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전화를 받았다. 차량사고 관련이었다. 사실 경찰 출입이 아니어서 심드렁했으나 제보전화를 듣고 보니 씁쓸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다. ‘씁쓸’보다는 ‘서글픔’이 낫겠다. 왜 ‘서글픔’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은지 얘기하겠다.
제보는 이랬다. 지난 16일 발생한 단순한 차량긁힘인데, 조사를 받으라고 경찰서에서 A씨에게 문자가 날라왔다. 12월 21일까지 경찰서에 출두를 하라는 문자였다. 대체 어떤 사고였을까. 사진을 제시하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하다.
위 사진을 들여다보면 차량사고로 보이지 않는다. 푹 꺼진 것도 아니고 그냥 긁힌 정도이다. 글을 쓰는 기자도 남의 차량에 범퍼를 긁힌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그냥 가십시오”라고 한다. 물론 범퍼가 긁혔을 때 기자처럼 그렇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범퍼의 기능은 차체를 보존하기 위한 보호장치이며, 보조장치이다. 범퍼는 어차피 부딪쳐야 직성이 풀린다. 억지로 부딪쳐야 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범퍼가 있기에 차량의 다른 부분이 보호받는 게 사실 아닌가.
A씨에 따르면 택시를 살짝 스치면서 사진과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A씨의 말은 이랬다.
“택시기사가 현금 10만원을 요구합디다. 그래서 보험처리 한다고 했죠. 그런데 택시기사는 보험회사에 사고 접수가 안됐다며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택시기사는 말 그대로 실천했다. 경찰서로부터 출동을 하라는 문자가 A씨에게 도착했음은 물론이다. A씨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 현장에서 보험회사에 분명 전화를 했기에 ‘경찰출두’ 문자는 그를 더 어벙하게 만들었다.
단순 긁힘이 경찰에 접수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경찰은 사고접수를 받으면 조사를 진행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A씨의 사건을 맡은 경찰과도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단순 사고인데도 접수되는 경우가 전체의 40%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건접수를 받았기에 출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A씨의 경우처럼 사실 아무 것도 아닌 걸 사건으로 만드는 일이 너무 많다. 경찰 인력이 남아돈다면 모르겠으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혼쭐을 내주겠다고, 심심풀이로 경찰인력을 남용하는 건 아닌가.
그런데 A씨의 경우는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범칙금 4만원이 부과됐다. 남의 범퍼를 살짝 긁으면 범죄자마냥 경찰에 신고접수 되고, 범칙금 4만원까지 부과된다는 사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마도 택시기사는 그런 걸 잘 아는 모양이다.
법은 법대로 해도 좋지만, 법은 잘 악용하는 자의 손을 들어줘야 하는지 묻고 싶다. 이번 경우처럼 경찰력 낭비를 불러오는 경우엔 오히려 신고를 한 이들을 혼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40%나 되는 단순 신고도 줄이고, 긴급한 사건에 경찰력이 투입돼야 하지 않을까.
왜 세상이 이런가. 남을 위해주기보다는 남을 위해(危害)하려는 세상이다. 툭 하면 경찰로 신고 전화를 한다. 바른 세상은 아니다. 서글퍼진다. 그러잖아도 연말연시, 추운 겨울에 고생하는 경찰 아니던가. 그래서 기분이 상한 ‘씁쓸’보다 ‘서글픔’이란 단어를 쓰게 된 게다.
<김형훈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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