곳도 필요하다. 매달려 흔들기는 원초적 욕구이고, 힘으로 움직여 공격성을 해소한다. 밧줄, 그네 등 여러 형태가 있다. 매달리기 놀이 기구의 특별한 형태로 다면체 그물망이 있다. 유아에서 성인까지 다양한 계층이 즐길 수 있고, 적은 공간에서 많은 아이들이 놀 수 있어 인구가 많은 도심지역에서 활용하기 좋다.

미끄럼 기구는 종류가 많다. 개방형, 통형, 굴곡형, 일자형 등 다른 놀이기구와의 동선과 이용자 연령 등을 이용해 선택해야 한다. 구간이 긴 공간에는 경사도를 줄이거나 곡선형 내지 물결형을 선택해 가속도가 지나치게 붙지 않도록 한다. 반대로 가속 효과를 내려면 시작 부분의 경사도를 더 가파르게 하고 끝 부분은 조금 평평하게 만들어야 한다. 철제 미끄럼틀은 직사광선을 받으면 과열되므로 남향을 피하고 그늘막을 설치한다. 미끄럼틀의 평균 경사는 40도다.

도심화되면서 아이들이 물과 진흙놀이를 할 기회가 적어졌다. 물을 만지고 물을 보는 것은 원초적 욕구다. 공급하는 물은 식수로 사용할 정도의 수질이어야 하고, 수동 펌프를 설치하면 물을 무한정 사용할 수 없다는 교훈도 줄 수 있다. 고인 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공급해서는 안 된다. 물 주변에는 포장석이나 돌, 자갈, 플랫폼 등으로 물기나 진흙이 없는 평면 지대를 마련해야 한다. 물을 사용하며 놀이터 주변이 더러워지기 쉽기 때문에 사전에 주민들의 의견을 조사해 설치해야 한다.

▲ 배치와 조합도 중요

놀이 기구는 각각의 기구를 선택하는 문제와 더불어, 배치와 조합의 문제도 중요하다. 놀이터 설계에서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아이들의 동선과 놀이 방법, 놀이의 강도, 소음의 크기도 결정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커다란 그네, 회전놀이 기구처럼 움직임이 큰 단독놀이기구는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해 한 구역 안에 모아 설치한다. 기어오르기 그물, 미끄럼틀, 미끄럼봉, 평행봉, 밧줄, 구름다리 등의 조합 놀이기구는 놀이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결합해야 한다.

탁구대, 오두막, 벤치, 그네, 용수철 뜀틀 등은 놀이터에 하나만 있으면 다툼을 초래한다.

놀이기구에 사용되는 재료라고 특별히 정해진 것은 없다. 쇠, 플라스틱, 콘크리트, 목재 등 재료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어 그때그때 요구와 기능성 사이에서 선택하면 된다.

아이들을 위한 기본적인 안전장치로서 놀이터에서 가장 위험한 입구 주변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놀이터에 들어가거나 나올 때 마음이 들떠서 주위를 살피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입구에 장애물이나 우회로를 설치해 아이들이 곧장 도로로 달려 나가지 않게 막고, 각각의 놀이구역 사이에 있는 경계는 기능상 구실이 적고 사고의 원인이 되므로 인위적으로 구분하기보다 경사면을 따라 자연스럽게 돌을 쌓아 구분하는 게 좋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