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어릴 적에
  • 홍기확
  • 승인 2015.09.14 11: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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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101>

『어릴 적에』

                                                    홍기확

나는 어릴 적에 비둘기가 제일 무서운 줄 알았습니다.
그 거친 날개 짓과 섬뜩한 깃털의 윤기는 진정 두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크고 나니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라고 해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릴 적에 우리 집 사과나무가 제일 아름답고 큰 줄 알았습니다.
큰 것 한그루 작은 것 한 그루.
조그만 나보다 더 큰 키는 진정 찬란함이었습니다.
하지만 크고 나니 우리 집 사과나무보다 더 큰 나무를 보면서 내 기억이 초라해짐을 느꼈습니다.

나는 어릴 적에 아버지가 제일 위대하고 멋진 줄 알았습니다.
올려다볼 때 보이는 그의 수염, 멋들어진 근육들이 진정 자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크고 나니 나보다 작아진 키와 힘겨운 근육들에 너무나 미안합니다.

이제는 커버렸습니다. 어릴 적의 나를 점점 지워가면서.
꿈을 꾸고 꿈을 잃는 반복 속에 나의 어린 시절은 지나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그 미소를 되찾으려 합니다.
진실어린 고백과 수많은 반성들로, 내 어릴 적의 순수함으로.
가녀렸던 내 어깨위에 살며시 올려놨던 꿈들 속으로.


 이 시를 쓴 때는 2000년. 고단한 군대 생활을 이기게 해 준 것은 아내와 주고받는 편지와 더불어 시를 쓰는 일이었다. 군대에서만 시집 두 권을 쓰고 전역을 했으니, 나름 다작(多作)을 한 셈이다.
 지금 읽어보면 유치(幼稚)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원래 사람이 태어나면 유치한 시절이 있어야 어른이 된다. 부처님처럼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유아독존을 하늘을 향해 외치는 경우는 없다.

 비둘기.
 아이에서 어른으로 세상이 나를 만들어간 ‘사회화’의 표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웠지만, 언젠가부터 세상은 나를 사회화를 통해 길들였다. 지금은 무섭지 않다.

 순수함을 잃게 만드는 세상의 사회화가 싫다.

 사과나무.
 전교 1등. 일진. 동양 최대. 세계 최고. 은하계 제일. 우주 최강.
 크고 높고 정점에 있는 게 좋다는 것을 아이 때 배웠다. 아니 자주 주워들었다. 집에 키우던 앙상한 가지를 가진 ‘비교적’ 높은 사과나무는 점점 어른이 되며 기억에서 초라해진다.

 어쩌면 나는 세상과의 비교에 익숙해져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아버지.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늙고 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자랐다.
 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나 역시 늙고 있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란다.
 아버지와 아이의 관계란 인류의 탄생이후 여전하다.

 아이는 아버지의 세월을 먹고 자란다.

 오래된 내 시집을 펼쳐보며 그 때 꾸었던 꿈들을 생각한다. 솔직히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어릴 적보다는 두려움이 없어졌다. 어릴 적보다 시야가 넓어져 내 스스로의 깜냥과 초라함을 알게 되었다. 다 크고 나니 늙어가는 일만 남았다. 이제는 우유를 먹어도 키조차 크지 않는다.

 내 아이는 최근 급성장을 한 모양이다. 한글전용 세대에 가까운 녀석인데도, 이제 말의 50%는 한자어로 된 단어들을 마구마구 섞어서 나를 놀라게 한다. 말의 논리가 정교해지고, 말빨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나와 각종 협상을 함에도 꿀리지 않는다. 수학시험도 0점에서 30점에서, 최근에는 90점을 맞았다며 이제 수학천재라며 나를 무시한다.

 아이가 빨리 자란다는 것은 내가 빨리 늙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부자(父子)라는 관계는 애초부터 조금은 서글픈 운명을 갖고 있다.
 
 아이는 이제야 비로소 꿈을 꾸는 모양새다. 나를 포함해 주변에서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위축되었던 녀석이 팔팔거리며 모든 것에 사기가 충천이다. 미소와 수다가 부활했다. 아직은 가녀린 아이의 어깨에 꿈 한 송이가 살포시 놓인 것이 보인다.

‘이제는 커버렸습니다. 어릴 적의 나를 점점 지워가면서.
꿈을 꾸고 꿈을 잃는 반복 속에 나의 어린 시절은 지나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커가며 어릴 적의 나는 점점 잊혀 간다. 꿈을 꾸고 꿈을 잃다가 내 어린 시절은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그러다가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 어릴 적 꿈들은 기억조차 나지 않고, 키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분명 어린 시절은 지나갔다.

‘이제 그 미소를 되찾으려 합니다.
진실어린 고백과 수많은 반성들로, 내 어릴 적의 순수함으로.
가녀렸던 내 어깨위에 살며시 올려놨던 꿈들 속으로.’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을 지나왔다. 지나간 길은 진실어린 고백과 수많은 반성을 통해 다시 다녀올 수 있다. 한번 지나간 길이라 지금 떠나면 낯설겠지만, 헤매더라도 못 찾을 길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아내는 최근 화를 자주 내고 아이를 혼내는 나에게 뜬금없이 말한다.

 “딸은 평생의 롤모델이 부모가 아닌 이모, 삼촌, 연예인 등이 될 수 있지만, 아들은 평생의 롤모델이 무조건 자기 아빠래. 그리고 감성우뇌형 아이는 혼내는 것보다는 칭찬이 효과적이래.”

 언제나 그렇듯 아내는 그 때 그 때 정황에 따라 이렇게 간접화법으로 돌려 말한다. 무슨 육아관련 책을 읽더니만 우리 아이는 감성우뇌형이니, 어쩌구 저쩌구하는 방법으로 키워야 한다고 요란하다. 어쨌든 요지는 나보고 앞으로 알아서 잘 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아이의 롤모델이 나라면, 내가 꿈을 꾸어야 아이도 꿈을 꿀 것이다. 내가 순수해야만 아이도 순수하게 자랄 것이다. 내가 고백하고 반성하는 삶을 살아야 아이도 깊숙한 삶의 여백을 얻을 것이다.
 이처럼 아이는 내 꿈을 먹으며, 내 고백을 들으며, 내 삶의 공간을 엿보며 어른이 될 것이다.

 나는 아이가 가질 삶의 여백을 이렇게 만들어간다.
 아이가 자라 삶의 여백을 하나둘 채워갈 때,
 아버지가 채웠던 삶의 조각들을 참고서로 보길 바란다.
 그리고 아버지가 다 늙어서 없을 때를 위해 이렇게 글로 남긴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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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부자 2015-09-24 16:31:05
급성장하는 아이와 함께 부모도 급성장 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앞으로도 글을 읽으며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