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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이란 숙제, 두 번째 이야기
평범이란 숙제, 두 번째 이야기
  • 홍기확
  • 승인 2016.05.17 1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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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20>

 평범이란 숙제는 어렵다.

 사전을 펼쳐보면 한 단어도 사전을 편찬한 이들마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사전에 ‘평범(平凡)’이란 명사는 없다. ‘평범하다’라는 형용사의 어근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전을 참고할 수도 없는 숙제. 더욱 어려워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평범함을 정의하자면 이렇다.
 내가 다른 이에게 내 삶을 얘기하고 남들의 반응이 다음과 같을 때 평범한 인생이다.

‘어? 이거 어디선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어봤던 얘기인데?’

 또한 내 일상을 얘기할 때 다른 이의 반응이 다음과 같을 때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낸다고 본다.

 ‘뭐, 특별한 거 없네. 남들 다 하는 거네.’

 어느 누가 내 첫 번째 책 제목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을 보고 이렇게 말했단다.

 ‘책제목이 잘못된 것 같은데? 특별한 아빠의 평범한 감동 아닌가?’

 자기계발서에 보면 뭐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없다. 다들 뛰어나고, 다들 노력하며, 다들 한 방이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요즘 뭐 하고 살아?’라고 물으면, ‘뭐 특별한 거 없지. 직장 갔다 집에 갔다 뭐 반복적이지 뭐.’라며 정말 평범한 삶을 사는 건지, 대화를 나누기가 귀찮은 건지 한 두 문장으로 일상을 정리한다.
 
 친구와 전화 통화는 이런 점이 더욱 분명해진다.
 친구가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친구는 대뜸 묻는다.

 ‘요즘 뭐하고 사냐?’

 나는 속사포로 대답한다.

 ‘15만 가지 일을 하고 있어.’

 친구는 상냥하게 대꾸한다.

 ‘미친X. 지X하네.’

 나는 위축되어 말한다.

 ‘사실은 만 오천 가지 일을 하고 있어.’

 친구는 내 말투를 알면서도 다시금 묻는다.

 ‘세어 봤냐?’

 나는 진지하게 대답한다.

 ‘이제부터 세어볼게. 시간이 조금 걸리니까, 내가 70세 되는 생일쯤에 리스트를 보여줄게. 그 전에 지구가 멸망하면 못 보여줄 수도 있는데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친구는 본론으로 들어간다.

 ‘잘 살고 있냐?’

 결국 앞의 몇몇 질문은 서막에 불과하며, ‘잘 살고 있냐?’라는 질문이 본론을 위한 복선에 해당한다. 게다가 ‘잘 살고 있냐?’는 문장은 사실은 반어법이 들어가 있다. ‘나는 잘 살고 있지 못한데 너는 잘 살고 있구나. 나는 힘들어 죽을 것 같다. 위로 좀 해 줘라.’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친구 역시 평범하게 살고 있지 못한가 보다. 평온한 하루와 보통의 나날과 보편적인 인생을 살려고 하는 데 뜻대로 되지 않는가보다. 전화내용을 들어보면 이 친구는 아무리 노력해도 평범하게 살기는 그른 것 같다.
 
 이쯤에서 나는 느낀다. 평범의 정의에 어떤 것을 추가해야 될 지를.

 돌아보면 내 주위에는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천지다. 딱히 특징도 없고, 무색무취의 말투에, 그저 그런 하루하루에. 하지만 개개인별로 알게 되고 친해지면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음을 느낀다. 결국 평범과 비범, 보통과 특별함의 차이는 정보의 차이이자 다른 이의 삶을 바라보는 눈의 차이임을 알게 된다.

 멀리서 보면 사람들은 다들 평범하다. 조금 가까이 가면 몇몇 사람의 삶은 평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매우 가까워지면 모든 사람의 삶은 평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람을 산에서 바라보면 개미처럼 작아 다들 똑같아 보이지만, 100미터 앞에서 보면 대충 남녀를 구별하고, 10미터 앞에서 보면 잘생기고 예쁜 남녀를 가치관에 따라 판별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이것이다.
 평범함이란 결국 ‘관계’다.
 평범함이란 하나의 ‘단계’다.
 평범함이란 ‘관심’의 유무다.

 평범함이란 인간‘관계’에서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관계가 설익었을 때만 표현할 수 있는 형용사다. 알면 알수록 서로는 평범해지지 않는다. 이러한 ‘단계’를 넘으면 사람은 누구나 비범하고 특별해진다. 여기에 더해 관계와 단계를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관심’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 이것이 평범이란 숙제의 해결책이다. 결국 평범은 비범으로 가기 위한 필연적인 출발점이 아닐까? 그렇다면 평범하게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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