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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들의 고민과 즐거움이 여기 담겼어요”
“중학생들의 고민과 즐거움이 여기 담겼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12.1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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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중 창작반 학생들 글모음 ‘십대로 산다는 것’ 펴내
 

“이번에는 1교시부터 시험이다./민방위 훈련 때문에/시간표가 엉망이다.//1교시 시험이 끝나고/2교시 시험이 끝나고/4교시 시험이 끝났다.//이제 남은 건 7교시/과학시험이다./점심을 먹고 하늘을 보니/아직도 푸르게 빛나고 있다.//어제처럼 점수가 잘 나오기를/두 손 모아 기도한다.//하지만 나에게 보인/내 점수는 충격적이다./하늘이 빛났던 것이/나를 조롱하던 것이었나 보다.” (무릉중 고지완 학생의 ‘시험’ 중 일부)

고달프다. 모든 게 쉽지 않다.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기까지를 흔히 ‘통과의례’라는데 통과의례로 향하기까지가 무척이나 힘들다. 특히 제주에 사는 중학생들에겐.

그런데 시험은 끝나질 않는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또 시험이다.

“흰 종이에 검정 글씨/검정 글씨 사이에는 삐뚤삐뚤한 내 글씨/맨 위에는 빨간 100점//나는 오늘 시험 100점/가족들이 좋아할거야//엄마가 잘했다며 닭튀김 시켜먹자.(중략)//닭튀김을 먹으려 하는 순간 모두의 손은 닭 날개//날개는 두 개뿐인데/오늘은 내가 100점, 내가 먹을래/엄마가 시켰으니 엄마가 먹을래/아빠는 일 갔다 오느라 지쳤으니 아빠가 먹을래/동생은 내가 막내니까 내가 먹을래/형은 다 내꺼야 내가 다 먹을래//나는 오늘도 닭 날개를 못 먹는 걸까?” (무릉중 배연미 학생의 ‘닭튀김’ 중 일부)

시험을 잘 보면 가족들이 좋아라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자신에게 뭔가 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하지만 100점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건 아니다.

그렇다. 사는 게 그렇다. 인간으로 산다는 게 다 그렇다. 그런데 10대로 사는 건 더 그렇지 않느냐고 묻는다. 앞의 두 시에서 봤듯 무릉중학교 학생들이 그런 말을 한다.

무릉중 학생들이 <무릉 선비들의 작품집-십대로 산다는 건>이라는 시집을 내놓았다. 거창한 작품집은 아니지만 올해 학기초부터 써 온 글들을 다듬어 최근 펴냈다. 이 시집에 글을 올린 학생들은 모두 12명. 작은 학교이기에 학생들의 숫자는 많지 않지만 제주도내 여느 중학생들이 느끼는 감정은 그대로 닮았다.

봄이면 무릉중은 창작반을 모집, 글쓰기 모드로 돌입한다. 책을 구입하다가 서로 돌려가며 읽기도 한다. <십대로 산다는 건> 그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학생들을 지도한 장훈 교사는 편집후기를 통해 글 쓴 개개 학생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어떤 학생에게서는 순수함을, 또다른 학생은 너무 복잡했다는 사실도 털어놨다. 그래도 즐거웠단다. 장훈 교사는 “인쇄하고, 얼굴 맞대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시간이 많았다. 그래도 작품집을 아이들 품에 안겼다”고 기뻐했다.

내년 새학기도 무릉중은 창작반을 모집할테지. 어쩌면 다음과 같은 설렘으로.

“방학이 끝난 후/학교에 가면/나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댄다./학교에 아이들이/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고/딩동-뎅동-/시작을 알리는 종과 함께/개학식이 시작된다.” (무릉중 전가연 학생의 ‘시작’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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