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신문만 읽는 따분한 아빠는 아닌가요?”
“당신은 신문만 읽는 따분한 아빠는 아닌가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6.02.26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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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훈의 동화속 아이들 <18> 닐 게이먼의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
 

아빠란? 이렇게 물으면 사람들은 어떤 답을 할까요. 한 번 들어볼까요?

“집안의 위계질서를 지키는 최상에 있는 사람이죠. 아마 가정 경제는 그 분의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을까요? 아니, 무뚝뚝한 사람?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죠. 음…, 울고 싶어도 애써 눈물을 감춰야 하는 사람, 맞죠.”

이 대답은 솔직히 ‘아빠’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해요. ‘아버지’라는 단어에 제격이 아닌가 하네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아빠나 아버지는 왜 이런 대답을 들어야 하나요. 아빠는 당당해야 하고, 하고 싶은 말이나 울음도 참아야 하고, 어떤 때는 근엄한 위엄으로 가족을 챙기는 이들로 인식이 되어 있잖아요.

요즘 아빠의 역할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아빠는 가족에겐 덜 친근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만 같아 안타까워요.

이는 아빠는 ‘가부장’이라는 틀에 여전히 갇혀 있기 때문일 테죠. 가부장이라는 건 집안의 최고책임자인 가장의 권력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마냥 “모든 권력은 아빠로부터 나온다”는 게 바로 가부장이죠.

남성에게 집안의 권력을 몰아준 ‘가부장’은 구시대산물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가부장은 그리 오래된 산물은 아닙니다. 모든 권력이 ‘아빠’라는 존재로 쏠린 건 조선시대 중기이후에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 전엔 어떠했냐고요? 여성의 역할이 컸고, 여성의 지위도 그리 낮은 건 아니었어요. 유교 본연의 사상, 즉 성리학이 조선을 완전 지배하면서 ‘가부장’이 튼실하게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채 400년에 지나지 않는 산물인 것이죠.

그러나 그 시간동안 남성은 가부장의 지위를 확실히 지니게 되고, 여성과 자녀들은 가부장의 지휘와 통제를 받는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유교사상이 좋은 점도 많지만, 가부장만큼은 썩 좋지 않은 유산도 남기고 있죠. 그래서 아직도 대한민국 남성들은 권력의 최정점에 있다고 스스로를 착각하고 살곤 해요. 우리 아버지 세대엔 아주 극심했죠. 아빠들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됩니다. 물 가져오라, 재떨이 가져오라 등등…. 아빠의 손발은 엄마가 되기도 하고, 엄마가 바쁘면 아빠의 손발은 자식들이 대신합니다.

이젠 많이 변했습니다. 육아일기를 쓰는 아빠들도 생기고, 애들이랑 잘 놀아주려고 애쓰는 아빠들로 넘쳐납니다. 그래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가부장’의 환상은 가정의 틈새에서 아빠의 권력욕을 흔들곤 합니다.

동화속에 등장하는 아빠는 신문을 읽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닐 게이먼의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이 책은 어린이들의 다양한 놀이를 설명하고 있어요.

책의 주인공 ‘나’는 어느날 나단이 들고 온 어항에 탐이 납니다. 그 어항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금붕어 2마리가 들어있었거든요. 나는 나단에게 물에 뜨는 비행접시, 인형 등을 보여주며 어항과 바꾸자고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나단은 거들떠보지도 않아요. 그래서 나는 기발한 제안을 했죠. “우리 아빠랑 금붕어랑 바꾸자.”

나는 금붕어 2마리가 든 어항을 얻었어요. 아빠는 어떻게 됐을까요? 나단이 데리고 갔죠. 그러나 문제가 생기고야 맙니다. 집 안에 들어온 엄마는 아빠가 금붕어랑 바뀌게 된 사실을 알고 당장 찾아오라고 합니다.

나는 어항을 아빠와 다시 바꾸기 위해 나단의 집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나단의 집엔 아빠가 없지 뭐예요. 배쉬티의 기타랑 바뀌었대요. 나단은 기타랑 바뀐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어요. “너희 아빠는 너무 따분해. 신문 보는 것말곤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

아빠는 배쉬티의 집에서 블링키네 집으로, 블링키네 집에서 패티 집으로 옮겨갑니다. 겨우 찾은 아빠. 과연 뭘 하고 있을까요? 아빠는 토끼 집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하는 일이란 여전히 신문읽기랍니다.

주인공이 금붕어 2마리를 아빠와 바꿨는데도, 아빠는 토끼 집에 들어가서도 신문을 읽고 있다.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빠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꾼 날>의 주인공 ‘나’는 재미삼아 금붕어 2마리와 아빠를 바꾸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책이 보여주고 있지요. 왜 아빠는 금붕어랑 교환이 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다른 물건들로 바뀔까요. 애들이 봤을 땐 신문만 읽는 아빠는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다는 겁니다. ‘신문 보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는’ 아빠랑 어느 누가 있고 싶어할까요.

2년 전이군요. 그때 동시지방선거가 열렸죠. 아주 유명한 인사가 교육감 후보로 나왔는데 그 후보의 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식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교육감 자격이 있느냐는 글을 올려서 이슈가 된 적이 있죠. 그때 제가 둘째에서 그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둘째는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교육감이 되면) 안되죠. 교육감이 되면 더 바쁠텐데, 그러면 더 안놀아 주잖아요.”

제 두 딸은 점점 커갑니다. 큰 애는 고등학생이 되고, 작은 애는 중학생 2학년이 되어요. 여전히 아빠랑 노는 걸 좋아하고, 늘 “오늘 아빠 몇 시에 집에 와요?”라며 묻죠. 애들이 언제까지 아빠랑 놀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아빠랑 있는 걸 좋아하니 다행입니다. 이 글을 읽은 아빠들도 동화에서처럼 팔려나가는 신세가 되질 말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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