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성로와 더불어 제주성에서 가장 오래된 ‘척추 도로'
칠성로와 더불어 제주성에서 가장 오래된 ‘척추 도로'
  • 하주홍 기자
  • 승인 2016.05.07 23: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 옛길을 걷다]<6> 남문로(南門路) (1)
남문 있던 ‘남문 한짓골’…원도심 남북쪽 잇는 대표적 큰 길

제주시 ‘원도심’은 ‘제주성’을 바탕으로 한 제주지역 지리·역사적 근원지이자 중심이다. 이곳은 제주 과거와 현실이 함께 포개진 역사문화공간이다. 삶의 궤적을 담고 있는 도시공간이며 생활공간이다. 원도심의 동맥은 ‘옛길’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 <미디어제주>는 제주시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옛길’을 취재, 역사·지리·건물·상권·문화·인물 등 삶과 기억의 궤적을 살펴보려한다. 이를 통해 제주 원도심 위상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재생과 미래설계를 찾아보려 한다. <편집자주> 

남문로(파란색 길)

# 제주성 대표적인 옛길…길이 크다 해서 ‘한짓골’로 불려 

제주시내에서 오래된 큰 길 가운데 대표적인 길이 남문로(南門路)이다.

남문로는 관덕정 앞 옛 교통대에서 남쪽으로 450m가량 뻗어 남문로터리까지 이르고 있다.

지난 1969년 관덕로의 중앙로터리와 남문로터리 사이로 뚫린 중앙로(中央路)가 생기기 이전까지는 제주시내 남과 북을 잇는 길 가운데 가장 크고 대표적인 길이었다.

중앙로가 생기면서 제주시내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제주시 토박이 가운데도 중앙로와 남문로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거나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다.

중앙로터리~남문로터리사이에 처음 중앙로란 길이 생기기 이전까지는 남문로터리~광양로터리까지도 남문로로 불렸기 때문이다.

현재 중앙로는 탑동(塔洞)에서 남쪽으로 중앙로터리~남문로터리를 거쳐 광양(光陽)로터리~아라동까지 남북으로 약7㎞ 넘게 이르고 있다.

원래 남문로는 ‘남문통’(南門通). 한짓골이라고 불렸다.

일제 강점기부터 제주시내 중심을 이뤘던 칠성통(七星通)과 원정통(元町通· 현 관덕로)와 함께 제주시내 주요 간선도로였다.

길 너비는 그다지 넓지 않았지만 제주성 북쪽에서 한라산 방향 남쪽으로 잇는 길 가운데 가장 큰 길이었다.

하지만 길 너비가 8m에 지나지 않아 1980년대 들어 자동차 통행이 많아지면서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다니는 일방통행도로가 됐다.

그 이전까지해도 중앙로·서사로 등과 더불어 시내 남북을 잇는 길 가운데 몇몇 되지 않는 큰 길이었다.

중앙로가 생기기 전까지 비포장 길이었지만 버스를 비롯한 각종 차량 통행이 가장 잦았던 길이었다.

특히 제주시내에서 펼쳐지는 각종 체육·문화행사 행렬이 관덕정 앞 광장으로 가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 지나가야하는 길이기도 했다.

이곳 남문로 있는 마을을 예부터 ‘한짓골’(大路洞·한질골), ‘남문한질골’,‘남문골’ 등 으로 불려왔다.

과거 이곳엔 제주읍성(濟州邑城) 남문(南門)이 자리하고 있었다.

 

때문에 옛 관가 중심지였던 관덕정(觀德亭)일대에서 남문으로 이르는 큰 길가여서 붙여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읍성 남문과 성곽 터 흔적이 영흥반점 앞 맞은 편인 남쪽에 남아있다 없어졌다.

옛 성곽은 현재 삼도쉐르빌 아파트 북쪽을 거쳐 영흥반점 앞길을 지나서 중앙로를 통과, 항골(옛 제주서림 옆 작은 골목)과 오현단(五賢壇) 뒤쪽까지 이어졌다.

# 두목골·이앗골·새병골·동불막골 등 여러 길과 맞닿아 

 

남문한짓골은 과거 남북으로 난 중심도로였기 때문에 길 주변엔 여러 옛길(골목)으로 연결돼 있다.

한짓골은 ‘한길골’이 구개음화 현상으로 ‘길’이 ‘질’로, 다시 ‘질’에서 ‘ㄹ’이 탈락해서 됐다.

한짓골은 ‘웃한짓골’과 ‘알한짓골’로 나눠 불렀다.

웃한짓골은 남문한질의 남쪽 부분 길이다. 남문에서 바닷쪽인 북쪽으로 내려와 서쪽엔 중앙성당, 동쪽엔 ‘초콜릿’과 ‘수지’가게가 있는 새병골(세병골)과 마주 치는 곳까지를 말한다.

새병골은 ‘새로 병영(兵營)으로 뚫린 동네길’ 또는 ‘세병헌(洗兵軒)터가 있었던 마을’이란 유래로 붙여진 길이라 전해진다. 지금은 남문로에서 동쪽으로 중앙로까지 난 사이길이다.

과거 동쪽에선 이 길을 통해 병영으로도 가고, 이아(貳衙)나 목관아(牧官衙)로 갔다고 했다.

알한짓골은 남문한질 가운데 새병골 교차점에서 북쪽으로 관덕로 교차점(옛 교통대자리)까지 길이다.

두목골(도목골)은 웃생짓골과 병영으로 들어가는 길과 동문과 남문으로 가는 길이 만나는 마주치는 길이다. 동에서 서로 뻗었다가 남쪽으로 올라가서 다시 서쪽 남문에 이르는 동네길이다.

오현단 서쪽에 있는 내팟골 서쪽 마을이다. 중앙로 중간지점 동서로 종합시장(옛 오현고)입구에서 한짓골에 이르는 길이다.

도는 제주방언으로 문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며, 목은 길 교차점을 뜻한다. 두목은 북두칠성 눈에 해당되는 지점이란 마을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동불막골(동불망골)은 병목골 동쪽으로 알한짓골(현 고운속눈썹)까지 난 길을 말한다. 관아에 불이 나는 걸 막기 위한 시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도 한다.

동불막골 서쪽엔 서불막골(서불망골)이 있다.

이 길은 병목골 서쪽으로 상청골이 맞닿는 지점을 거쳐 서문한질까지 난 길이다. 현재 성내교회가 있는 마을이라고도 한다.

병목골(병문골)은옛 제주대학병원 앞에서 삼도동주민센터를 지난 북쪽으로 로베로호텔이 있는 관덕로까지 이르는 길이다.

옛 병영으로 가는 입구 길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이앗골은 웃한짓골에서 서쪽으로 이아(貳衙. 판관 집무처, 옛 제주대학병원자리)로 통하는 길이다. 병목골과 이아 대문 앞에서 교차한다.

참고로 이앗골에 관해선 여러 설이 있다.

‘옛 제주대학병원 자리에서 옛 현대극장(옛 제주극장) 가는 길’ 또는‘제주의료원 서쪽 성안교회(현 성내교회) 앞길’이라고도 한다.

또 ‘옛날 이아 터를 중심으로 한 마을로 도립병원이 있는 곳’이라는 등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다.

몰항골은 웃한짓골 옛 만수당약방 앞 ‘통물’ 옆에서 동쪽으로 이앗골까지 이어진 길이다.

이아 동쪽 벽을 따라 웃한짓골에 닿은 말방아아 있었던 항아리 모양으로 굽은 동네길을 일컫기도 한다.

삼내나뭇골(삼대나뭇골, 백놋골)은 웃한짓골 끝 서쪽 성굽에 있는 골목길 주변 마을이다. 옛 백록장호텔이 있은 골목을 ‘삼내나뭇골’이라고 한다.

입구에 백록장을 지은 뒤엔 ‘백록골’로 불렸다.

남문샛길은 남문에서 서쪽으로 성을 따라 뻗은 골목길을 말한다.

<하주홍 기자/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