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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주 4.3, 55년 전 부서진 백조일손 비석과 같은 처지”
“지금 제주 4.3, 55년 전 부서진 백조일손 비석과 같은 처지”
  • 홍석준 기자
  • 승인 2016.03.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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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기자에서 사진작가, 제주민예총 이사장이 된 강정효씨가 보는 제주 4.3
올해 초부터 제주민예총 이사장을 맡고 있는 강정효 사진작가를 지난 27일 오후 그의 작업실 이소재(離騷齋)에서 만났다. ⓒ 미디어제주

“1959년 유족들과 마을 주민들이 세운 백조일손 묘역 입구의 비석을 5.16 직후 경찰이 부숴버렸다. 이게 지금 시대 상황과 똑같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거치면서 4.3이 여기까지 왔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과거로 되돌리려고 하는게 이 깨진 비석으로 다 얘기되는 것 아닌가?”

사진기자 생활을 접고 전업 사진작가와 강사로 활동하다 올해 초 제주민예총 이사장이 된 강정효씨(51)는 현재 제주 4.3이 처한 상황을 이 한 마디로 요약했다.

제68주년 제주4.3 추념일을 일주일 앞둔 일요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광령리에 있는 그의 작업실 ‘이소재(離騷齋)’에서 선배 기자였던 강정효 이사장을 만났다.

백조일손 유족들이나 4.3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만 강 이사장의 이같은 얘기는 다소 충격적이다. 그가 언급한 이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으로 송악산 섯알오름에서 집단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유족들이 건립한 묘비를 5.16 직후 당시 서귀포경찰서장의 지시를 받은 모슬포지서 직원이 부숴버렸다는 것이다.

이도영 박사가 유족들과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쓴 『죽음의 예비검속』에도 이 일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록돼 있다.

 

1961년 6월 15일 10~12시경 서귀포경찰서장(강규하)의 지휘하에 유족들의 완강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모슬포지서 급사에게 술을 먹인 후 해머를 주어 비석을 산산조각 내어 버렸다. 공동 묘역에 안장되어 있던 23구의 묘는 후환을 두려워 한 유족들이 어디론가 각자 이장했다. (이도영, 『죽음의 예비검속』, 77쪽).

 

강정효 이사장이 제주4.3이 처한 현실과 비슷하다고 얘기한 백조일손 묘역의 훼손된 비석. ⓒ 미디어제주
당초 유족들이 세운 비석 파편을 모아놓은 보관함 옆에 1993년 8월 유족회 주관으로 다시 세운 위령비가 나란히 서 있다. ⓒ 미디어제주

그가 55년 전의 묘비 훼손 사건을 지금 4.3이 처한 상황에 빗대 얘기한 것은 정부 차원의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오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 이후에도 여전히 4.3 흔들기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추념일로 지정된 후에도 4.3을 기리는 대표적인 노래 ‘잠들지 않는 남도’가 정부의 반대로 식전 행사에서조차 불려지지 않는 상황을 신랄하게 꼬집는 그만의 화법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그는 4.3 평화공원에 눕혀져 있는 ‘백비(白碑)’ 예를 들어 4.3이 아직도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성격도 규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제주 4.3은 언제쯤이면 제대로 평가를 받아 백비에 글자를 새겨넣고 세울 수 있게 될까.

이런 기자의 질문에 그는 “현재 공식 명칭은 ‘제주4.3사건’이다. 하지만 정확한 이름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 하는 ‘정명(正名)’은 지금도 이르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4.3이 제대로 평가를 받는 것은 남북이 하나가 돼 통일이 된 이후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4.3의 시작이 분단에서 비롯됐고, 그 과정에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반대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항거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4.3을 취재하는 후배 기자들에게도 그는 “중립, 객관화라는 이름으로 의도적으로 피해온 게 많았던 것 같다”면서 “지금도 특정 언론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자들이 ‘거리 두기’를 하려고 하는 거 같다”고 쓴 소리를 하기도 했다.

정부의 진상보고서가 나온 뒤로 그 이상 앞으로 나가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아니냐고 질문하자 그는 의외의 얘기를 꺼냈다.

“잃어버린 10년은 새누리당이 야당과 국민들 앞에 할 얘기가 아니라 시민단체들에게 할 얘기인 거 같다”는 말이었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시민단체들이 변했다. 예전에는 시간, 노력, 돈까지 다 내놓으면서 일을 했었는데 이젠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것 같다”면서 “초창기에는 우리가 돈까지 내놓으면서 했는데 돈이 없어서 못한다는 얘기를 어떻게 하느냐”고 자기 비판이 섞인 얘기를 털어놓았다.

4.3 추념일 이후에도 그가 구상하고 있는 일이 있다. 우선 청년 작가, 이주 작가들과 함께 하는 ‘4.3 아카데미’를 올해 처음 준비하고 있다.

그는 “4.3을 얘기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세계화, 젊은 세대들에 대한 전승 이 두 가지다. 4.3을 확산시키는 데는 문화, 예술만큼 좋은 게 없는 거 같다”면서 “현기영, 강요배 선생과 함께 젊은 작가들이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4.3의 세계화와 전승이 이뤄지도록 하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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