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장수설화를 분석한 결과, ‘거식성’이 ‘거인성’이라는 화소보다 힘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현정 제주학연구소 연구원은 20일 2015 탐라학당 가을 인문학 강좌 세 번째 강의로 마련된 ‘제주도 장수설화에 나타난 제주인의 의식세계’ 강의에서 “‘거인’이라는 요소는 신화에서 주로 나타나기 때문에 설화에 들어올 수는 있지만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설화에 많이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현정 연구원은 “지금까지 연구 결과를 보면 이 장수설화를 비극과 결핍이라는 요소에만 주목해 ‘먹고 살기 힘든 제주’라는 점만 부각시켜 왔다”며 실제 27개 장수설화를 분석해본 결과 긍정적인 결말이 22개로 훨씬 많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이 연구원은 이 ‘거식성’이 제주의 원초적인 신화인 당신본풀이의 중요한 모티브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제주도 당 신앙의 모태로 알려진 ‘송당본풀이’를 포함해 많은 각편들이 이 화소를 포함한다”면서 “이 때 ‘거식성’은 신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 즉 신격의 영웅성을 나타낸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그는 “제주의 장수설화 유형들을 하나라 꿰뚫는 것이 ‘기아(가난)’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면서 “이는 ‘거식성’이라는 새로운 화소가 중새 이념이 곁들여지기 전의 모습을 1983년에 채록된 장수설화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놀라우리만치 견고한 제주인의 설화적 인식이 거둔 성과”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그는 “제주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쉽게 버리지 않는 문화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면서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켜 받아들이는 제주는 한국사회가 궁리해야 할 문화적 대안”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자기 것이 없으면 남의 것에 종속되지만, 자기 것을 갖고 있으면 남의 것을 취사선택해 좀 더 강하고 아름답고, 새로운 자기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는 “지역의 서열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아니며, 이런 상황에서 많은 지역들이 자신들의 지역문화를 바르게 세우고 가꿔나갈 정신적, 인적, 물적 인프라를 조성하지 못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견고하고도 유동적이었던 제주인의 설화적 인식은 명백한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홍석준 기자 / 저작권자 ⓒ 미디어제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