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빌딩 사이로 불려진 560명 희생자의 넋들, 영면하소서”
“고층빌딩 사이로 불려진 560명 희생자의 넋들, 영면하소서”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6.04.0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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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형 해원상생굿, 마을 흔적조차 사라져버린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위무의 자리
노형주민센터 앞 마당에 마련된 4.3 노형해원상생굿 행사장 무대 앞에 560명 희생자들의 이름들이 붙여져 있다. ⓒ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개진이마을 양상윤 마흔일곱살, 양상윤의 아들 곧 일곱 살, 양상윤의 아들 곧 다섯 살…, 월랑마을 김용식 스물다섯, 김용식의 딸 곧 네 살, 김용식의 아들 곧 세 살…”

제주큰굿보존회 오춘옥 심방이 4.3 당시 노형 일대에서 희생된 이들의 이름과 나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춘옥 심방의 이 ‘열명 올림’은 그들이 살던 마을이 대부분 사라지고 없는, 쉴 새 없이 고층빌딩이 올라가면서 소개된 마을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노형 일대에 울려퍼지면서 끝없이 이어졌다.

9일 오전 10시부터 5시간 넘게 진행된 2016 찾아가는 현장위령제 ‘노형 해원상생굿’은 바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이들의 영혼과 유족들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4.3 당시 노형 일대 희생자는 현재 확인된 인원만 560명에 달한다. 마을 단위로는 가장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곳이다.

희생자들 중에는 유독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은 아기들, 이름도 얻지 못한 채 끝내 희생자 명단리 ‘○○의 딸, ○○의 아들’로 기억하게 된 아이들, 잠을 자다 일어나 부모 손을 붙들고 나선 길에서 죽임을 당한 아이들, 부모를 잃고 배고픔과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을 기억하는 것도 살아남은 이들의 몫이다.

노형 해원상생굿은 이들처럼 피어나기도 전에 져버린 어린 49명의 어린 영혼들을 위해 꽃질을 만들고 질치기를 통해 어린 영혼들을 위무하는 굿으로 펼쳐졌다.

4.3 당시 10명 대가족 가운데 8명이 희생된 현상지씨가 노형 해원상생굿에서 현장 증언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이날 현장 증언에 나선 현상지 할아버지(87)도 4.3이 발생하지 전에는 10명이 일가를 이룬 대가족이었지만 4.3 사건을 겪으면서 어머니와 현씨만 살아남고 가족 8명이 희생됐다. 현 할아버지가 살던 개진이마을도 군경의 소개로 가옥이 모두 불에 타 마을이 사라져 버렸다.

개진이 마을 뿐만이 아니다. 함박이굴, 방일이, 드르구릉, 뱃밭, 새동네(괭이술), 물욱이(수옥동), 숙이못(석숙이못) 등 수많은 자연마을이 다 사라졌다.

양윤경 제주4.3유족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점심 음복 시간 후에 인사말을 위해 마이크를 잡은 양윤경 제주4.3유족회장은 “오늘 해원상생굿을 보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면서 “앞으로도 제주 4.3이 큰 산을 넘을 수 있도록 유족들과 제주도민들이 도와 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양 회장은 현장에서 <미디어제주>와 만난 자리에서도 지난 3일 4.3추념식 행사장에서 추도사를 통해 일부 보수단체와 정부의 4.3 흔들기를 강도 높게 비판한 데 대해 “유족회 일부 임원들 외에는 누구에게도 추도사 내용을 미리 얘기하지 않았다”고 작심 발언을 하게 된 뒷 얘기를 전했다.

그는 “6만여명의 유족들을 대표해서 내가 해야 할 얘기를 한 거다. 그런 자리에서라도 우리가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굳은 다짐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날 해원상생굿은 국악연희단 ‘하나아트’의 공연과 이대길씨의 캘리그라피, 무용가 박연술씨의 진혼무로 시작됐다.

이어 제주큰굿보존회 회장 서순실 심방의 시왕맞이 초감제와 현장 증언, 국악단 ‘가향’의 추도곡, 제주작가회의 강덕환 시인의 ‘그릅서, 가게마씀’ 추모시 낭송에 이어 제주큰굿보존회의 질치기아 서천꽃밭 질치기 순으로 진행됐다.

한편 제주민예총은 지난 2002년 다랑쉬굴 발굴 10주년을 맞아 다랑쉬 해원상생굿을 시작으로 14년째 해마다 해원상생굿을 이어오고 있다.

노형해원상생굿이 진행되는 중 심방의 사설을 들으면서 유족들이 눈물짓고 있다. ⓒ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큰굿보존회 회장 서순실 심방의 시왕맞이 초감제 모습. ⓒ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제주작가회의 강덕환 시인이 추모시 ‘그릅서, 가게마씀’을 낭송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8일 노형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노형 해원상생굿에서 오춘옥 심방이 4.3 당시 희생된 어린 영혼들을 위한 질치기를 하고 있다. ⓒ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8일 열린 노형 해원상생굿에서 마지막 질치기를 보면서 유족으로 보이는 한 할머니가 손을 모아 기원하고 있는 모습. ⓒ 미디어제주 홍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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