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00:04 (금)
“다시는 정부와 道 잘못을 제주도민에 떠넘기지 말라”
“다시는 정부와 道 잘못을 제주도민에 떠넘기지 말라”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6.01.27 09:23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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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窓] 32년만의 제주 폭설 사태를 바라보면서
제주를 떠나지 못해 제주공항에 머물러 있는 이들. 정부가 이런 일을 만들고서는 그 욕은 제주도민들이 먹고 있다.

지난 월요일 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에 있는 모 일간지에 다니는 후배 기자다. 그날은 제주도가 전국 최고의 이슈가 된 상태였기에 ‘사진을 구하려나?’ 이런 생각이 먼저 스쳐갔다. 하지만 전화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선배님, 위에서 제주 관광 문제점 쓰라는데요.”

후배 기자의 말은 속된 말로 ‘제주도를 조지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거였다. 제주도 출신이고, 제주도에 살고 있고, 제주도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기자 입장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내부고발자가 되란 말인가?

후배가 윗선으로부터 지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 전날 종이박스 1만원 판매, 택시비 10만원이라는 부정적 기사가 언론을 도배하면서 제주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 상태였다. 솔직히 제주에 있는 언론인들이 그런 기사를 확인도 하지 않고 ‘받아쓰기’한 것에 못마땅해 있던 차에 후배 기자의 전화까지 받으니 어리벙벙했다.

기자가 할 말은 딱히 없었다.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다 나갔는데?”

그러자 후배 기자는 <미디어제주>를 보면 되냐고 했다. 그래서 ‘그러라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잘못을 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욕은 제주도에 살고 있고, 제주도 땅을 지키는 이들만 먹고 있다. 9만명이 한 섬에 갇히는 사고는 그야말로 ‘재난’ 수준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게 제주도민들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데 있다. 잘못은 우선은 정부에 있다.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에 있다.

정말 재난이라면 9만명, 아니 수십만명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도 있다. 자연재해 앞에서는 ‘어벤저스’가 아닌 이상 인간을 구제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인간 스스로가 자신을 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재난 상황에 맞는 매뉴얼이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

정부는 2년간 혼쭐이 났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맞았다. 지난해는 메르스가 닥쳤다. 컨트롤 타워가 있었나? 없었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다. 그래도 정부는 지금까지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다.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이다.

가뜩이나 제주도로서는 제주공항을 제어할 수 없다. 한국공항공사법에 그렇게 돼 있다. 그 법 17조를 들여다보면 공항공사의 지도 감독은 국토해양부가 하도록 돼 있다. 항공 안전은 물론, 공항시설의 이용자 편의 등의 사항은 모두 국토부를 통해 감독을 받는다. 제주공항내 난방이나 간식 문제 등이 초기에 잘 해결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수천명의 공항 난민을 만든 것은 법에 나와 있듯이 지도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국토부에 있다. 비상사태 때를 대비한 매뉴얼이 있다지만 고작 500명이 어쩔 수 없이 공항에 머무는 것을 가정했다고 하니, 웃을 일이다. 저가항공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이런 지경을 만든 게 다 누구 잘못인가. 정부 아닌가.

그렇다고 제주특별자치도가 이번 사태에 자유로운가. 절대 아니다. 폭설에 대비한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다. 10㎝ 이상 쌓이면 어떻게 한다, 그 이상 눈이 오면 어떻게 한다는 대책들이 없다. 그런 게 있었다면 온 섬이 난리를 피울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잘못을 했으면 잘못을 한 거지 그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이유는 없다. 원희룡 지사는 지난 25일 제주도청 기자실을 들러 하소연을 했단다. 저가항공의 문제와 공항공사와의 유기적이지 못한 문제점 등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걸 쓴 기자는 되레 공항공사의 항의를 받는 처지가 됐다. 잘못을 떠넘기다가 결국은 기자가 욕을 먹는 경우가 됐다.

어쨌든 앞서 후배 기자의 전화처럼 제주도민이 입은 상처는, 여기에 어쩔 수 없이 체류한 이들보다 더 크다. 이번 사태로 제주도에 오지 않겠다고 하는 이들을 포함해서 제주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안고 떠난 이들이 많다. 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의 잘못을 도민들이 떠안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여튼 사태만 발생하면 행정을 하는 이들은 다시는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만든다고 하지만 빈말이 많다.

자연재해는 언제든지 온다. 요 며칠 혼쭐이 났으니 제대로 된 재난대응 매뉴얼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도 될까. 행정의 잘못이 도민들에게 전가되는 건 바라지 않는다. 행정은 제대로 하지 못했으나 남은 체류객들을 위해 정성을 쏟아준 도민들. 그런 제주사람들이 있었기에 미비된 재난 대응 시스템을 살짝 덮어줬다는 데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한마디 더 붙인다면 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가 이런 사태를 만들어 제주도민을 욕보인다면 다시는 용서하지 않겠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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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의 능력 2016-01-28 17:51:08
사실 열심히 철야 근무한 하위직 공무원들께는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를 잘못 만나 이 모양인듯...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태풍으로 20,30 시간 정도의 하늘길, 뱃길이 끊기는 경우가 허다해도 아무런 문제 없이 해결해 왔던 부분인데.... 밤새 눈이 내릴때 폭설(재난)을 눈(낭만)으로 알고 편히 주무신게지

공무one 2016-01-27 23:15:55
고위공무원은 책임직이다. 알고나 말해라. 문제점 의논? 책임을 먼저 지고 그 다음에 답을 찾아야지 아무도 책임을 안지니까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하는 거다. 그래야 아무나 공무원한다고 개나소나 나대지 못하는 거다. 나라 녹 먹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란 말씀.

제주땅주인 2016-01-27 14:59:32
그라머 니가 공무원해라,, 이노무 나라는 무조건 남핑계를 댄다니까,, 그래서 발전이 없어요,, 문제점이 있으면 의논해서 이런일이 없도록해야하는데,,무조건 잘못한 사람이 나와야되고,,그사람은 욕을 먹어야되고,, 이런 인간들은 북한으로 보내야되,, 그기서도 큰소리 나오나 ?

지당하신 말씀 2016-01-27 09:42:42
누구를 위한 나라이며, 제주도인가?
공무원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과 도민을 위해서가 아닌가?
재난 대응 공무원들이 문제가 많은 듯 싶다.
매뉴얼이 없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과 도민에게 욕먹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