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0 10:04 (토)
건축물 없이 도시를 살리는 법…‘커뮤니티’를 디자인하라
건축물 없이 도시를 살리는 법…‘커뮤니티’를 디자인하라
  • 조보영 기자
  • 승인 2016.03.19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런 게 도시재생이다] <5> 커뮤니티 디자이너 야마자키 료 교수
“커뮤니티 디자인의 핵심은 ‘주민 참여’ 그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
일본 도호쿠 예술공과대학 커뮤니티 디자인학과 학과장 및 주식 studio-L 대표를 맡고 있는 야마자키 료 교수

무너지지 않는 건축물 설계사 VS 사람과 사람 사이 연대를 만드는 도시 디자이너

“1995년 한신‧아와이 대지진(고베 지진) 당시 진원지 근처에 살면서 도시계획과 건축 분야를 공부하고 있었어요.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죠. 그런데 그 속에서도 함께 사람들을 구출하고 밥을 나눠먹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연대’의 힘을 느끼게 됐습니다.”

일본 도호쿠 예술공과대학 커뮤니티 디자인학과 학과장 및 주식 studio-L 대표를 맡고 있는 야마자키 료 교수. 그는 현재 훗카이도부터 큐슈까지 일본 전역을 무대로 ‘커뮤니티 디자이너’로 맹활약 중이다.

고베 대지진 당시 예비 건축가였던 그는 두 가지 고민에 맞닥뜨렸다. 하나는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건축물을 만드는 설계자가 되는 것. 다른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감이 살아날 수 있는 도시의 디자이너가 되는 것.

“절대 무너지지 않는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 속에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쓸모없는 기둥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갈 길은 아니라는 판단을 했고 결국 연대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로 결정했어요.”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건축설계회사에 몸담으며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건축물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이 과정에서 건축물이 없더라도 지역 주민들과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좋은 커뮤니티 집단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야마자키 료 교수는 2005년 studio-L회사를 설립했다. L은 ‘Life'를 의미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인생까지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디자인을 하겠다는 뜻. 지역주민들의 장래비전과 지역내 기업의 사업방향 등 전 분야에 주민을 참여시키는 ’커뮤니티 디자인‘이 주업무다.

studio-L은 1년 동안 총8회의 주민 워크숍을 개최한다. 행정공무원을 직접 연수시켜 행정주도가 아닌 지역 주민들과 의견교환이 가능한 상호교류 시스템을 만들어나간다.

커뮤니티 디자인이란? 지역 주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주민참여형 도시 만들기

일본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는 인구 48만의 도시다. 교외 지역을 중심으로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원도심의 주민들이 빠져나가 백화점 3개가 문을 닫았다. 그제서야 행정도 위기감을 느꼈고 죽어가는 도시를 살릴 방안을 찾게 됐다.

“지금까지의 도시재생은 전문가나 행정의 의견대로 진행을 하다보니 20년 정도만 제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쫓아가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곳에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야 오래 유지되는 도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 디자인’은 주민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느냐가 도시재생의 성공전략이 되는 셈. 그러나 제한된 예산과 인력으로 다양한 주민의 의견을 담아내는 것이 문제였다. 야마자키 료 교수는 행정을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시청 직원을 직접 만나보니 주민참가형 프로젝트에 대한 경험이 없고 방법조차 모르고 있었어요. 또 주민의 요구를 듣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고요. 그래서 시청 직원 13명을 상대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법을 먼저 알려줬어요.”

세대별로 그룹을 만들어 1년 동안 8회의 워크숍을 진행했다. 행정 공무원이 주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신뢰감이 만들어지자 현재의 지역 현황은 물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상호적인 의견 교환이 가능해졌다.

야마자키 료 교수는 '커뮤니티 디자인'의 성공은 "워크숍에 참여하는 주민들을 주체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대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용기를 얻어 함께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곧 커뮤니티 디자이너의 역할인 셈.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는 살아났다. 지역 주민들의 워크숍에 사용했던 장식을 백화점 쇼윈도 장식에 활용하는 전시 공간도 생겼다. '커뮤니티 활동'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곧 '커뮤니티 디자인'의 핵심이다. 주민들 스스로 지역의 주인공이 되자 2개의 백화점이 다시 문을 열었다.

“도로나 하천에는 의견이 들어있지 않지만 활동하는 주체들 사이에는 관계가 있고 의견도 있습니다. 그 주체들의 생각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즐거움을 어떻게 생성해낼 것인가. 활동을 어떻게 지속시킬 것인가, 이러한 활동이 바로 커뮤니티 디자인입니다.”

행정과 지역주민을 연결하는 ‘소통 전략’으로 주민참여형 도시재생을 안착시킨 야마자키 료 교수. 그가 디자인한 마을에는 ‘사람’과 ‘사람’이 있다. 화려하고 튼튼한 건축물이 아닌 끈끈하고 돈독한 주민 연대의 힘으로 지속가능한 도시가 만들어졌다.  

제주도 역시 원도심 재생사업이 한창이다. 원희룡 도지사는 지난 2월 제주도의 도시계획 방향에 대해 원도심의 건축 높이 규제를 없애고 인구 10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제주형 콤팩트 시티' 추진안을 내놓았다. 도시내부의 고밀개발을 통해 환경 보전은 물론 경제적 효율을 높일 계획이다.

현재 제주도의 인구는 증가 추세지만 고령화와 인구감소에 대비한 '콤팩트 시티' 구축은 고려해볼 사안이다. 그러나 이러한 거시적인 발전 계획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의 소통을 이끌어내는 도시재생을 구상해야 된다는 점이다. <끝>

<조보영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딥페이크등(영상‧음향‧이미지)을 이용한 선거운동 및 후보자 등에 대한 허위사실공표‧비방은 공직선거법에 위반되므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삭제 또는 고발될 수 있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