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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제주사랑법, 사라져가는 풍경 가두기
그들만의 제주사랑법, 사라져가는 풍경 가두기
  • 조보영 기자
  • 승인 2016.06.16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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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헤쳐지고 채워지는 개발로 사라져가는 풍경에 아쉬움을 전하며”
제9회 제주사진사랑 회원展…17일까지 제주문예회관 제2전시설서
지난 6월 13일부터 문예회관 제2전시설에서 열리고 있는 제주사진사랑 회원전은 2003년 첫 모임이 결성된 이래 올해로 9회째를 맞이했다.
지난 11일 종달리 해변도로 출사 장면. 이날의 출사는 제철을 맞아 활짝 만개한 수국을 감상하고, 종달리 마을을 둘러보는 코스로 진행됐다.

하루가 다르게 새 건물, 새 빌딩이 들어서고
파헤쳐지고 채워지고 계속되는 개발...
그리고 끝도 없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과 차들...
사라져가는 풍경과 스쳐가듯 지나가버리는 시간이
너무도 아쉬운 요즘입니다. 

제주문예회관 제2전시실에서 제9회 회원전을 열고 있는 ‘제주사진사랑’ 회원들의 초대말이다.

2003년 사진을 좋아하는 제주도민들이 ‘제주사진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싸이월드에서 첫 소모임을 결성하고 다음(daum)을 거쳐 현재 네이버 카페까지 역사를 이어오며 현재 약330명의 회원이 활동 중이다.

제주대표 인터넷 사진 동호회답게 한때 1400명에 육박하는 회원을 보유하기도 했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또 ‘사진’하는 ‘사랑’하는 활동멤버를 주축으로 모임의 내실을 다지자는 회칙을 세웠다.

'사진'을 매개로 단순한 정보를 얻으려고, 사람을 만나려고, 그저 궁금해서 이름만 올려놓은 유령회원들을 하나둘 정리하다보니 300여명의 정예 멤버만이 남았다.

그사이 카페도 전문성을 갖추게 됐다. 작년부터 '사진의 기초, 흑백필름, 마을, 야경’ 등 자체 스터디 그룹을 운영할 만큼 사진 입문자들과 전문가들의 활발한 네트워킹이 이루어지고 있다.

첫 싸이월드 모임에서부터 회원으로 활동한 고한준 회원은 “2003년 카페 창립 때부터 모임에 나왔으니 너무 오래된 느낌이다. 이제 좀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농담조로 말하면서 “그사이 카페의 분위기도 달라졌다. 3년 전부터 이주민들의 수가 많아지더니 요즘 부쩍 가입이 늘고 있다. 전체 회원의 30%가 이주민”이라고 전했다.

고한준 회원은 13년에 걸쳐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여느 카페와 다른 분위기가 있다. 단순히 친목만을 위한 모임이 아니다. 직접 집에서 흑백 현상을 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사진에 대한 열의 뿐 아니라 실력을 갖춘 사진 고수들이 많다”고 자랑하듯 털어놨다.

제주사진사랑 제9회 회원展 전시 포스터

한 달에 두 번 진행되는 정모에서 적게는 15명에 많게는 25명의 회원들이 참석한다. 그중 절반이 이주민이다. 쭈볏쭈볏하고 어색할 틈은 없다. 제주의 하늘과 바다, 나무와 바람을 마주하며 익숙함과 낯섦의 경계를 함께 발견하는 작업 자체가 '소통'이다.

경기도 화성에서 거주해오다 1년 전에 제주에 정착했다는 김성훈 회원은 “워낙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지인의 추천으로 카페에 가입했다”면서 “얼마전 한라산을 처음 다녀왔는데 너무 인상적이었다. 더 열심히 사진기술을 배워서 기회가 된다면 다음 전시회에 꼭 제 사진 한 장을 꼭 걸어두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한 운영자 백기훈 씨는 “전반적으로 여느 해보다 회원들의 참여도가 굉장히 높았다”고 평하면서 “우리 모임은 단순한 풍경이나 인물이 주가 아니다. 운영자로서 출사지를 선택할 때에도 제주인의 삶을 우선에 두고, 사라지는 일상의 풍경을 한번이라도 더 담기 위해 고심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모든 사진은 순간의 포착이지만, 동시에 영원성을 갖는 기록적 가치를 지닌다. 회원들 각자가 저마다의 빛으로 그려놓은 그림은 작품이 된 순간 혼자만의 사유를 넘어 지금 당장 함께 고민해봐야 할 화두가 되기도 하고, 언젠가 꺼내놓아야 할 이야기로 남기도 한다.

폭설과 눈보라로 전혀 다른 세상이 된 골목길, 철사끈에 맺힌 빗물에 울고 있는 검은 소, 낮은 지붕 위로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팽나무 가지를 얹고 있는 마을 풍경, 굳게 닫힌 철문을 뚫어버릴 것 같은 선명한 화살표, 하얀 담벼락에 검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자화상까지….

고한준 회원은 “디지털은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니터로 보는 것은 사진이 아니다. 그저 파일일 뿐”이라면서 “실제로 사진은 확대를 하고 액자로 걸어서 감상을 할 때 진짜 작품이 된다. 모든 회원들이 자신의 작품을 남길 수 있는 그런 모임이 됐으면 좋겠다”고 앞으로의 바람을 전했다.

제주를 본다. 사라져가는 제주를 본다. 하릴없이 보고 있을 수 없어 카메라를 든다. 뷰파인더 안에 흔적을 가둔다. 액자에 걸어놓고 두고두고 그 풍경과 마주한다. 그들은 그렇게 제주를 사랑한다.

종달리 마을 골목에서 작품 삼매경에 빠진 제주사진사랑 회원들
종달리 마을 골목에서 작품 삼매경에 빠진 제주사진사랑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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