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29 15:31 (금)
20~30대 청년들이 꼽은 제주 3색 “자연·소통·여유”
20~30대 청년들이 꼽은 제주 3색 “자연·소통·여유”
  • 조보영 기자
  • 승인 2015.12.25 12:2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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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 저녁, 그들이 구좌읍 세화리에 모인 이유는?
따스한 난로·풍성한 저녁· 유쾌한 퀴즈쇼 등 ‘축제의 밤’ 열어
24일 밤, 제주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몬○ 게스트하우스 에서 20~30대 청년들의 소박하지만 특별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렸다.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깔리고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어오던 그날 밤, 정말이지 여느 날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그런 날...(이날은 분명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제주 동쪽의 작은 마당에 여러 차량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주차장 맞은편 건물 유리창 사이로 따사로운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24일 밤 8시 구좌읍 세화리 몬○ 게스트 하우스. 저녁 8시가 되자 주인장의 안내에 따라 숙소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고 그들만의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파티가 시작됐다.

“여기서 카나페 만드실 수 있는 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다.)

“아, 그러면 일단 남자 분들만 이쪽으로 오세요”

오븐에 들어가기 직전의 닭가슴살 꼬치구이

취사병 출신 주인장의 진두지휘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손님들. 한쪽에서는 빠른 손놀림으로 야채와 과일을 씻고 옆 사람은 먹기 좋게 썰어 담는다.

또 다른 테이블의 남자 셋은 카나페에 들어갈 참치 샐러드 맛내기에 심취해 있고, 맞은편 사람들은 오순도순 모여 브로콜리, 방울토마토, 피망, 버섯, 마늘, 닭가슴살 등을 먹음직스럽게 꼬치막대에 꿴다.

성탄 전야, 제법 근사한 식탁이 완성됐다. 그 사이 자신만의 이야기 보따리를 몰래 감추고 있을 법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스무 명의 청년들도 낯선 지붕 아래 한 식구가 됐다.

작년 5월 오픈한 숙소의 주인장 조성우 씨는 “10년 동안 84개국의 나라를 다니며 배낭여행을 했어요. 외국에서 숙소를 정할 때 원칙이 딱 하나였어요. 주방이 있는가! 그 나라의 산지 재료들로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소통이 되거든요”

조성우 씨는 자신의 경험을 숙소 운영의 원칙으로 되살렸다. 재료를 살 때에도 손님들을 직접 보낸다. 함께 마트에 다녀온 후에는 경계하던 눈빛도, 경직됐던 낯빛도 찾아볼 수 없다.

오늘 파티를 위해 손님들은 세 가지 준비물을 챙겨왔다. 5000원 상당의 크리스마스 선물과 식사 비용 1만원, 각자가 마실 술. 이 또한 손님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주인장의 센스다. 내가 먹은 만큼만 지불하라는 거다.(회비의 가장 큰 격차는 알콜 값이므로) 참으로 요망진 주인장이다.

정성어린 성찬으로 허기가 채워지자 오늘의 하이라이트, 제주 퀴즈 대회의 막이 올랐다. 1점부터 5점까지 점수를 합산, 등수에 따라 선물 선택권이 주어지는 냉정한 승부의 세계.

제주의 역사·문화·환경을 아우르는 기초 상식 및 고난도 문제가 뇌색남·뇌색녀(뇌가 섹시한 남녀를 일컫는 말로 '똑똑한 사람들'을 뜻하는 신조어)들의 전두엽을 막무가내로 자극하며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수하기 위한 불꽃튀는 접전이 펼쳐졌다.

허기를 채운 손님들이 제주 퀴즈 대회에 참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수하기 위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비밀 여행인 탓에 간곡히 익명을 요구한 L모(서울 거주, 30대 초반) 씨는“이달 초 3일의 휴가를 받아 올레를 걸었고 좀더 걷고 싶어서 또 제주에 왔어요”라며 “아침에 눈을 뜨고 8시간, 9시간, 10시간을 그냥 생각 없이 걸어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아무 생각없이 걸어요.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깜짝 놀랄 때가 있어요. 그게 제주의 매력이겠죠?”하고 멋쩍게 웃으며 말한다.

대전 서구 갈마동에서 온 문훈민 씨(33세)는 “대전에 있으면 더 외로울 것 같아서, 크리스마스 느낌을 받고 싶지 않아서 왔어요”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어 “매년 두 번씩 제주를 와요.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아서 자꾸 제주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제주의 매력을 풀어냈다.

올해 9월에 이곳에 머물며 크리스마스에는 남자친구를 만들 계획이라 이 파티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친구와 다시 이곳을 찾은 이혜림 씨(경기도 분당구, 31세), 생애 첫 등반이었던 한라산에 빠진 후 내 안의 틀을 깨기 위해 1년에 두 차례씩 제주 여행을 즐긴다는 신지민(서울 구로구, 27세) 씨, 처음으로 혼자만의 여행에 도전하게 됐다는 조해규(서울, 26세) 씨까지...

게스트하우스 손님들이 각자 준비해 온 선물들... 히트택 양말과 장갑 등 방한 용품을 비롯해 다이어리, 텀블러, 과자, 황사마스크, 천일염, 마스크팩, 소주, 소시지, 초콜릿 등 풍성한 정성이 모아졌다.

각자가 자신만의 생각을 꺼내놓지만 그들이 제주를 찾는 이유는 하나였다. ‘자연’ 속에서 ‘여유’를 즐기며 나 자신과, 나아가 타인과 ‘소통’하고 싶은 것. 며칠 후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여행 전과 똑같은 이유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잠시 잠깐씩 오늘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언제든 다시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는 자유가 있고, 언제든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제주의 자연이 있지 않은가. 밤이 무르익자 창밖에는 매서운 겨울 바람이 더세게 불어제낀다. 그 바람을 함께 맞을 사람들이 있기에 더는 을씨년스럽지 않다. 맨도롱 또똣한 크리스마스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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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건이야기~ 2015-12-27 10:21:40
참으로 멋진 제주만의 독특한 X-MAS 이벤트였네요~~추위를 한것 녹여주면서 제주를 연상케 만들고, 다시 제주를 찾게하는 이런 이벤트에 보조금이 쓰이면 참말 좋을텐데~~~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