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라는 두 글자. 뭐가 떠오르나요. 낭만? 그럴 수 있겠네요. 요즘 제주가 그야말로 ‘핫’한 곳이잖아요. 너무 ‘핫’하다 보니 제가 밟고 있는 이 땅이 정말 제주도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경우가 너무 많긴 하죠. 하여튼 제주바다를 찾는 이들은 낭만을 그리려고 왔겠죠. 여기저기 널린 카페와 그 카페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을 보세요. 카페와 마주한 바다풍경을 헤매는 이들을 보세요. 그들은 뭣 모르고 제주바다에 취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제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그런 카페 풍경이 마냥 멋스러워 보이는 건 아닙니다. 카페라는 문화가 새로운 풍속인 건 분명하지만 그건 ‘진짜 제주’라는 환경을 파괴한 위에 지어진 것 아니고 뭐겠어요.
수십 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볼게요. 제주도 사람들은 수영을 못하는 이들이 없어요. 바다라는 환경이 만들어준 선물이기도 합니다. 제주도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바다와 친숙해요. 정통 수영법은 배우지 않았지만 물개가 따로 없어요. 게중에 간혹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있긴 하죠. 제가 그렇거든요. 왜 수영을 하지 못하게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답니다. 확실한 건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죠. 부모님이 바다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는지, 스스로 바다에 들어가는 걸 거부했는지 둘 중의 하나겠죠.
제가 바다를 응시하는 사이에 다른 이들은 바다를 헤집고 다닙니다. 바다를 헤집고 다니는 이들은 누구일까요? ‘바다의 어머니’라고 하면 알겠죠. 바로 스스로를 좀녀, 좀녜, 좀수라고 부르는 해녀들입니다.
그런 제주해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많이 바뀌었답니다. 제주해녀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하자며 문화재 대접까지 받고 있죠. 그러나 예전엔 그렇지 못했답니다. 다들 천하게 여기는 직업군이었죠. 제주해녀는 현재 4000명을 좀 웃돕니다. 그들의 절반이상은 70을 훌쩍 넘긴 이들입니다. 1950년대엔 제주해녀가 2만3000명에 달했던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할 만하겠죠.
그런데 왜 제주해녀는 줄고 있을까요. 시대변화도 그렇지만 해녀라는 천한 직업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어머니들은 없었거든요. 지금이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하지만 이젠 아무도 하려는 이들이 없는데 어찌하나요.
허영선의 동화 <애기해녀 옥랑이 미역 따러 독도가요>는 독도로 바깥물질을 떠난 해녀들의 이야기를 옥랑의 시선으로 말하고 있어요. 지난 8월 출간된 이 동화를 쓴 허영선씨는 개인적으로 언론사 선배이기도 해요. 그 선배에게 ‘김형훈의 동화속 아이들’에 소개하겠다고 하고선 허풍만 떨다가 이제야 글을 올립니다.
이 동화는 제주에 해녀가 아주 많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제주해녀가 2만명을 넘기던 1950년대 이야기거든요. 당시 제주해녀는 제주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어요. 일제강점기이후 제주해녀들이 바깥물질로 벌어들인 수익은 어마어마했어요. 그런 바깥물질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해안가를 가면 어디서든 제주해녀들을 쉽게 볼 수 있답니다.
동화에 등장하는 옥랑이는 물질하던 친구와 언니들이랑 바깥물질을 처음 나섭니다. 연락선을 타고 부산에 간 뒤 다시 울릉도로 건너갑니다. 울릉도에서 다시 통통배를 타고 독도로 향하죠.
그런데 애기해녀인 옥랑이는 왜 물질을 배워야 할까요. 재미요? 아니랍니다. 낭만요? 그런 건 바랄 수도 없죠.
옥랑이 엄마가 그랬어요. 옥랑이를 바다에 데리고 가서 물질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을 했답니다.
“옥랑아, 물질 배워야 먹고 산다. 숨 꾹 참고 바당 돌멩이 하나, 모래 한 줌이라도 건져봐라.”
옥랑이가 물질을 배운 이유는 옥랑의 어머니가 한 말 속에 담겨 있어요. 먹고 살기 위해서 물질을 배워야 했고, 해녀라는 직업을 가진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당시엔 직업을 고르기보다는 제주여성이라면 으레 식솔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물질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죠. 어린 나이에 독도라는 곳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가야만 했던 이유는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죠.
그렇게 독도로 바깥물질을 다니던 어린 옥랑이는 이젠 할머니가 됐어요. 어린 옥랑이랑 독도로 바깥물질을 함께 나섰던 이들 가운데는 세상과 이별한 이들도 많답니다. 할머니가 된 옥랑이는 지금도 바다를 바라봅니다. 멋스러워서 바라본다고요? 아닙니다. 바다는 고향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바다에 들어갑니다. 그냥 바다가 부르길래 바다로 향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다는 옥랑이 할머니의 고향이며, 제주사람들의 고향인 것이죠. 제게도 바다는 고향입니다. 단지 옥랑이와 같은 해녀와 다른 점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고 멀리서만 바다를 응시하는 것이겠죠.
제겐 두 딸이 있어요. 그 애들이 1950년대 살았다면 해녀가 됐을 가능성이 많겠죠. 우리 두 딸은 해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너희들은 해녀가 돼서 물질 할 수 있겠니?”
“아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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