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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멈춰 있는 시간 4.16…“대한민국을 믿지 마세요”
아직도 멈춰 있는 시간 4.16…“대한민국을 믿지 마세요”
  • 조보영 기자
  • 승인 2016.04.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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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기억, 세월호] <1> 세월호 추모 2주기 ‘하이헬로하와유’ 토크 콘서트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단원고 학생들의 초상화

2014년 4월 16일 단원고 수학여행단 등 승객 476명을 태우고 제주로 향하던 6000t급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했다. 그날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인원은 172명. 배가 자초된 후 침몰하기까지 통한의 102분 동안 구조된 인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현재 9명의 실종자가 바다를 떠돌고 있으며 사건 발생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고 원인조차 규명되지 않은 ‘미제의 사건’으로 남아있다. <미디어제주>는 4.16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살아있는 기억, 세월호'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2014년 4월 16일, ’그날‘ 진도체육관에서는 무슨 일이?

2일 제주벤처마루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있는 제주의 청소년, 청년들과 세월호 희생자 형제자매들이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는 ‘하이 헬로 하와유’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세월호 참사제주대책위와 기억공간 리본(re:born)이 주최했다.

제주도에 온 감회를 묻는 질문에 최윤아(최윤민 언니, 25세) 씨는 “추모 2주기가 다가오고 있고 특히 제주도라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망설였다”면서 “동생의 명찰을 목에 걸고 둘이 함께 여행하는 마음으로 왔다”는 인사말을 전하며 꾹꾹 눌러온 눈물을 쏟아냈다.

단원고 최윤민 양의 언니 최윤아 씨가 동생의 학생증을 목에 걸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제주도에 온 소감을 밝히고 있다.

박예진(박예슬 동생, 16세) 양은 사건 발생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4~5일 쯤 됐나? 팽목항에서 언니랑 비슷한 인상착의의 시신이 나왔다고 연락이 왔다. 그때 부모님과 진도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 다리가 풀린 상태로 뛰어가던 모습이 아직 생생하다”고 입을 뗐다.

이어 “솔직히 무서웠다. 언니가 하얀 발을 보이면서 입을 벌린 채 자고 있었다. 항상 언니랑 함께 잠을 잤다. 일어나라고 안아보고 했는데 미동도 없었다. 왜 언니가 여기서 혼자 자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무작정 깨워봤는데 일어나질 않았다"고 전하자 장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에게 진도체육관의 기억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유가족들은 시신 수습이 지체되자 혹시나 실종자 가족으로 남는 것은 아닐까하는 초조함에 연일 밤잠을 설쳤다. 옆 자리의 가족이 시신을 찾으면 박수를 치고 함께 축하를 해줬다. 가족의 죽음을 기뻐했던 그날의 기억은 유족 모두에게 상처로 남았다.

아직 동생의 사망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김인기(김웅기 형, 30세) 씨는 “3형제 중 제가 맏이다. 사고 당일 큰 형인 저한테만 문자를 보냈다.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도 형이 오지 않을까? 언제쯤 올까?라는 생각으로 기다렸을 동생이 자꾸 떠오른다”며 뜨거운 울음을 삼켰다.

그러면서 “동생의 문자를 받고 ‘당황하지 말고 가만히 시키는 대로 있어라’고 답을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결국엔 저도 그런 어른이었다. 어떤 행동을 해도 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며 행사가 끝날 때까지 어두운 얼굴을 보여 안타까움을 더했다.

권오현(권오천 군의 형, 29세) 씨는 “지난달 2차 청문회가 끝났다. 서로 책임을 미루다 끝이 났다. 모든 사건이 우연이고 모르는 일”이라면서 “진상규명 위원회의 임기가 6월이면 끝이 난다. 인양 시점이 7~8월인데 유가족들은 근처에도 못가게 할 것 같다”면서 2주기 이후의 상황을 더욱 염려했다.

세월호 유족. 왼쪽부터 단원고 2학년 3반 故박예슬 양의 동생 박예진(16세) 양, 8반 故안주현 군의 동생 안주영(15세) 군, 4반 故권오천 군의 형 권오현(29세) 씨.
 

‘4.16’을 기억하는 사람들, 우리에게 남겨진 ‘세월호’의 의미

이날 제주의 청소년과 청년들도 4.16 그날의 기억을 되새기며 우리에게 남겨진 세월호의 의미를 곱씹는 시간을 가졌다.

세월호가 남긴 상처를 묻는 질문에 강미미 학생(신성여고 1학년)은 “대중들은 뭐든 빨리 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너무 큰 상처여서 더 오래 기억될 줄 알았다. 그런데 너무 빨리 있더라”면서 “유가족들에게 돌을 던지는 대중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았다”고 밝혔다.

참사 이후 사건의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정부와 대치국면에 들어갔다. 그사이 세월호 인양과 보상금에 대한 숫자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면서 유가족들을 보는 국민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유족들은 그조차 감당해야 할 몫으로 받아들였다.

전서윤 양(17세)은 “저에게 세월호는 첫사랑이다. 첫사랑을 할 때에는 내가 얼마나 상처받을지 모른채 빠져든다”면서 “세월호 서명 운동을 벌이면서 특별법 제정, 선체 인양, 진상 조사 등 다 이뤄질 거라 믿었다. 제 온 마음을 바쳤는데 결국 상처로 남았다”면서 답답한 심경을 토해냈다.

그러나 상처가 끝이 아니었다. 청소년과 청년들은 남아있는 자로서 '세월호 사건'에 대해 각자가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함께 모색하는 시간을 열었다.

세월호 사건으로 되새겨야 할 교훈을 알려달라는 한 예비교사의 질문에 최윤아(윤민 언니) 씨는 “저 역시 선생님 말씀과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래서 그날 동생에게 어른의 지시대로 ‘가만히 있어라’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그게 제일 후회된다”고 털어놨다.

윤아 씨는 “선장 선원이 아무리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할 수 있는 학생들을 만들어주시라”면서 “그러려면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른이 먼저 돼야 한다. 저 역시 동생을 통해 깨달았고 그런 어른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중”이라며 다짐의 말을 남겼다.

토크쇼 내내 침묵을 지키고 있던 안주영(안주현 동생, 15세) 군은 “처음에는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다 구출해 줄줄 알았다. 그런데 한 명도 구하지 못했다. 그냥… 대한민국을 믿지 말라”는 말을 남기자 객석에서 하나 둘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 박수 소리에는,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이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비통한 현실에 대한 공감과 이제 더는 가민히 있지 않겠다는 미래 세대의 새로운 희망이 뒤섞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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