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3-01 10:28 (금)
"작은 다짐, 완전한 4.3해결 밑거름"
"작은 다짐, 완전한 4.3해결 밑거름"
  • 문상식 기자
  • 승인 2006.11.06 00: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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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②]4.3도민연대, 2006 전국 4.3유적지 순례
결의문 채택, "진상조사권한 명시한 4.3특별법 개정 요구"

"국가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제주4.3 영령들이시여~,
완전한 4.3 해결의 그 날까지 모든 노력을 다하겠나이다
죽어서도 잊지 못 할 한(恨) 푸옵시고, 영면하옵소서"

완전한 4.3해결을 위한 2006 전국 4.3 유적지 순례에 나선 순례단은 정해진 1박2일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진상규명과 진상보고서 작성, 진상조사권한을 명시한 4.3특별법 개정을 강력히 촉구하는 데 입을 모았다.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공동대표 김평담 김용범 고창후 윤춘광 양동윤)는 '완전한 4.3해결을 위한 2006 전국 4.3유적지 순례 및 목포형무소 수형 4.3희생자를 위한 진혼제를 가졌다.

지난 4일 첫 일정으로 목포형무소 수형 4.3 희생자를 위한 진혼제를 통해 4.3영령들을 위로한 순례단은 이틀째인 5일, 이미 알려진 목포형무소 외에 동목포역전 집단매장지를 비롯해 목포경찰서 뒤 학살매장, 1949년 한센인 거주지, 광주 5.18 민주화기념공원 등을 돌아봤다.

순례는 김종혁 4.3도민연대 운영위원의 설명속에 진행됐다. 김 운영위원은 추가로 확인된 매장지 등을 순례단과 함께 돌아보며 설명해줌으로써 순례단의 이해를 도왔다.

#동목포역전 집단 매장지 등 1949년 목포시내 학살 장소 추가 확인

먼저 순례단은 동목포역전 매장지를 찾았다. 이 곳은 목포시 용당1동 1187-22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현재는 어린이집이 들어서 있어 당시 끔찍한 일이 벌어진 곳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동목포역전 매장지는 1949년 9월 탈옥사건 당시에는 동목포역전 근방의 둠벙(습지)이었으나 지역주민의 말로는 시내 곳곳에서 50여구의 시체를 옮겨와 이 곳에 묻었다고 한다.그러나 이후 유골을 발굴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으며, 주택가가 들어서면서 지형의 변화가 많아 정확한 장소 확인이 어려운 곳이다.

이어 순례단은 목포시 용해동 34번지 교회가 들어서 있는 목포경찰서 뒤 학살매장지를 찾았다. 김 운영위원은 "지역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이 곳에는 목포형무소를 탈옥한 7명이 매장되어 있다"며 "그 사람들에게 삽을 주고 구덩이를 파게 한 후 총살을 시켰다"고 설명했다.

1949년 당시와 지형이 바뀌지 않아 정확한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곳이지만, 매장된 7명이 4.3관련 희생자들인지에 대한 여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는 곳이다.

순례단은 계속해서 1949년 당시 한센인 거주지를 찾았다. 지금은 개 사육장이 들어서 있는 이 곳은 한센인 30여명이 움막을 짓고 살고 있었는데, 1949년 9월 목포형무소 탈옥사건 당시 탈주자들에게 옷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모두 사살되었다고 한다.

#1949년 당시 한센인 거주지..."지금도 심심찮게 사람의 뼈 발견해"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최귀단씨(58.목포시 용해동)는 순례단을 만난 자리에서 "1949년 9월 탈옥사건 당시 아버지가 한센인들을 사살하는 것을 목격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어렸을적부터 아버지에게 이 곳(한센인 거주지) 집단 사살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지금도 근처를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의 뼈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으로 순례단이 찾은 곳은 내화촌 위 구룻마 잔등. 이 곳은 1949년 탈옥사건 당시 많은 시신이 묻힌 곳이라고 한다. 지역주민 말로는 그 때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도 셀 수 없이 사람들이 묻혔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좌익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평생 통일운동에 헌신한 고성화 선생은 "인간 생활을 하면서 지난 과거를 회상하는 것 또한 올바른 인생이라 생각하다"며 "우리는 제주 4.3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며, 정부는 4.3에 대한 적극적인 해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석지 제주대학교 교수는 "완전한 4.3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살아남아 있는 자가 최소한 해야 할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우리의 작은 다짐을 시작으로 완전한 4.3해결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고 말했다.

목포 희생지역 순례를 마친 순례단은 이어 광주 5.18 민주화공원과 망월동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순례단 일동, "진상조사권한 명시한 4.3특별법 개정 요구"

5.18 묘역 순례를 끝으로 1박2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한 순례단은 '완전한 4.3해결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순례단 일동은 결의문을 통해 "국가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제주4.3관련 목포형무소 재소 희생자들의 흔적을 다시 확인했다"며 "아직까지도 생사여부조차 규명되지 않은 엄연한 4.3의 실체를 목도하고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순례단 일동은 그러면서 "우리는 이번 목포형무소 터와 목포형무소 재소 중 희생지역의 순례를 통해 아직도 4.3의 진상이 전혀 규명되지 않았음을 명백히 확인했다"며 "정부는 목포형무소와 목포형무소 재소 중 희생지역을 포함한 전국의 형무소 재소 중 희생에 대해 시급히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국회는 지난 9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법안심사위원회를 통과한 '4.3특별법 개정안'은 다시 검토해, 목포형무소를 포함한 전국 형무소 재소 중 희생자에 대한 진상을 규명할 수 있도록 진상규명 조항을 포함해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순례단 일동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진상규명과 진상보고서 작성, 진상조사권한을 명시한 4.3특별법 개정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우리의 요구는 올바른 4.3역사 정립을 위해 꼭 필요한 요구이며, 완전한 4.3해결의 그 날까지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완전한 4.3 해결, 결코 짧은 시간에 이뤄질 일도, 그 날을 기다린다고만 해서 될 일도 아닐 것이다. 우리, 제주도민의 하나되는 마음을 모아 완전한 4.3 해결을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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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사람들 2006-11-06 23:49:33
4월3일만 그들의 영령을 위로했던것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기사 자주 봤으면합니다. 그리고 역사를 바로세우기위해 일하시는 분들 참으로 수고가많습니다.
추운날 기자님 고생많으셨겠습니다.
앞으로 더좋은 기사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