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수 적던 애가 조잘대기 시작했어요”
“말 수 적던 애가 조잘대기 시작했어요”
  • 김형훈 기자
  • 승인 2015.08.25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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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제주·제주매일 공동기획] 공교육, 변화의 항해를 시작하다
<14> 혁신학교 한 학기를 듣다
제주형 혁신학교 한 학기를 끝낸 지금. 행복을 얘기한다.

제주지역 첫 혁신학교들이 한 학기를 무사히 마치고 다른 혁신학교 가족들과 얼굴을 마주했다. 지난 21일 제주도교육청에서 열린 혁신학교 1학기 평가간담회는 사실상 2학기 이후 제주형 혁신학교가 보강해야 할 숙제를 나누는 자리였다.

# 부모들의 이야기 “아이가 달라졌어요!”

“교장 선생님이 전교생의 이름을 다 외워요. 안아주고 이름을 불러주는데 학교 가는 길이 어찌 즐겁지 않겠어요?”(김희복 납읍초 학부모회장, 강희숙 수산초 어머니회장)

“초반에는 잘 될까 우려를 했죠.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마을로 이사를 오는 거예요. 매일 아침 제일 먼저 등교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교문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죠. 이제는 옆집 할머니가 오늘은 교장 선생님이 안 보인다고 안부를 물어올 정도에요. 특히 수업 시작 전에 학생들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다도문화가 생긴 게 가장 마음에 듭니다.” (고은희 종달초 학부모회장)

간담회에서 만난 학부모들은 수업 혁신에 앞서, 달라진 학교의 문화에 먼저 만족하고 있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지향하는 혁신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들이 친근한 동네 아저씨로 변신해 아이들에게 다가간다. 할당된 행정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출근하자마자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던 교사들은 이제는 아이들에게 환한 웃음을 먼저 건넨다. 아이들은 삭막한 교실에서 따뜻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교사와 학생 간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수업 방식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아들 셋을 모두 애월초등학교에 보내고 있어요. 학교에선 체험활동을 많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번엔 어디로 갈 지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해 계획을 세우니 학교 가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특히 아침 시간을요. 집에 와서도 질문이 많아졌어요. 6학년 남자애는 말수가 적었는데 요즘 다시 많아졌죠.”(주지현 애월초 학부모회장)

“자녀 4명을 한 학교에 보내고 있어요. 아이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키워준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있어요.”(이재송 종달초 학교운영위원)

혁신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수업 변화를 고민한다고 한다.

혁신학교가 시작되면서 수업 계획을 아이들과 상의해 짜는 교사들이 많아졌다. 체험활동의 목적을 정해주면 아이들이 주제와 장소를 정하고 그 곳에서 어떤 활동을 할지까지 결정하는 식이다. 내 의견이 반영된 일에는 적극성을 띨 수밖에 없다. 궁금한 것이 많아지고 부모와의 대화가 자연 늘어났다.

특히 학부모들은 아이들 표정이 밝아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혁신학교가 어떤 효과를 가져올 지 모호하고 여전히 미심쩍다고 말하는 학부모들조차, 아이들이 집에 돌아왔을 때 학교에서의 일들을 쉴 새 없이 조잘거리고 학교 가는 길을 즐거워한다는 점에서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혁신학교가 만족스러운 또 다른 이유로, 학교와의 소통이 한층 원활해졌다는 의견도 많았다. 이재송 종달초 학교운영위원은 교사들이 학교의 일을 진심으로 학부모들과 의논하고 피드백을 해준다”고 흡족해했다.

사실 종달초에 이 같은 분위기가 더 강한 것이 사실이다. 종달초는 제주도 최초로 내부형 공모를 통해 교장을 맞아들인 학교다. 지금의 교장은 3명의 후보 중 유일한 평교사였고 점수가 제일 높은 것도 아니었지만 학부모들은 그를 선택했다. 열의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침 7시 40분이면 교문에 서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교장. 이 교장은 교장실 명패를 떼 ‘교육상담실’이라는 이름을 붙이곤 과자를 비치해 언제든 학생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요. 소통이 정말 잘 되고 있어요.”(이재송 종달초 학교운영위원)

진짜 소통은 인내의 과정이기도 하다. 수산초 강희숙 어머니회장은 달라진 소통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예전에는 어머니회장으로서 학부모들에게 지시를 하면 다 됐는데, 지금은 다들 자기의 생각과 요구가 있어요. 그래서 처음엔 힘들었어요.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이 두루 다 친해졌어요. 큰 변화죠(웃음).”

# 선생님들의 이야기 “가슴에 뜨거운 열망이...”

간담회에서 만난 교사들은 행정업무가 없어지면서 비로소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한 번 더 이름을 부르고 대화를 나누니 더 잘 알게 됐다. ‘진짜 교육’을 위한 전제, 소통이 시작된 것이다.

5년차인 무릉초 김찬경 교사는 주인의식이 생겼다고 표현했다. 행정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출근 후 컴퓨터를 먼저 키던 그가, 수업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러고 나니 모르는 게 많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서술형 평가를 처음 내봤는데, 내가 안 해 본 걸 하려니 막막하더라고요. 학급회의를 제대로 하는 법, 교육과정 재구성의 팁…. 만일 제가 다른 학교에 있었더라면 저의 부족함을 잘 몰랐을 수도 있어요.”

혁신학교를 통해 스스로 많이 배우고 있다는 교사들.

김찬경 교사를 비롯해 간담회에서 만난 교사들은 하나같이 수업의 변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력이 많고 적고의 구분이 없었다.

“업무가 없어지면서 여유가 생기니 아이들 마음의 그릇에 무엇을 담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더 잘 가르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어요. 수업 방식을 고민한다는 건 교사로서 성장의 기회를 만났다는 것이죠.”(채민주 종달초 교사)

14년차 납읍초 김성윤 교사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교사들이 모여서 고민을 했어요. (폐교 되지 않으려면) 아이들이 계속 들어와 줘야 하는데, 자율학교 지정 기간은 끝나가고 무엇을 해야 하나. 그러다 혁신학교를 선택했어요. 우리도 타성에 젖어 있어 혁신학교의 효과에 대해 의심은 했어요. 아이들에게 자율권을 주면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지금 아이들은 즐겁게 더 많은 걸 배우고 있죠. 14년차이지만 저도 교육을 잘하고 있는지 고민해요.”

15년차인 이영미 애월초 교사는 “내가 말한 게 다 이뤄진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고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한 번은 어떤 학생이 봄에 피는 꽃으로 화전 만들자 그러더라고요. 그거 재밌겠다. 사실 예전 같으면 꿈도 꿀 수 없었죠. 저도 시간이 없었을 테고, 안전 문제 때문에 학교에서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그 치만 저는 학부모들의 도움을 받아서 화전을 만들어 그날 전교생에게 돌렸어요. 말한 게 수업으로 이뤄지는 곳이에요. 우리학교는.”

# 다음 학기의 숙제

제주지역 5개 초중학교(애월초, 납읍초, 무릉초중, 종달초, 수산초)가 혁신학교 첫 학기를 보냈다. 일단 교장들은 어깨에 힘을 빼고 엄숙하던 교장실의 문을 아이들과 교사들에게 활짝 열어젖혔다. 업무가 덜어진 교사들은 정해진 시수와 교과서의 순서대로 진행하던 수업에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우선은 모둠활동과 야외활동이 늘었다. 사후 평가 역시 답을 맞히면 개인별 성적을 내 순위를 가리던 것에서 이제는 활동 중 개인의 태도나 열정, 노력, 협동심, 창의력 등 정성적인 평가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 지 궁금해 한다. 이번 간담회에서도 “개인별 평가가 없어서 답답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안전과 관련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야외활동이 많아졌는데 담임교사들의 위기 대처 능력은 그대로라는 요지였다.

학생들이 빠져서 아쉬웠지만 학부모와 교사들은 지난 한 학기를 보낸 소회에 대해 일단 “즐거워졌고 의욕이 생겼다”는 점에서 동그라미표를 그렸다.

<미디어제주 김형훈 기자·제주매일 문정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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