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나라’의 민낯, 기억하고 또 기억하겠습니다
‘나쁜 나라’의 민낯, 기억하고 또 기억하겠습니다
  • 조보영 기자
  • 승인 2015.12.24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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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세월호 참사의 기록-다큐멘터리 ‘나쁜나라’ 상영회
세월호특별법’ 제정 이후 1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 23일 저녁 아라동 메가박스. 단원고 2학년 4반 임경빈 군의 어머니와 같은 반 강승묵 군의 어머니가 세월호 참사의 기록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 상영회에 참석, 제주도민들과 세월호 참사에 관한 간담회를 가졌다.

내일 산타 할아버지가 오신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 오늘 밤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국민 말고는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는 ‘나쁜 나라’ 사람들에게는 어떤 선물을 줘야 할지 말이다.

23일 저녁 아라동 메가박스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의 다큐멘터리 기록 영화 ‘나쁜나라’가 상영됐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부터 교복 차림의 고등학생, 40~50대 장년들까지 다양한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세월호 진상 규명과 관련, 국정특위위원회와 세월호 유가족과의 팽팽한 대화로 시작된다.

정부 관계자는 “추후 다른 국정 조사가 있을 경우 이 사례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다”고 딱잘라 말한다. 이에 유가족 중 한 명이 아주 정중하게 묻는다. “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선례가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는 생각을 안하십니까? 대답 좀 해주십시오”

길고 긴 침묵이 이어진다. 단 한 마디의 이유도 제시하지 못한 채 중재위원회 설치는 결렬됐다. 하지만 유가족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에 멈춰있다. 그날 304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295명 사망. 9명 실종. 그중 250명이 단원고 학생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선장님'의 '말씀'을 믿고 친구들과의 손을 꼭 잡은 채 차디찬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았다.

구조자 0명의 대참사... 단원고 부모와 국민들은 수학여행을 다녀오기 위해 세월호에 몸을 실었던 아이들이 수장당하는 죽음의 순간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허나 아직까지 이 문제에 책임을 진 정부 관계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가족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더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 거리로 나서야했다. 엄마니까, 부모니까 잊을 수도 없다. 그들이 왜 죽었는지 이유를 밝혀야했다. 그렇게라도 죽은 아이들을 살려내야했다.

“단원고 엄마입니다. 우리 애가 수학여행을 갔다가 수장을 당했어요. 서명 좀 해주세요”

2014년 6월 30일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조직되고 세월호 특별법 재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과 단식, 농성, 도보행진, 엄마들의 ‘통한의 삭발’까지... 그동안 정부만을 믿고 살아왔던 자신들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유가족들은 거리에서 투쟁했다.

그 사이 알게 됐다. 국민 말고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나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을... 언론도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그들이 기댈 곳은 오로지 국민이었다. 물론 일부 국민들이 던지는 돌을 맞고 가슴에 멍이 들기도 했다.

“놀러갔다 죽은 애들한테 무슨 보상이냐, 세월호 인양하는 데 드는 돈을 왜 국민 혈세로 낭비하냐, 자식 팔아서 얻은 돈으로 얼마나 잘사나 보자...”

유가족들은 그들 조차 껴안았다. “저희가 여기에서 멈추면 이 자리에 당신이 서게 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아이를 위해, 또 여러분을 위해 멈출 수가 없습니다. 꼭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결국 세월호 참사 206일째인 2014년 11월 7일. 공소권도, 수사권도 없는 반쪽자리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영화는 끝났다. 누구도 일어서지 못한다. 훌쩍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 사이 세월호 유가족을 대표한 단원고 학부모 두 명이 눈물을 훔치며 착석, 짧은 간담회가 이어졌다.

사대부고 2학년 5반 류미선 양이 "세월호 문제가 일부 어른들의 말처럼 보상금을 바라는 유가족들의 투쟁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고서야 비로소 진실을 알았다"며 단원고 어머니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고 있다.

2학년 4반 임경빈 군의 어머니는 “부모들이 모두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지만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라며 “얼마 전 세월호 청문회에서 한 마디 사과도 없이 너무나 떳떳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실무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이 아팠다”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세월호 1차 청문회가 열렸다. 장소는 국회가 아닌 서울 명동 YMCA 대강당. 여당 위원들은 출석조차 하지 않았고 주요 언론도 외면했다. 국민들의 힘으로 SNS를 통해 뉴스가 전해졌다.

임경빈 군의 어머니는 “방금 세월호 보상과 관련한 질문을 해주셨는데 정부가 가족을 위해서 해준 것은 없다. 일부 힘들고 어려운 유가족들이 보상금 신청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130여 가구가 민사 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돈은 필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진상 규명이다. 그 돈 받아서 뭘하겠느냐. 애도 없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같은 반 강승묵 군 어머니는 “아이가 사고를 당한 직후부터 10월까지 입원해 있었다. 그래서 다른 부모들처럼 적극적으로 행동하지는 못했다. 영화에 그려진 것보다 현실은 더 힘들었다”고 울먹이는 소리로 입을 뗐다.

이어 “특조위는 만들어졌지만 활동을 못하게 한다. 인양 현장에도 가봤지만 뭘 그렇게 감추는지 항상 우리가 있는 쪽을 보면서 작업을 한다. 알 수가 없다. 현재까지 나온 세월호의 진실들도 부모들이 발견한 것이 많다.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간담회도 쫓아다니고 피케팅에 참여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현재 세월호 선체 인양 작업은 2016년 7월을 목표로 중국 상하이샐비지 측이 책임을 맡아 진행 중이다. 이들은 가장 싼 가격으로 최종 선정됐으며 인양 경험은 전무하다.

간담회가 끝난 후에도 관객들은 유가족의 손을 놓지 않고 눈시울을 붉히며 응원의 말을 건넸다.

영화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동안 다 해결됐는 줄 알았는데 500일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니 안타깝다, 무조건 건강 챙기셔라, 공황장애는 꼭 치료를 받으셔야 한다, 세월호 관련 정보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달라...

영화 도입에서 반복된 참사의 기록을 보여주며 “우리는 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한 똑같은 참사는 되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날을 결코 잊지 못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많은 시민들이 영화관을 나서지 못하고 한참동안 줄을 서서 유가족들과 눈물의 대화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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