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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국가 추념일에 ‘비보잉 댄스’라니…
4·3 국가 추념일에 ‘비보잉 댄스’라니…
  • 조보영 기자
  • 승인 2016.03.23 10: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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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보영의 제주보기錄] <1> ‘제25회 제주왕벚꽃축제’ 개막에 즈음해서

사진기를 들고 제주도를 오가면서 제주의 하늘과 돌, 나무에 빠졌다. 10년 전부터 제주살이를 꿈꿔왔으나 걸림돌이 많았다. 그사이 강산이 변했고 2015년 2월 입도했다. 아직도 거리의 야자수와 돌하르방 앞에서 한참을 멈춰서있다. 그러한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 어떤 제주의 기록(錄)이다. 제주에 더 깊숙이 들어가 날카로운 통찰을 지니는 날이 온다면 이 기록을 멈출까한다. [편집자 주]

제주대학교 캠퍼스 내 벚꽃길

4·3 추념식에 열리는 역대 최대 규모 ‘제주왕벚꽃 축제’

제주도민들에게 벚꽃은 좀 안타까운 꽃인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전국이 ‘벚꽃 축제’로 떠들썩한 시기에 왕벚나무의 자생지인 제주도에서는 국가권력에 의해 짓밟힌 4·3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념식이 열린다.

지금까지 ‘제주왕벚꽃 축제’는 4월 3일을 빗겨서 개최됐다. 2015년에는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2014년 4월 4일부터 6일까지, 2013년 3월 29일부터 31일까지 매년 3일간 진행됐다. 4·3의 추모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다.

그런데 올해 요상한 일이 생겼다. 4·3추념일 당일까지 제25주년 ‘제주왕벚꽃 축제’ 개회식이 진행된다. 4월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 동안 제주시 전농로 일대를 비롯해 제주대학교 입구, 애월읍 장전리의 왕벚꽃 명소마다 축제를 연다. 역대 최대 규모다.

제주시는 매년 제주종합경기장 일원에서 집중적으로 행사가 이뤄지다보니 지역 주차난과 불법노점상, 오폐수 문제 등 많은 민원이 발생함에 따라 축제 수익을 지역 상권으로 돌리기 위해 공간을 분산시켰다는 입장이다.

또한 개화시기가 각각 다른 제주도의 지리적 특수성을 최대한 활용, 행사 기간 동안 왕벚꽃 명소를 관광자원화하겠다는 목적도 내놨다.

그렇다 치더라도 어딘가 꺼림칙한 부분이 있다. 4·3 추념식 ‘그날’에 열리는 명가수 콘테스트와 비보잉댄스를 바라보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대략 난감이다. 5월 18일 광주에서 이런 이벤트를 벌린다면 광주 시민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까. 역시 대략 난감이다.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의 한 장면_ 오멸 감독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제주4‧3사건을 마주한 ‘불편함’

2013년 이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지역 독립영화관 내 인문학 모임 회원 10여명과 오멸 감독의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를 단체 관람했다.

영화 내용은 과감히 생략하겠다. 그 대신 회원들이 남긴 짧은 감상평을 모아봤다.

“영화 참 좋았어요. 아픈 역사를 바로 응시한다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요.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했던 일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어요. 일상을 선물 받았으니 잘 써야겠어요”

“지슬. 보는 내내 막막하고 답답했어요. 벗어나고(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그러나 현실은 계속 우리랑 같이 간다는 것을 상기하게 돼요”

“엔딩 크레딧에서 오멸 감독의 ‘한풀이’를 본 느낌이에요. 약자가 남길 수 있는 가장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복수극 한편이 아닐까요.”


밖에서 바라본 4·3은 그야말로 ‘불편함’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자 받아들이기 힘든 역사적 진실이어서 차라리 눈을 감고 뒷걸음질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서 더는 뒤로 물러설 수 없도록, 당당히 그 아픈 역사를 마주할 수 있도록 4·3의 기록과 외침은 계속되어야 한다. 제주 4·3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월 속에 있다.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제주4·3 평화공원

천만다행으로 제주도정도 4·3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4·3 추모 분위기 조성을 위해 3월 20일부터 4월 10일까지 3주간을 4·3주간으로 정해놨다. 올해 첫 시도다. 그 기간 동안 50개가 넘는 크고작은 4·3 관련 행사가 줄을 잇는다.

제주도민은 물론 제주를 찾아온 관광객들도 4·3 행사에 동참하면서 제주의 진짜 속살을 보고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동시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죄다 ‘제주 왕벚꽃 축제’로만 모아질 것 같은 노파심도 밀려온다. 그 발길의 일부를 돌려세우고 싶은 마음이다. 흐드러지게 피어오른 왕벚나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조보영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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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 2016-03-24 11:34:55
축제도 여러 여건을 고려한 프로그램 마련이필요하죠 ㅠㅠ
기자님의 지적 정말 가슴에 와 닿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