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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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기확
  • 승인 2015.09.03 10: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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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99>

 할머니는 수의를 일찌감치 몸소 마련하셨다. 자녀들의 상복도 죽음을 인지하셨는지 미리 준비하셨다. 한땀한땀 평생의 바느질을 모았다. 결과물은 낡은 장롱 속 가장 깊은 밑바닥에 깔렸다.
 바느질을 잘 하셨다. 주워온 옷들을 수선해 자녀들과 손주들에게 선물했다. 이들은 촌스럽다며 손사래를 쳤다. 말해줄걸 그랬다.
 비록 가져가서 버리더라도 옷에 얹은 정(情)이라도 가져가지.

 할머니와 어렸을 적부터 같이 잤다. 돌아가시면 어찌 사나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미련하게 산다. 문득 꿈에 나타날 때도 있다. 그 날은 조심조심 하루를 산다.
 40여년의 나이차.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지금 내 즈음의 나이였다. 야마다 에이미의 표현을 빌리면, 사십 살이란 나이는 어렸을 적에는 많은 나이지만 막상 사십 살이 되고 보면 젊은 나이다.
 할머니 나이 즈음엔 아마 주변 사람들을 많이도 떠나보냈을 것이다. 지금은 내가 그럴 즈음의 나이다. 저 멀리 기억은 떠나는 사람과 함께 더 멀리 간다.
 가족과 친지들이 나이 드는 것을 보는 일이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어릴 적에 나이를 먹는 다는 건 흰머리만 늘면 그 뿐이라 여겼는데!

 분명 젊은 나이다.
 하지만 세월이 보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지구에 사는 여자들 전부에게 할머니라 부르지 않는다. 할머니라는 고유명사를 포기하고, 누구에게나 할머니라고 부르는 일반명사화 행위는 죄악에 가깝다.
 아마도 어머니,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할 때를 미리 대비하는 건 아닌가 싶다. 나는 이렇듯 쓸데없는 고집이 몇 개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 형제들은 더 이상 우리 집에 올 이유가 없어졌다. 이유가 없는데 이유를 대라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아버지의 동생들은 할머니가 한땀한땀 손수 만든 형제자매라는 실타래를 한올한올 풀어 헤쳤다.
 우스운 일이다. 이제 맞이인 아버지가 할머니의 나이를 향해 가고 있다. 실타래는 결국 다시금 돌돌 말린다. 철없던 동생들은 피냄새를 맡고 혈연(血緣)을 찾아 모인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실을 끊는 걸 본 적이 없다. 다만 두 개의 실을 묶거나 나에게 바늘귀에 실을 넣어달라는 주문들만이 기억날 뿐.

 세월이 보챈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철이 지나치게 들면 별로다.

 우리는 평생 살면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사람을 10만 명 정도 만난다고 한다. 살짝 인사하고, 악수하고, 옷깃을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 만남을 지속하고 만남을 스치며 끝낸다. 나 역시 많은 실타래를 풀었다가 말았다.
 
 항상 고민이다.
 어떤 실타래를 풀어야 하고, 어떤 실타래를 말아야 할까?
 손은 두 개밖에 없어 많은 실타래를 풀고 말기 힘들고, 발은 두 개나 있으나 실타래를 쥐기에도 쓸모가 없는 녀석인데.

 아마도 할머니는 내 나이 때 즈음에 수많은 실타래를 말았을 것이다. 나 역시 해답을 미루고 할머니의 그때처럼 우직하게 실타래를 말아야겠다.

 아마도 할머니는 수의와 상복을 만들며 그때야 비로소 인생과 인연의 실타래를 풀었을 것이다. 나 역시 숙제를 미루고 할머니의 그때에 실타래를 풀어야겠다.

 

<프로필>
2004~2005 : (주)빙그레 근무
2006~2007 : 경기도 파주시 근무
2008~2009 : 경기도 고양시 근무
2010 : 국방부 근무
2010년 8월 : 제주도 정착
2010~현재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근무
수필가(현대문예 등단, 2013년)
서귀포시청 공무원 밴드 『메아리』회장 (악기 : 드럼)
저서 : 『평범한 아빠의 특별한 감동』,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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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2015-09-08 11:40:04
좋은 수필 잘 읽고 오늘도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음 수필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