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도심동서로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큰 길…1990년대까지 칠성로와 더불어 ‘제주경제 양대 동맥’
제주시 ‘원도심’은 ‘제주성’을 바탕으로 한 제주지역 지리·역사적 근원지이자 중심이다. 이곳은 제주 과거와 현실이 함께 포개진 역사문화공간이다. 삶의 궤적을 담고 있는 도시공간이며 생활공간이다. 원도심의 동맥은 ‘옛길’을 중심으로 이어져 있다. <미디어제주>는 제주시 ‘원도심’을 중심으로 한 ‘옛길’을 취재, 역사·지리·건물·상권·문화·인물 등 삶과 기억의 궤적을 살펴보려한다. 이를 통해 제주 원도심 위상과 정체성을 드러내고 재생과 미래설계를 찾아보려 한다. <편집자주>
# 교통·금융·병의원·약국 중심, 일제 강점기부터 뿌리 내려
일제 때 자동차가 본도에 첫 선을 뵈면서 일본인 항이하라(萩原)씨가 관덕정 옆 남쪽 길 건너에 제주자동차부(濟州自動車部·나중에 신진관광 자리)를 만들어 시외정기버스를 운행했다. 뒤에 박이혁(朴離爀)씨가 경영하게 된다.
당시 이 회사는 ‘제주성내~성산포간 매일 4회 왕복 운행, 대절하면 도일주, 택시 시내운행,특럭 임대 등을 했다. 제주에서 유일한 서민 교통수단으로 한 몫을 한 셈이다.
나중에 박이혁 씨는 현재 조일약국 동쪽 일대에 동부차부(東部車部)를, 관덕정 부근엔 서부차부(西部車部)를 만들어 4인승 포드자동차 등 승용차를 수입해 영업하다 화물자동차까지 취급했다.
관덕로 금융가는 일제 강점기부터 꾸준히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관덕정 앞 현재 제주시농협 관덕로지점 자리는 일제 당시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제주지점(1918년10월1일.제주면3도리71번지.자본금 1천만圓)이 들어섰던 곳이다.
그 자리엔 광복 뒤 제일은행에 이어 국민상호신용금고가 자리했다.
일제 때 조선식산은행 동쪽으로 늘어선 주요 상가를 보면 사카야여관(佐賀屋旅館)에 이어 양과자·빵 등을 팔았던 김택만상점(金澤滿商店)이 있었다.
그 옆에 주단·면포 등을 팔았던 이학형상점(李學珩商店·2층집), 직수출입무역을 했던 다이와상회(大和상회), 주류 판매점이었던 백낙흠상점(白樂欽商店· 뒤에 중앙약국자리) 등이 있었다.
한짓골(남문로)입구를 길 건너 동성약방, 하시구찌약방(橋口藥房·현 우생당 자리)에 이어 직수입무역을 했던 박종실상점(朴宗實商店·현 KDB산업은행제주지점과 외환은행제주지점자리, 옛 신한은행제주지점 자리)이 문을 열었다.
1905년 잡화상으로 출발한 박종실씨는 당시 제주지역에서 대표적인 상공인으로 성장했다.
1915년11월30일 제주시일도리9통10호에서 잡화·견면포·철물류 영업소를 한다고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 상호등기를 했다.(조선총독부 관보 가운데 「濟州錄」에서).
박 씨는 1935년 제주상공인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해 민간단체로 조직된 제주상공회(濟州商工會) 회장을 맡았다. 이 단체는 현 제주상공회의소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1940년대엔 제주도생활필수품상업조합을 만들어 조합장에, 1950년엔 제주잡화상동업조합을 창립하기도 했다.
도내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박종실상점은 홍종언·고창현·고병효씨 등 해방 뒤 제주경제계에서 한 몫을 하는 인물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관덕로에서 칠성로 입구쪽엔 자전거와 부속품을 도매했던 제등자동차상점(齊藤自動車商店·대표 康源弼·옛 인성약국 자리, 1977년 관덕로 확장공사로 건물이 없어짐), 평양옥(平壤屋·뒤에 함흥면옥) 등이 있었다.
현재 우리은행 제주지점 자리는 일제 때 목포무진(木浦無盡)주식회사가, 광복 뒤엔 한일은행제주지점이 있었다.
직수출입무역상이었던 제주상사주식회사(濟州商事株式會社)가 현 제주은행 앞 금강제화 자리 부근 (옛 명전사→호남당 자리,), 주소는 제주도성내 원정 2정목(濟州島城內 元町 二丁目)에 있었다.
이 회사는 경영자가 모두 4명으로, 한국인 박종실(朴宗實)·고창현(高昌炫)과 일본인 角健輔·古賀龜太郞등이었다.
이 회사 영업품목은 사탕·밀가루·소주·맥주·물엿·쌀·잡곡·인견면사포(人絹綿絲布)·석유·성냥·비료·잡화 등 다양했다.
제주화물자동차부(濟州貨物自動車部)와 김해철공소(金海鐵工所)가 현 조일약국과 SC은행제주지점(옛 제일은행제주지점 자리)에 있었다.
# 금융중심지 전통 이어져…다양한 업종 자리잡아
관덕로가 칠성로와 더불어 일제 때부터 1990년대까지 ‘제주경제 양대 동맥’으로 이어진 건 공공기관·주택가와 인접해 있었고, 길 너비가 다른 곳보다 넓었다는 점, 업종 면에서 다양성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관덕로가 금융가가 된 건 공공기관이 많았고, 지리적으로 동쪽으론 동문로터리와 동문상설시장이, 서쪽엔 서문로와 서문상설시장이 자리한 사이를 잇는 중요 길목이란 점이다.
게다가 관덕로는 제주 제1상권지인 칠성로 서쪽 입구인데다. 1970년에 뚫린 중앙로 권역과 연계가 되고 있다.
1990년대까지 관덕로에 분포한 건물은 금융기관, 전자제품판매점, 약국, 병원, 의류판매점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지게 권역화한 업종은 금융점포이다.
제1금융권인 한일·외환·신한·제주은행 등을 비롯해, 제2금융권인 상호신용금고·투자신탁, 투자증권, 각종 보험회사 제주지점 등이 대부분 이곳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과거 ‘관가1번지’에서 ‘금융1번지’로 탈바꿈했다.
1980년대 이후엔 관덕로 중앙지하상가가 들어서면서 더욱 상권이 커가게 됐다.
원도심권 상권이 상당히 약화됐음에도 관덕로가 지금까지도 나름대로 많은 금융기관이 자리를 하고 있는 건 특이한 현상이다.
이는 관덕로가 제주상권의 중심이고 사람 발길이 가장 잦고, 돈이 가장 많이 유통되는 곳이란 걸 뜻하기도 했다.
특히 인근 동쪽에 있던 동문시장은 금융권에게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게 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당시만 해도 결제수단이 어음·수표가 있긴 했어도 화폐가 주였기 때문에 현금이 가장 많이 유통되는 곳은 동문시장이었다.
만약 동문시장에서 돈이 제대로 돌지 않으면 경제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요 금융기관 자리가 거의 시장 근처로 집중됐던 건 당연하다 하겠다.
과거 조흥·국민·한일·제일·신한은행 등이 이곳을 거쳐 지나갔지만 아직도 제주우체국을 비롯해 1970년 지금 장소에서 창립된 제주은행은 40년 넘게 본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외환·KDB산업·SC은행제주지점 등 1금융권과 제주시농협관덕로지점·신협제주본점·제주감협무역사무소 등 2금융권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90년대 들어 관덕로에서 새로운 권역을 이뤘던 업종은 전기·전자제품 판매점이었다.
옛 명전사·내쇼날전파사·성전사 등이 뿌리를 내린 이래 국내 가전 3사의 대리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때부터 시중에 보급이 확산되고 있는 컴퓨터 판매점도 계속 들어섬으로써 전자제품을 사려면 관덕로를 찾곤 했다.
이곳은 병원·약국 중심지로도 유명했다.
관덕로가 확장되면서 동문로터리로 옮겨간 김약국, 전통을 자랑하는 조일약품을 비롯해 도내 대형약품 도매점과 광주약국·중앙약국·동성약국 등 유명약국이 많았다.
더불어 병·의원도 일제 때부터 자리 잡아 전통을 이어오며 1990년부터는 치과의원 개업이 크게 늘었다.
현 제주은행 본점 옆에 있었던 임의원(林醫院)과 후생의원(厚生醫院)은 일제 때부터 해방 뒤 까지 같은 이름으로 이어왔다. 제주의원, 차남수의원(車南守醫院. 옛 고산부인과 앞) 등도 유명했다.
현재 천년타워가 있는 곳은 옛 나사로병원(옛 文의원·원장 문종후·)자리였고, 현재 장건택치과가 있는 자리는 옛 張병원(원장 장시영)이었다.
이 두 병원은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 2대에 걸쳐 개업을 했고, 장건영 치과는 꾸준히 운영되고 있다.
관덕정 앞 쪽에 자리 잡은 김산부인과 의원은 198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옛 후생의원자리 부근 제주삼성안과의원, 옛 임의원 자리 부근 연세마취통증의학과 의원, 나피부과 비뇨기과, 김윤홍치과의원 등이 현재 개업하고 있다.
현재 인수당 건재약방은 옛 후생의원 서쪽에 있다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관덕로엔 제주를 대표했던 서점 4곳이 나란히 자리해 서점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우생당서점이 지금까지도 한 자리에서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관덕로 있었던 제주서림과 제일서점은 나중에 중앙로로 자리를 옮겨 영업을 했고, 문화서점은 중앙로가 생긴 뒤 없어졌다.
관덕정 북쪽 현재 제주우체국 동쪽엔 1960년대 이전엔 어물전과 소방서가 있었고, 그 옆엔 현재 노인대학 자리엔 옛 대성학원, 심지다방 등이 있었다.
관덕로엔 중선전기회사·삼오공사 등 전기와 기계공작소 등이 오랫동안 영업을 했다.
관덕로도 칠성로와 마찬가지로 1970년 이후 중앙로와 오현로가 탑동까지 연장되면서 허리가 잘렸다.
하지만 새로운 길이 이어지는 곳엔 유명 아웃도어·스포츠의류와 레저용품 판매점이 밀집, 칠성로 상권과 연계해 거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제주지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곳도 관덕로에 자리해 있다.
현재 오현로에서 탑동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금강제화 터는 도내에서 가장 땅값(공시지가)이 높기로 유명하다.
해마다 제주도가 공시지가를 발표할 때 최고가를 기록하는 단골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은 칠성로와 마찬가지로 다방·당구장·주점·유명 음식점 등이 자리 잡았던 곳으로 여태까지도 제주시민 발길이 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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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주란 곳을 유흥가 중심으로 시작된 탓인지 원도심은 사람 발길이 뜸해지고 있다.
근간이 흔들리면 결코 성공할 수 없듯이 제주의 근간인 원도심의 기능을 살리는데 우리 모두의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