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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다운 교육과 가르침 항해의 돛을 이제 올렸다”
“배움다운 교육과 가르침 항해의 돛을 이제 올렸다”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12.22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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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제주·제주매일 공동기획] 공교육, 변화의 항해를 시작하다
<19> 에필로그
 

치열한 제주시 동지역 인문계고에 들어가기 위해 중학교 시절에는 ‘딸랑이’를 면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대학이라는 또 다른 경주가 기다린다. 수업은 교과서를 중심으로 단원1부터 차근차근 진도를 나갔다. 교사들 간에는 교장, 교감 등 관리직에서 수석교사, 부장교사로 내려오는 엄격한 질서 체계가 있었다. 이것이 오랜 시간 고착화된 교실의 풍경이다.

▲기획을 시작한 이유

시험 중심의 수업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는 ‘주입식 교육’ ‘문제풀이식 수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계속 있어왔다. 하지만 누구도 이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는 입에 올리지 못 했다. 당장 몇개월, 길어도 3년 뒤에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입시’라는 거대한 관문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교사와 학생, 누구도 행복하지 못 하다는 사실은 모두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대학졸업자가 많아지면서 대학 진학이 ‘사회적 사람 구실을 위한’ 만병통치약으로서의 힘을 서서히 잃어가고, ‘개인의 행복’ ‘오늘의 가치’에 대한 중요도가 점차 커지면서 학교 현장 역시 미래를 준비하는 기관에서 오늘을 행복하게 보내야 할 공간으로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이석문 제주도 교육감을 비롯해 전국 17개 시·도 중 13곳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탄생하면서 공교육의 변화가 시동을 걸었다.

▲이미 시작된 변화의 움직임들

이석문 교육감은 취임과 동시에 ‘배려와 협력의 제주교육’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 등 교육 주체 모두가 행복한 제주교육도 약속했다. 그 일환으로 가장 선두에 내건 정책은 제주형 자율학교(혁신학교, 다혼디배움학교)를 통한 교실 수업의 혁신과 학교 문화의 수평화였다.

혁신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미리 수업 과정을 자유롭게 구상하고 수업 시간도 블록으로 묶어 운영할 수 있다. 학교 일에 학생들의 실질적인 자치가 허용되고, 교사들이 수업을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학교 행정업무는 교감과 부장교사들에게 옮겨갔다. 일선교사에 대한 교장의 간섭과 지시를 최소화하는 등 수평적인 교내 조직문화도 장려된다.

올해 제주지역에는 5개의 초등학교와 초·중 통합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됐다(애월초, 납읍초, 수산초, 종달초, 무릉초·중).

이번 기획을 시작하면서 지난 1년간 ‘미디어제주’와 ‘제주매일’은 도내 혁신학교와 경기도 시흥시 장곡중학교, 경기도 양평군 조현초등학교 등을 다녀왔다. 제주의 학교들은 이제 막 혁신학교를 시작한 학교들이고, 도외 두 곳은 몇 년 전 혁신학교를 도입해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학교들이다.

이 학교들을 방문, 취재하면서 느낀 공통점은 활력과 열정이었다.

우선 교사들에게 활력이 넘쳤다. 어떻게 수업을 구성할까 고민을 하고 새로운 책을 찾아 읽으면서 이제야 교사가 된 것 같다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에게 할당된 업무로 바쁠 때에는 일에 대한 자괴감과 업무 부담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스트레스가 높았던 반면, 수업 준비로 바빠진 요즘에는 뭔가 교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듯한 뿌듯함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혁신학교 지정으로 행정업무가 줄어든 교사들의 시간은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아침에 출근하면 인사를 나누기가 바쁘게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던 교사들이 지금은 아이들과 눈을 먼저 맞춘다. 여유가 생기니 아이들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게 됐고, 학생들과의 관계가 호전되면서 생활지도도 훨씬 수월해졌다는 의견도 많았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즐거워하면서 학부모들이 학교에 보내는 신뢰도도 높아졌다. 납읍초의 경우 학교에서 하는 방과 후 활동에 전교생 대부분이 신청할 만큼 사교육 참여율이 낮다. 반면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지면서 학교 측은 1교시 시작 전 학교에 오는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활동(이를테면 학교 앞 금산공원 돌기 등)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도내·외 혁신학교에서 발견한 또 다른 공통점은 교장들에게서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장곡중학교 정용택 교장은 위엄 넘치는 교장 명패를 버리고 ‘학교 참일꾼 정용택’이라는 나무 판을 책상에 올려두고 있었다. 학생들이 지나다니기를 꺼리던 교장실 앞 복도를 북카페로 만들고 한 쪽에 탁구대를 놓아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이 북적이게 만든 것도 정용택 교장의 아이디어였다. 조현초등학교 최영식 교장은 학교가 입소문나면서 학생 수가 늘어 교실이 부족해지자 교장실을 내어주고 자신은 건물 밖 컨테이너 박스로 집무실을 옮겼다.

순환 발령에 따라 조용하고 엄하게 학교를 유지·관리해오던 교장들이 학교의 변화를 앞장서서 이끄는 ‘구원투수’이자 ‘경영자’로 등판한 것이다.

특히 자신만의 학교 경영 철학을 가진 교사들이 교장 공모를 통해 부임하는 사례도 학교 혁신의 좋은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혁신학교는 아니지만 공교육의 변화를 실질적이고 모범적으로 가져가는 세화고 김종식 교장 역시 공모형 교장으로 부임해오면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느냐’를 고민, 학생들이 꿈을 찾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를 실질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시책 추진에 방점을 찍었다.

▲공교육에 대한 시민들의 목소리

‘미디어제주’와 ‘제주매일’이 기획의 일환으로 실시한 도민설문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유효 응답수 513명)의 85%가 ‘앞으로의 교육현장은 학생들이 행복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답했다. ’학력 신장을 이루는 곳이어야 한다‘는 대답은 8%에 그쳤다.

이것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새로운 흐름으로 평가된다.

대학진학률은 2008년을 기점으로 84%라는 정점을 찍은 후 매년 하향하고 있다. 특히 변화가 빠른 서울시의 대학진학률은 2005년 71%에서 2015년 56%로 급감했다. ‘시험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닌데’ 하면서도 ‘막연히 대학은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도민들이 이제는 과감히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다양한 길’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제주도민들이 젊은, 진보 성향의 교육감을 제주 교육의 수장으로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제 제주교육은 기존의 수월성, 공평성 교육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학생 행복’을 공교육의 주요 개혁방향으로 가져가고 있다. 그리고 새해를 앞두고 2016년 새로운 혁신학교 명단이 최근 발표됐다(광양초, 덕수초, 세화중, 제주중앙고, 저청초·중).

진정 행복해지고 싶은 학생들과 배움 다운 배움을 가르치고 싶은 교사들의 오랜 바람이 거대한 회오리를 만들면서 제주 공교육은 이미, 변화의 항해를 시작했다. <끝>

<미디어제주 김형훈·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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