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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으로 시작된 평화의 기적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으로 시작된 평화의 기적
  • 조보영 기자
  • 승인 2015.12.20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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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운동을 통해 인생의 목표와 꿈이 달라졌어요”
[인터뷰] 평화나비 대표 이민경 씨·기획팀장 김광철 씨
평화비 제막을 하루 앞두고 공사중인 방일리공원. 오른쪽이 교육공동체 꿈틀 회장을 맡고 있는 김광철씨다.

“아, 좀. 살살 합시다!”

빠르게 움직이는 포크레인 소리를 뚫고 다소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순간 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경직되고 말았다. 그제야 포크레인은 제 속도를 찾고 육중한 무게의 대리석을 천천히 끌어올렸다. 허나 이미 깨어져나간 대리석의 모퉁이는 되돌릴 길이 없다.

“정말 화가 났어요. 5000원씩 1만원씩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평화비를 세우기 위해 십시일반 해줬는데…, 어렵게 모아서 완성된 정성이 깨어진 조각처럼 떨어져나간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만….”

대학생 단체인 평화나비의 기획팀장이자 교육공동체 꿈틀 회장 김광철씨(제주대 사회교육학과 4학년)의 이유 있는 변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생이 세우는 평화비’ 제막식이 하루 전날이기에 그의 심정이 바짝 타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초 추진위 결성을 시작으로 해를 넘기기 전에 그 결실을 이루게 됐지만 끝까지 긴장감을 놓아서는 안된다. 많은 이들의 관심이 이루어낸 결과인 만큼 작은 것 하나라도 허투루 넘길 수가 없었다.

광철 씨가 동분서주하며 현장 심부름꾼을 자청하는 사이 평화나비 대표 이민경씨(제주대 사회교육학과 4학년)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네고 있다. 참으로 죽이 척척 들어맞는 팀플레이다. 1년 6개월 전만해도 민경씨와 광철씨는 서로의 이름만 아는 정도의 데면데면한 선후배 사이였다.

그즈음 광철 씨는 우연히 SNS를 통해 ‘서울 평화나비 페스타’에 참여하게 됐다. 그리고 일본인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알게 됐다. 임신을 한 소녀의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내는 등의 처참한 실상을 들으며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할머니들의 아픔이 다가온 것이다. 당장 무슨 일이든 해야 될 것 같았다. 그때 떠오른 사람이 민경 씨였다.

“처음 오빠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었어요. 제가 위안부 할머니 기금 마련을 위한 나비배지 달기 운동에 참여한 사진을 SNS에 올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오빠가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제 사진이 떠올랐나봐요. 뜬금없이 밥 한번 먹자는 전화를 걸어온 거예요. 그때가 2014년 8월이었어요.”

당시 민경 씨는 지쳐있는 상태였다. 자기표현을 주저하지 않는 성격 탓에 자연스럽게 관계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는 상황에 광철 씨의 전화를 받게 됐다. 순간 이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들떠 광철 씨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후 7명의 회원을 주축으로 하는 대학생 연대가 결성됐다. 민경 씨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평화나비 이민경씨(왼쪽)와 김광철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모임이 만들어지고 많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올해 초 평화비 건립을 위한 거리 행진과 콘서트를 시작으로 홍보 캠페인도 꾸준히 전개했고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촛불문화제도 두 번이나 열었어요. 게다가 ‘대학생이 세우는 평화비’ 제막식까지.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한 게 겨울이었는데 어느 새 또다시 겨울이 찾아왔더라구요.”

어려움도 많았다. 학생이란 신분의 가장 큰 벽은 경제력이었다. 서울 행사에 참여할 일이 생기면 남학생들이 막노동을 하거나 같이 밭일을 해서 교통비를 벌었다. 공장에서 야간 근무를 하면서 활동비를 충당하기도 했다. 모두가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

고생은 잠시. 그보다 더 큰 보람이 뒤따랐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는 법을 배웠다. 민경 씨와 광철 씨 모두 사회 운동을 통해 인생의 목표와 꿈이 달라졌다. 둘 다 선생님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사범대에 진학했지만 임용고시의 꿈은 접은 상태다.

“처음 사회 운동에 눈을 뜬 건 세월호 사건이었어요.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니까 우리가 바꾸는게 맞는 거죠. 교육 운동을 하면서 교육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어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그 의식을 행동으로 이어나가야지만 세상도, 교육도 변화될 것이라고 믿어요.”

광철 씨는 현재 보물섬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대안 교육을 가르치고 있다. 제도권을 벗어난 교육 공동체에서 세상을 바꾸는 즐거운 실험을 진행 중이다. 민경 씨 역시 전공인 지리교육이 아닌 다른 전공으로의 유학 생활을 고민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역사적·민족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기 보다는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성학이나 사회학으로 보면 일본이 인간의 인권을 유린하고 존엄성을 훼손한 문제라는 것이 명백해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페미니즘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어요. 내년 여름 즈음 유학을 갈 생각예요.”

다음 날인 19일, 제주도 최초이자 대학생이 세우는 전국 두 번째 평화비가 방일리 평화공원에 세워졌다. 위안부 문제를 처음 세상에 내놓게 된 이곳 제주 땅의 대학생들이 소녀상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것이다. 민경 씨는 이 날 행사를 끝으로 평화나비 대표직을 내려놓게 됐다.

평화의 소녀상 얼굴을 쓰다듬으며 감회에 젖은 이민경씨.

여느 때와 같이 민경 씨는 씩씩하고 밝은 모습으로 행사를 이끌었다. 광철 씨 역시 무대 안팎을 구석구석 누비며 최선을 다해 이날 행사를 도왔다. 다른 평화 나비 구성원들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면서 ‘대학생이 세우는 제주 평화비 제막식’은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혼자는 미약하지만 그 존재들이 뭉치면 위대한 일이 벌어진다. 평화의 기적은 작은 나비들의 날갯짓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모처럼 불어온 12월의 순풍에 소녀상의 머리카락이 살랑이고, 종이 노랑나비에는 곤충이 날아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는 평화로운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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