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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가 주는 실제 기능은 문제해결 능력이다”
“놀이가 주는 실제 기능은 문제해결 능력이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6.05.03 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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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변화의 항해를 시작하다, 시즌2] <놀이는 교육이다>
2. 놀이는 어떻게 ‘교육’이 되는가 - 놀이의 가치

삶에 필요한 다양한 가치 제공…놀이는 ‘교육’ 아닌 ‘학습’

실용지능이 중시되는 21세기, 놀이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

반드시 ‘자율성’ 담보돼야 아이들 삶에 필수적 요소로 기능

 

초등학교 시절 나의 주 놀이는 고무줄놀이였다. 해가 길어지는 꼭 이 무렵부터 가을 초입까지, 맞벌이 부모를 둔 동네 친구들은 학원을 두세 군데나 다녀오고도 남는 시간을 고무줄놀이로 함께 때우곤 했다.

▲ 놀이와 추억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고무줄놀이는 누구의 몸이 가장 날쌘가를 겨루는 게임이면서, 반면 문제해결의 과정이었다. 언제나 첫 과제는 누군가의 가방에서 나온 얽히고설킨 고무줄 뭉치를 누가 어떻게 풀 것인가였다. 우리는 ‘발로 비비면 풀린다’ ‘한 매듭 한 매듭 손으로 차례차례 풀어야 한다’는 둥 각자의 해법을 내세웠고, 고무줄뭉치는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바지런히 옮겨 다녔다.

이내 고무줄놀이가 시작되면 규칙을 정해야 했다. 신발 끈에 살짝 걸렸던 고무줄이 곧 풀어졌다면 이것을 아웃으로 볼 것인지 아닌 지는 승리와 패배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화내는 아이들은 반드시 있었고 이를 중재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혹은 함께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는 점차 갈등을 부드럽게 해결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어느 때는 아예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규칙을 더 세세하게 짜거나 고무줄이 처음부터 얽히지 않도록 밀가루를 묻히고 다니는 ‘지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중요한 건, 그때 우리는 되도록 다투지 않고 무사히 놀이를 마치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했고, 바깥에서 땀을 흠뻑 흘리는 동안 근육의 발달과 신진대사의 순환을 촉진시켰다는 점이다. 놀면서 배우고 놀면서 점차 사춘기의 청소년이 되어 갔다.

▲ 놀이의 이점

사실 ‘놀면서 배웠다’는 이 생뚱맞은 회고는, 개인적인 추억담이 아니다. 많은 교육자들이 오래전부터 놀이의 교육적 가치에 주목해왔다.

사회과학자들 가운데 아동심리에 조예가 깊었던 스위스의 심리학자 피아제는 놀이를 인지발달을 위한 활동으로 보았다. 구소련의 교육심리학자 비고츠키는 놀이를 인지구조가 점차 구조화 되어가는 고등정신의 발달로 설명했고, 평생을 놀이연구에 심취했던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호이징가는 문명이 놀이 속에서 발생하고 전개되었다고 생각했다. 놀이를 개인적 활동을 넘어 역사와 문화 속에서 이뤄지는 확장된 활동으로 이해한 셈이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열린 '어린이 놀 권리' 관련 포럼.

철학자와 교육학자들도 아동기의 놀이를 교육활동의 일환으로 바라봤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는 놀이를 아동기에 마음껏 뛰고 즐거워하는 천성을 독려하는 자연적 활동으로 정의했으며, 유치원을 창시한 독일의 교육가 프뢰벨은 놀이를 자기 안에 있는 기쁨과 자유, 화합을 만들어내는 내적 표현활동으로 설명했다. 또, 미국의 교육학자 듀이는 놀이를 미래를 예견하고 그 예견에 따라 현재의 반응을 조절하는 경험의 재구성 과정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이가 새삼 주목받는 것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다양한 가치를 제공한다’는 놀이의 가장 복합적이고 광범위한 기능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공교육이 추구하는 미래형 인재들에 필요한 창의성과 자기주도성, 관계성 등이 ‘놀이’를 통해 습득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놀이가 갖는 활동성과 쾌활함은 행복, 여가, 건강, 예술적 경험을 개인 삶에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지금, 우리 사회의 흐름과도 맥이 닿아있다.

▲ 놀이의 가장 현실적인 기능

지난 4월 2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는 이러한 놀이의 가치에 대한 전문가들의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주최하고 강원도교육청이 주관한 이날 ‘어린이 놀이헌장 제정 1주년 포럼’에는 제주를 포함한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관계자와 놀이 전문가, 교사 및 학부모들이 자리해 경청했다.

참석자들은 지난해 어린이 놀이헌장 발표 이후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진행한 후속 조치를 공유하고, 놀이의 교육적 가치와 교육현장에 접목할 때의 유의할 사항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놀이의 중요성은 황옥경 한국아동권리학회 회장(서울신학대 교육학과 교수)의 주제발표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황 교수는 “21세기는 창의적 사고력이 강조되고 실용지능이 중시되면서 ‘놀면서 배운다’는 말을 더욱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 교수는 무엇보다 놀이가 주는 가장 실질적이고 중요한 기능으로 ‘문제해결능력’을 꼽았다. 어떻게 현상 속에서 일을 해결하는가, 나를 어떻게 표현하는가가 ‘능력’이며 ‘지능’인데, 아이들은 ‘놀이’라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 이 지능을 행복하게 습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유럽에서는 놀이를 ‘education’(교육,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 아닌 ‘learning’(학습, 연습이나 경험의 결과로 생기는 비교적 지속적인 유기체의 행동변화)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황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놀이를 단순하게 아동들이 하는 활동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연구자들은 놀이가 아동발달에 있어 매우 복잡하고 중요한 것이며 이전보다 더 심각하게 놀이의 효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놀이의 개념 명확히 알기

황옥경 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놀이의 개념을 유난히 공들여 설명했다.

황 교수는 “‘놀이란 아동이 자신의 생각과 관심사를 자신만의 이유와 방식대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뒤, 이렇게 놀이가 반드시 아이들의 자유의사에 따라 자치권을 가지고 이뤄질 때 아이들이 선택하고 탐구하고 어울리고 창조하고 돌아다니고 도전할 자유가 그들의 현재의 삶과 앞으로의 발전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더불어 황 교수는 “놀이는 놀이 그 자체로서도 아동의 발달에 이점을 가져다주지만 아동기에 놀이를 많이 하는 것은 성인기의 행복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모든 학교와 지역사회는 아동의 놀이를 지원하고 촉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접근의 문제

이날 포럼 현장에서는 놀이에 접근하는 어른들의 방식과 시각에 대한 우려와 조언도 함께 논의됐다.

어린이의 놀이는 단순한 노는 게 아니라 교육적 효과가 크다는 데 있다.

많은 관계자들은 놀이 활동에서 아이들의 자치권 행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놀이를 제한된 장소에서 이미 정해진 방법에 따라서만 진행하도록 ‘지도’ 해서는 안 되며, 놀이의 교육적 효과를 얻기 위한 실용주의적 시각에서 진행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다.

4년 전 혁신학교를 도입하면서 놀이교육에 주목해 안착시킨 죽백초등학교(경기도 평택) 박미연 교장은 놀이를 교육 현장에 도입할 때 학부모들의 반대에 강단 있게 대응할 수 있는 확신과 설득 작업이 중요하다고도 조언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강원도교육청 송태빈 장학사는 놀이가 학교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 예로 블록수업을 통한 놀 시간 보장, 점심시간 확보, 다양한 놀이 소재 및 경험 제공 등을 꼽았다. 송 장학사는 특히 교육 관계자들의 놀이 전문성 향상을 위해 놀이 연수 주최, 놀이 연구회 및 놀이 동아리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명화 산별아마을학교 대표는 보다 세세한 노력으로서 단위 학교의 미세먼지 대처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오 대표는 “프랑스는 미세먼지 농도가 일정 기준 이상이면 강제로 휴교 조치를 내리는 반면 우리나라는 학교장 재량의 권고사항에 머물러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실외 놀이 활동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조건들에 대해 일관성 있는 전국 공통의 대처 매뉴얼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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