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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난개발이라는 괴물
제주 난개발이라는 괴물
  • 미디어제주
  • 승인 2016.06.0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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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오대혁(시인, 문화평론가)
오대혁 시인

고향을 떠난 친구들은 귀향을 말한다. 탈향을 꿈꾸던 학창시절이 어제인데 다시금 귀향을 꿈꾼다. 회색빛 콘크리트 숲에 자리를 잡고 꿈꾸던 이상이 별다른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경험한 그들은 다시금 너른 바다와 마주하고 선 고향을 떠올린다. 도시가 가져다 준 것은 음험한 폭력성과 자괴감 그 이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탈향을 시도한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괴물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카지마 아츠시(中島敦)’의 <산월기(山月記)>(『역사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다섯수레, 2007.)에 등장하는 ‘이징(李徵)’처럼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인간이 아닌 괴수로 변해버린 자신을 보는 것이다. 이징은 훌륭한 시인이 되어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생각에서 사람들과 교류도 끊은 채 오직 시 짓기에만 몰두했다. 그러다 그는 괴수 호랑이로 변해버린다. 그 모습을 보며 친구에게 얘기한다. “인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도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라고.

1942년에 쓴 <산월기>의 작가는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제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 실존의 부조리를 얘기하는 판타지를 그려냈던 것이다. 꿈꾸던 세계가 무너지면서 괴물로 변해가는 현실 세계와 인간을 짧은 소설 속에 그려냈다.

탈향을 꿈꾼 자들은 대체로 무너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징의 표현처럼 그것은 자신의 부족한 재능이 드러날까 봐 염려하는 비겁함과 두려움, 그리고 고심을 싫어하는 게으름으로 벌어진 것이라 볼 수도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정글의 사회에서 움찔거려 본다는 것이 어느새 젊음을 탕진하고 만 현실과 마주하게 되고, 슬슬 꽁무니를 뺄 방도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비겁함과 두려움, 그리고 게으름을 요구하는 자본주의의 마취제를 걷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용케 살아남았다고 큰소리치는 자들 또한 없지는 않은데, 그들은 괴물로 변해서는 자신을 키운 어머니 고향을 마구 파헤친다.

지금 제주는 난개발 붐을 이루고 있다. 관광객들을 끌어 모은다고 규제를 완화해 돈 있는 중국인들을 끌어들이더니, 올해는 제주 전역을 골고루 발전시킨다는 미명하에 동부 지역을 공항 부지로 선정하여 개발업자들을 불러들이며 난개발을 부추기고 있는 형국이다. 도외 거주자의 농지 투기와 개발, 중국자본의 제주 농지 잠식은 몇 년 사이에 급격히 늘어났다. 다른 지역에 주소를 둔, 외지인이 보유한 농지의 3분의 1은 농사를 짓지 않는 땅이라 하며, 적발된 인원이 3300여 명이라 하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난개발 규제를 한다고 원희룡 도지사가 나섰지만, 한라산 중산간 곳곳은 콘도와 골프장으로 뒤덮이고 있는 실정이다. 개발 제한 조례를 지난해 개정했다고 하지만, 그런 규제에도 불구하고 1000실 규모의 콘도와 호텔 개발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국토법에 따른 개발진흥지구 내에 있기 때문이라 하는데, “공공복리를 증진시키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개발업자들의 이득을 챙겨 주고, 제주의 미래를 난개발에 몸부림치게 만드는 국토법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원희룡 도정은 과연 난개발을 막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성산읍 일대에 공항을 짓겠다며 천정부지로 땅값을 올려놓고, 지역 주민들의 반대 의견은 아랑곳없이 개발 사업에 전력투구하는 것을 보더라도 난개발 억제에 대한 의지는 미약해 보인다.

고향을 떠나 입지전적인 정치인의 길을 걸었던 원희룡 지사다. 그랬던 그가 다시금 고향을 볼모로 치적을 쌓느라고 고향을 난개발로 파헤쳐놓고, 중앙 정계로 다시금 발돋움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괴수가 되어 자신의 뿌리를 난도질하는 커다란 잘못을 행하는 것이다. 모쪼록 난개발을 잡고 진정한 평화의 세계를 제주에 건설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경주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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