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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근·현대사 담긴 역사적 자취 곳곳에 남은 길
제주 근·현대사 담긴 역사적 자취 곳곳에 남은 길
  • 하주홍 기자
  • 승인 2016.06.02 09: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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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옛길을 걷다]<7> 남문로(南門路) (2)
1990년대까지 제주 문화 중심 한 축…일제강점기에 상권 형성

제주시 ‘원도심’은 ‘제주성’을 바탕으로 한 제주지역 지리·역사적 근원지이자 중심이다. 이곳은 제주 과거와 현실이 함께 포개진 역사문화공간이다. 삶의 궤적을 담고 있는 도시공간이며 생활공간이다. 원도심의 동맥은 ‘옛길’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 <미디어제주>는 제주시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옛길’을 취재, 역사·지리·건물·상권·문화·인물 등 삶과 기억의 궤적을 살펴보려한다. 이를 통해 제주 원도심 위상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재생과 미래설계를 찾아보려 한다. <편집자주>

1990년 11월 남문로 상가
 

# 제주도립병원·중앙성당 등 역사적인 건물 자리해

남문로엔 예로부터 주택가여서 규모가 큰 상권은 형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랫동안 자리를 잡고 있거나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지금은 제주대학교 창업보육센터가 들어서 있지만 이곳은 병원 자리로 유서가 깊은 곳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판관이 근무하던 이아(貳衙)가 있던 터이다. 이아 동헌(東軒)인 찰미헌(察眉軒)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제주목사가 근무하는 관덕정 옆 목 관아와 더불어 제주지역 행정 중심의 한 축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인 1912년 자혜병원(慈惠病院)이란 이름으로 출발해 해방 뒤 1946년 제주도립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뒤 지방공사제주의료원(1983년)을 거쳐 2001년 제주대학교가 인수해 제주대학교병원으로 문을 열었다.

대학병원이 2009년 아라동으로 옮겨가 개원하면서 주변상권이 시들해지고 공동화현상을 우려해 자치단체에선 현재 이곳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도립병원 건물은 여러차례 증·개축을 함으로써 원형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한짓골 북쪽에서 제주시민들이 과거 가장 발길이 잦았던 곳은 천주교제주교구중앙성당과 옛 남양문화방송국주변으로 꼽을 수 있다.

천주교제주교구중앙성당은 제주시민들에겐 속칭 중앙성당으로 익숙하다.

1899년 6월 프랑스인 빼이네신부와 김원형 신부가 1550냥을 줘 가옥을 매입해 본부로 삼아 제주지역에서 본격적인 포교가 시작됐다.

1930년 최덕홍 신부가 현 제주중앙본당 자리에 고딕식 붉은 벽돌 성당을 마련, 그 뒤로 건물이 여러 차례 증·개축했다.

이곳엔 일제강점기엔 일본인자녀들이 주로 다녔던 남심상(南尋常)고등소학교가 있었고,옛 신성여자중·고등학교가 자리했다.

신성여중·고교는 1979년 도남동으로 자리를 옮긴 뒤, 다시 2002년 현재 영평동으로 이전했다.

현재 고운속눈썹·마트21가 있는 자리엔 옛 남양문화방송국(현 제주mbc)이 문을 연 곳이다.

남양방송(NBS)은 1968년9월14일 라디오방송을 시작해 1970년8월1일 남양방송TV(당시 채널11·패키지방송)를 개국했다.

1971년 남양방송에서 남양문화방송으로 이름을 바꾼 뒤, 1974년부터 TV직접 중계방송을 시작했고, 1980년 연동신사옥으로 자리를 옮겼다.

뒤에 이곳은 남양체인직영슈퍼마켓자리·소양헌 등이 자리 잡았다.

 # 일제 강점기부터 상권 형성…음식·숙박업, 문구·의류점 등 번성

 도립병원과 천주교성당, 학교 등 유서 깊은 자리와 아울러 이곳에 상권이 일제 강점기 때부터 칠성로·관덕로와 함께 형성돼 나름대로 번성했다.

1990년대까지 이곳엔 음식·숙박업, 의류판매업, 문구류 등 업종이 주종을 이뤄왔다.

현재 세븐일레븐제주관덕로점이 있는 곳엔 중앙사진관과 중앙예식장이 오랫동안 운영됐던 자리이다.

이 건물 동쪽 맞은편엔 중앙약국·동성약국 등이 오랫동안 영업을 했다.

그 옆에 있는 옛 가옥은 고(故) 양홍기 변호사가 살았던 곳으로 지은 지 100년이 훨씬 넘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금은 매우 오래되고 낡았지만 제주시내에 옛 건물들이 보존보다는 파괴쪽으로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보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마트 21 건물 맞은편에 있는 현재 이산저산식당·쓰리프레임이 들어선 건물은 과거엔 매우 유명한 곳이었다.

건물 2층엔 소라다방과 3층엔 사인자(社人自)서점이 자리해 대학생 등 젊은이와 지식인 등 발길이 잦았던 곳으로 유명했다.

당시 거의 보기 힘들었던 클래식음악 전문다방이었던 소라다방은 DJ(디스크자키)가 클래식 곡을 들려줬고, 문화계인사 등이 많이 드나들었던 곳이기도 했다.

목요일마다 클래식 감상시간을 따로 마련해 많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특히 고(故) 부종휴 선생 등 전문음악가들이 등사판에서 새긴 악보와 곡 해설을 담은 소중한 자료를 만들어 나눠줬고, 그걸 보며 음악을 감상하기도 했다.

사인자 서점은 1980년대 당시 사회과학 서적을 전문적으로 팔았던 곳으로, 다른 서점과는 차별화해 대학생 등이 자주 찾았던 곳이었다.

남문로 주변엔 제주남초등학교와 신성여자중·고교가 함께 자리함으로써 서점과 문구류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중앙성당 동쪽 맞은편엔 문구류를 취급했던 ‘무스탄사’(현 신성과학상사 자리)가 오랫동안 영업을 했다.

지금 인천문화당이 있는 곳엔 한때 선영문구사가 운영됐지만 원래 인천문화당이 처음 문을 열었던 장소이다.

인천문화당은 제주의료원 앞·중앙성당 옆에서 자리를 잡아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새롬화방(현 클리어자리)등도 있었다.

무스탄사 옆엔 ‘김상휘 조산원’이 있어서 산모들에게 도움을 줬고, 그 북쪽 골목엔 김헌구이비인후과가 자리하는 등 병의원도 들어섰다.

두목골 쪽 옛 삼도동사무소가 있던 자리에 문승일내과의원이, 제주공항게스트하우스가 있는 곳엔 고택수의원이 있었다.

중앙성당 맞은편에 충무라사(전문맞춤양복점)를 비롯해, 알한짓골 일대엔 의류가게 많이 자리를 잡기도 했다.

옷 가게는 1960년대말부터 들어서기 시작, 1990년엔 보세옷가게가 많아 현재 제민신협제주본점 자리 일대는 이른바 ‘보세골목’을 이루기도 했다.

외국에 수출하려던 옷을 보세창고에서 가져다 팔았던 보세옷은 값이 헐하고 디자인 등이 다양해 손님들을 많이 끌어 모았다.

바로 옆 장생한의원은 이곳에서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자리잡고 있어, 남문로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하겠다.

과거 장생한의원 옆 2층에 있었던 중화반점(옛 야인카페자리)은 중.고교학생들이 많이 이용했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청하과일촌이 있는 곳은 1960년대 구공탄을 찍어 파는 경남연탄사가 영업을 하면서 한 때 제주시내 연료공급에 중요한 몫을 했다.

그 뒤 이 자리는 회성당약국 등 약국이 오랫동안 영업을 했다.

현재 제주수연수산(옛 지산상회) 동쪽 맞은편은 지금은 건물이 철거돼 주차장으로 쓰고 있지만, 이곳엔 영선가구백화점과 그 이전에 제일여관이 있었던 자리이다.

당시만해도 제일여관은 시내에서 꽤 규모가 큰 고급숙박시설이었다.

제주수연수산에서 남쪽엔 ‘박씨 가옥’으로 유명한 초가가 있다.

지은 지 200년이 될 것이라고 전해지는 이곳은 아담한 정원과 함께 찾는 이들 발길이 잦다.

바로 옆엔 1960년대까지 동흥인쇄사가 있기도 했다.

현재 중앙성당 남쪽 맞은편에 있는 ‘원조 미풍식당’은 제주시내에서 유명 해장국집 가운데 하나이다. 처음 미풍식당으로 출발해 지금은 분점을 둘 정도로 맛 자랑을 하고 있다.

미풍식당 옆 옛 개미식당 자리는 옛 제주도립병원 간호사들이 기숙사로 쓰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메가박스가 있는 곳은 아카데미극장이 있었던 자리이다.

그 이전에 규모가 큰 스탠드바가 있어 애주가들이 많이 찾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남문댄스스포츠학원이 있는 자리는 철물제작을 전문으로 했던 금원공작소가 있었던 자리로 유명했다. 당시만해도 해륙기계공업사와 함께 제주시내 대표적인 철물공작업체였다.

그 뒤 그 자리엔 아세아탁구회관, 월드컴퓨터학원 등이 들어서기도 했다.

현재 삼도쉐르빌아파트가 있는 터 과거 교회가 있었던 곳이다.

옛 중부교회를 거쳐 사랑의 교회가 있었고, 경원탁구회관이 운영되기도 했다.

남문로 남쪽 끝에 있는 시온사는 중앙로가 생긴 이래 꾸준히 영업을 해오고 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근처 만수당약방도 유명했다.

남문로는 값이 비교적 헐한 음식점이 많아 한 때 젊은이와 애주가들이 많이 찾았다.

특히 옛 남양방송 부근엔 음식점과 규모가 작은 가게에선 라면·오뎅과 주류를 팔았고, 값이 다른 곳보다 헐한 편이어서 젊은 층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과거 다른 시·도와 달리 통행금지가 없었던 시절, 술집에 영업제한시간이 없었던 때 이곳은 ‘불야성’을 이뤘던 먹거리와 낭만이 어린 곳이었다.

제주시내 애주가들이 술을 마시다 끝자락에 만남의 장소가 됐고, 새벽 4~5시께 이곳을 들러 속을 풀기 위해 들러 지나가기도 했다.

연동 신시가지가 생긴 1979년 이전까지, 제주시청 앞에 대학촌이 생기기 이전까지가 젊은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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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제주 2016-06-03 10:14:04
격려 감사합니다^^
저희 신문에서는 클릭하면 사진이 크게 보이는 기능이 지원되진 않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독자 2016-06-02 17:56:53
좋은 기사 잘 보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료입니다.
클릭하면 사진 크게 볼 수 있도록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