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지킴이’ 대학생 노숙 투쟁 37일째… 제주 대학생들도 동참
꼭 다문 입술과 불끈 쥐어진 두 손으로 말없이 일본대사관을 바라보는 소녀가 있다. 지난 2011년 12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의 수요집회 1000차를 기리기 위해 서울 종로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그렇게 25년의 세월을 버텨왔다.
요즘 이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전국의 대학생들이 나섰다.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는 대학생들은 서로의 온기로 한파를 이기면서 오늘로 37일째 노숙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제주의 대학생들도 그 뜨거운 열기에 함께 동참했다.
3일 저녁 7시 제주시청 광장에서 열린 '제주수요문화제'의 자유발언에 나선 김광철(제주대학교 사회과학대 4학년) 씨는 “지난 폭설 때 3박 4일 동안 비닐을 덮고 노숙을 하며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다 왔다"고 인사말을 시작했다.
김광철 씨는 “영하 15도 날씨에서도 10명이 넘는 대학생들이 서로를 토닥토닥하는 그 순간이 얼마나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모른다”면서 “많은 시민들이 음식을 가져다주시고 함께 행동으로 동참해주셨다. 그래서 오늘 제주에서 타오른 이 열 개의 촛불이 정말 소중하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순간 어둠과 추위 속에 촛불 하나씩을 밝히고 있던 시민들의 마음에도 보이지 않는 온기가 전해지는 듯 했다.
‘소녀상 지킴이’ 대학생들이 노숙 투쟁을 시작한 것은 지난달 30일. 이들은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협상안 전면 무효화와 일본의 정부 진정성 있는 사과를 촉구하며 위안부 합의 이후 첫 수요시위가 열린 그날부터 소녀상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상테이블에 나섰고, 한국정부는 일본의 사과를 수용,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를 선언했다.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이전하는 조건으로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위안부’ 피해자 재단에 일본 정부는 10억엔(100억)의 설립 기금을 출연키로 했다.
김광철 씨는 “세상에 어떤 사과가 피해 당사자가 빠진 상태로 소녀상을 철거하면 합의하겠다는 부가 조건이 달릴 수 있냐. 한국 정부가 만드는 재단에 일본이 10억 엔을 증여한다는 것은 곧 그 책임을 한국 정부가 진다는 의미”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얼마 전 일본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강제 연행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 이것이 한·일 협상의 실체다. 할머니들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명예를 회복 시켜주는 것이 한·일 협상인 것”이라고 강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31일 ‘위안부 합의’ 직후인 12월 말, 일본 정부는 유엔기구에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제출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김광철 씨는 “우리 대학생들은 직접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께서 싸우고 계신 ‘정의와 기억’ 재단에 100억 원을 모아서 기부할 것”이라면서 “우리 손으로 100억을 모아내서 한·일협상 무효를 선언하고자 한다. 그 발걸음이 모아질 때까지 끝까지 함께 해달라”고 호소했다.
민주수호제주연대의 주최로 열린 이번 촛불문화제에는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온 어머니와 고등학생, 대학생, 40~50대 중장년층까지 비록 참여자의 수는 적지만 다양한 세대가 함께 ‘위안부’ 문제 해결의 의지를 불태웠다.
이 날 행사에 참여한 송채원(보물섬 학교) 양은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이 빠져있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 정부끼리의 합의일 뿐 국민들의 뜻이 정부와 다르다는 것을 어른이 될 때까지 주변에 꾸준히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보영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